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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관통한다
  • 이기우
  • 등록 2019-03-13 12: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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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수요일 - 요나 3,1-10; 루카 11,29-32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 메시지가 아니라 그 복음을 들었던 이들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내리신 예수님의 평을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을 인용해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을 천명하신 이래로, 주로 갈릴래아 지방을 두루 다니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전하시기 전에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치유를 해주셨고, 마귀 들린 이들에게는 마귀를 쫓아내어주셨으며, 배고픈 이들에게는 빵을 먹여주셨고, 이런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시키신 다음에는 듣는 이들이 알아들을만한 소재를 동원해서 비유로 당신의 실천 행동에 담긴 뜻을 깨닫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하는 중에 만났던 이들 가운데 열두 사람을 뽑아서 제자로 삼으시기도 하셨으며, 이 제자들에게는 당신이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서 알아듣도록 따로 풀이해주셨습니다. 이 제자들은 어부 출신도 있었고, 세리 출신도 있었으며 혁명당원 출신도 섞여 있었습니다. 이 제자들을 방방곡곡에 파견해서 당신이 선포하시던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기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 일행이 가는 곳마다 갈릴래아 지방 사람들은 물론 전국에서 무언가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띠로나 시돈 같은 해안지방이나 요르단 건너편 지방 같은 이방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몰려들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고 혜택을 받으면서도 기득권 세력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 내놓고 예수님의 복음을 환영하고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예루살렘에 머물던 사두가이들은 민심의 향방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날로 명성을 얻어가는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바리사이들은 아예 그분 일행을 따라다니며 감시하면서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그분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신적인 능력에 대해 열광하면서도 당시 유다교의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두 세력의 동향도 물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시면 도움을 청하고 혜택을 받기는 하면서도 기득권 세력의 눈 밖에 날까 두려워서 내놓고 예수님의 복음을 환영하고 회개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악한 세대’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신 것은 당신을 적대시하기에 이른 기득권 세력들의 사악한 반응뿐만 아니라 도움과 혜택을 받기만 할 뿐 회개할 생각은 없이 눈치만 보고 있는 군중의 기회주의적 처신도 포함해서 하신 것입니다. 전자가 더 사악하기는 하지만 후자 역시 하느님 나라를 외면한다는 의미에서는 선한 세력일 수는 없고 결과적으로는 악한 세력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이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악한 세대에게 솔로몬의 표징보다 더 지혜롭고 요나의 표징보다 더 설득력이 강한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가 지닌 빛을 암시하여 군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회개를 미루고 있던 그 군중이 알아듣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당신 자신과 제자들에게 다짐하는 의미가 더 큰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해 받은 지혜란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세속의 지혜였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에 담긴 지혜는 세속의 지혜를 훨씬 넘어섭니다. 요나가 당시 니네베 사람들에게 보여준 표징은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가 사흘 밤낮 동안 고래 뱃속에 갇혀 지냈던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사흘만에 부활하시게 되리라는 점에서 불순명했던 요나의 표징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 ⓒ 문미정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악한 세대가 보여주는 반동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 겨우 국정을 농단했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지 2년이 지나가고 있을 뿐인데, 사면 요구가 슬금슬금 기어나오는가 하면, 그 대통령을 배출했던 정당과 그를 지지했던 수구언론에서는 아무런 회개가 없는 채로 국정 개혁과 적폐 청산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북핵 위기 극복을 위한 남북한과 미국의 노력까지도 비판하며 평화의 흐름도 거스르려는 세력임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친일 청산도 반대하고 광주민주항쟁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도 모독을 일삼고 있는 것이 최근의 모습입니다. 이는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악과 선의 모습입니다. 악을 저질렀던 과거의 모습이 사악했다면, 그 악을 가리려고 위장하는 현재의 모습은 뻔뻔스럽습니다.


사순 시기는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회개의 때입니다. 각자의 일상에서 악에 저항하고 선을 추구하는 개별적 십자가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악한 세대가 보여주는 반동적 흐름에 대해서도 분명한 식별 작업을 통해서 악에 저항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적 십자가를 짊어지는 회개의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역사의 진보는 이러한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관통하여 이룩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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