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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
  • 이기우
  • 등록 2019-03-12 12: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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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화요일 - 이사 55,10-11; 마태 6,7-15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영향력에 대해 강조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하늘에로 돌아가는 법이 없이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곡식을 거두게 하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주듯이,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역시 허투루 나오는 법이 없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고 깨달음이 돋아나게 하여 영적인 양식을 먹게 하고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만들고야 만다는 이치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기도로써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는, 주님의 기도에 그 전형적인 형태가 담겨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써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고 깨달음으로 싹을 내어서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도록 바꾸기 위한 실천 행동의 결심으로 바치는 응답이 기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드러나고, 하느님의 나라가 세상에 세워지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원하며 주어진 양식에는 감사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도록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도 용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인가 하면, 악으로 떨어지게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고, 행여 그 악에 빠지면 구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기서 용서에 대해 거듭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돋보입니다. 용서란 첫째 죄나 허물에 대해서가 아니라 죄와 허물을 지은 사람에 대해서 베푸는 것이며, 둘째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이미 용서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그에 바탕해서 관대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죄와 허물로 상처를 주고 괴롭힌 사람일망정 그를 다시 형제요 이웃으로 받아들여주라는 것입니다. 


저질러진 죄와 허물은 끊어버리거나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습니다. 이미 저질러진 죄와 허물을 없었던 듯이 눈감아주자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죄와 허물을 저지른 사람을 받아들여주는 것이야말로 용서입니다. 그 죄인을 받아들여주어야 더 이상 그가 죄와 허물을 짓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죄와 허물에 대한 소극적인 대책이 아니고 사실상 적극적인 대책입니다.


용서에 있어서 기준과 목표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요 그분의 사랑과 자비이며 그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다른 이들의 죄와 허물로 인해 우리가 받았던 상처나 감정을 생각하면 쉽사리 용서를 베풀지 못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죄와 허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것을 전제로 용서도 베풀어야 하고 청해야 용서로 인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개인도 집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적대자들이 저지르는 죄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으셨고 제자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아픔을 겪으셨습니다. 그 적대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짊어지워주는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심으로써 용서하셨고, 제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성령을 받아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하심으로써 용서하셨습니다.


고해는,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죄로 말미암아 끼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피해를 보속하려는 적극적인 결심으로 나타나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고해성사에서는 물론 미사에서 참회예절을 하거나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혹시 우리의 탓은 없었는지 성찰합니다. 이런 행위가 일상적인 일이 되어야 할 정도로 용서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실천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 교회도 독립선언 백주년을 맞이하여 민족 사회의 구성원들 앞에 일제 강점기 동안에 저지른 친일행각에 대해 사죄하였습니다만, 고해성사의 원리와 정신에 따라서 이러한 사죄의 고해는 다시는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죄로 말미암아 끼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피해를 보속하려는 적극적인 결심으로 나타나야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남북의 민족이 화해하는 일 이전에 우리 교회가 민족 사회와 화해하는 은총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같은 은총은 민족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우리 교회가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희생과 솔선수범을 통해서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도 이 사순 시기 동안 개인적으로 성찰한 바에 따라서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보속행위로 생활을 성화시킴으로써 거룩하게 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도 더욱 가까워지고 멀어졌던 이들과도 더욱 가까워지는 은총의 때가 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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