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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날짜는 왜 해마다 바뀌는가?
  • 이기우
  • 등록 2019-03-07 11:30:39
  • 수정 2019-03-08 12: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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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 신명 30,15-20; 루카 9,22-25



사순 시기가 시작되면 늘 두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첫째, 부활절 날짜는 왜 해마다 바뀌는가? 둘째, 사순 시기는 고난의 40일이라는 뜻인데 왜 40일이 넘는 것인가? 이 두 가지 의문의 답 안에 오늘 복음의 초점인 십자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전례 상식으로서, 사순 시기를 정하는 계산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부활대축일을 정하는 방식입니다. 사순 시기는 부활대축일로부터 역산하여 40일이 되는 수요일부터 시작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파스카 축제를 니산 달 14일에 지냈다고 탈출기 23,15에 나오는데, 이 날짜는 춘분을 넘기고 보름달이 뜬 다음의 토요일이었습니다.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내던 유다교와 달리 초대 교회에서는 토요일보다 일요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요일이 주님의 날, 즉 주일이 된 것인데, 부활대축일은 춘분을 넘긴 음력 보름날 다음의 첫 주일로 정합니다. 


이렇게 음력으로 정하기 때문에 부활대축일이 해마다 바뀌는 것입니다. 양력이 보편화된 시대에, 더구나 이 양력은 그레고리오력이라고 해서 그 옛날 그레고리오 교황이 제정해서 온 세계가 현재 쓰고 있는 것인데도 굳이 음력으로 부활절을 지내는 이유는, 부활절의 기점이 된 유다교 과월절 축제에 담긴 역사적 해방의 정신이 그리스도교가 연중 최대의 축제로 지내는 부활절의 배경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40일을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준비하신 데서 유래했습니다. 사순 시기의 40일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성야 미사를 봉헌하는 성 토요일까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사순 시기의 주일은 부활을 축하하는 날이기 때문에 뺍니다. 그러면 6주간 곱하기 6일은 36일이고, 재의 수요일부터 목·금·토요일인 4일을 더하면 40일이 됩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성 목요일 밤의 주님 만찬 미사에서부터 부활 성야 미사까지의 파스카 성삼일 전례가 이루어지는 만 이틀은 사순 시기의 성격보다는 사순 시기에서 부활 시기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순 시기의 종교적 의무인 단식재와 금육재를 성금요일에도 지키기 때문에 크게 보면 사순 시기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무튼 부활 시기는 부활 성야 미사부터입니다.  


사순 시기의 40일을 정함에 있어서 주일을 빼는 까닭은 부활절에 담긴 해방의 정신은 오로지 십자가 희생의 노력으로만, 그것도 매년 전례적으로 기념함으로써 세세대대로 지속적인 노력을 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재’라는 말은 우선 성지주일에 축성했던 나뭇가지를 태운 재를 뜻하며 그 다음으로는 단식과 금육 같은 종교적 의무를 뜻하기도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단식재는 대재라고도 하고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는 의무이고 다른 날들에는 자유로운 권장사항입니다. 금육재는 소재라고도 하고 매 금요일에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다른 날들에는 지향에 따라 자유로이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대소재는 예수님의 수난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사순 시기를 비롯한 일상생활에서 지키기 위한 최소한도의 의무규정입니다.


단식재만 하더라도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 58, 6-7.10)


이런 말씀을 헤아리자면, 단식은 그저 끼니를 거르는 행위인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우리 생활을 복음화시키는 행동 전체를 뜻합니다. 손해가 나고 희생을 치루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시키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골고타 언덕에서 나무로 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시기도 하셨지만 공생활 내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로부터는 미움을 받아야 하셨고 군중들로부터는 시달림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제자들로부터도 가르쳐도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하는 몰이해의 어려움을 겪으셔야 했고 끝내는 배신까지 당하셔야 했던 이 모든 고난이 예수님께서 짊어지셔야 했던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날마다 짊어져야 할 제 십자가가 있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의 희생이 없이는 사랑의 부활도 없습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에 저마다의 가격이 붙어있듯이, 사람들이 행하는 사랑에도 가치가 제각각 다릅니다. 사랑의 가치는 희생에 정비례합니다. 목숨을 바치는 희생으로 하는 사랑은 가장 값비싼 사랑이고, 아무런 희생이 없는 사랑은 가장 값싼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내놓으신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의 선택은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희생으로 사랑을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십자가야말로 우리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역사적 해방을 향하여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 징표가 요청하는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서로가 함께 짊어지는 것, 여기에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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