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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과 사상과 종교의 다름을 넘어
  • 이기우
  • 등록 2019-03-01 13:45:24
  • 수정 2019-03-01 13: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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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사도요한 신부의 매일강론입니다. 이기우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3년간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지난해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깨달음, [이신부의 세·빛]으로 매일강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집회 6,5-17; 마르코 10,1-12


▲ ⓒ 강재선


3.1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3월 1일입니다. 이 독립선언을 온 겨레에 알리고 일제와 전 세계에 외치는 만세 운동에 가장 앞장선 선구자들은 의암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천도교 신자들이었습니다. 동학을 계승한 이들은 개신교와 불교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민족 대표로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국내에 들어온 천주교는 한 세기에 걸쳐 혹독한 박해들을 겪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당시 외국 선교사들이었던 한국 천주교회 지도부는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신앙을 박해했던 조선 왕조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강제 점령하자 일제의 식민통치를 내심 환영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제 총독부가 정교분리 명분을 내세워 식민통치에 복종하도록 압박하자 교회 조직을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기꺼이 부역하였습니다.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친일행각의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하며 참회합니다.


그 결과, 민족의 독립을 위한 신자들의 무장 투쟁과 활동을 금지하였고, 나중에는 한국인이 교구장으로 교체되고 나서도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전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천주교의 진리를 받아들이되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동학으로 자처했던 이들이 서양의 종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으로 서학으로 불렀던 한국 천주교회는 3.1 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이하여,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이 겪는 현실적인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친일행각의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반성하며 참회합니다.


천주교 측 대표가 빠진, 기미년의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 선언서에서 독립의 목표가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의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계층과 사상과 종교의 다름을 넘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한 선조들의 꿈은 외세로부터의 해방에 그칠 수 없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닥쳐온 한반도의 분단, 뒤이은 동족 간의 전쟁과 오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겨레는 100년 전의 독립선언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평화로운 한반도를 이룩해야 할 책임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강제로 오백 년 왕정 시대를 종식시킨 터에 새로이 건설하고자 하는 나라가 또다시 왕의 나라일 수는 없기에,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천명한 것이 백 년 전 삼일 독립선언이었다면 그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에게는 갈라진 채 70년을 살아온 민족 통합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 2차 북미정상회담 (사진출처=조선중앙통신)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다음을 기약하고 말았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적인 관계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흐름까지 꺾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한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100년 전 독립을 선언하고 자발적이고 전국적인 만세 운동으로 일어섰던 그 기운으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새 한반도 체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 당시 한국 천주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 속에서도 개인의 양심과 정의감에 따라 교육과 언론으로 민족을 계몽하고 때로는 무장 투쟁으로 일제의 총칼에 맞서 독립투쟁에 참여했던 평신도들이 길잡이가 되고 있습니다.


일제의 침략을 막고 국권을 회복하고자 국채 보상 운동을 이끈 서상돈 아우구스티노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호 협력과 공영을 구상하였던 안중근 토마스는 우리 민족에게 지혜와 용기와 의분을 불러일으키는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1913년 서간도 지역에는 무장 투쟁을 준비하고자 학교를 설립한 이기당 안토니오가 있었고, 1919년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와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의 신학생들도 자주독립을 외치는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북간도 용정의 교우촌에서는 성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삼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무장 조직인 대한의민단을 결성하여 독립투쟁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 치릴로와 안공근 요한은 1930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황해도 은율에서 윤예원 신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에 가담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시대의 아픔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민족에게 빛을 밝혀준 우리의 모범입니다.


새로운 100년에 이룩해야 할 새로운 한반도에서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신앙의 선조들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한국 천주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민족의 통합과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자는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담화문을 줄이거나 풀어서 전해드렸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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