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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당은 사실 성당이 아니었다?
  • 강재선, 문미정
  • 등록 2019-01-24 12:10:39
  • 수정 2019-02-01 16: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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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등이 왕림성당 ⓒ 문미정


만약 자신이 다닌 성당이 사실은 성당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한국 천주교에서 성전은 각 본당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천주교 신자들에게 성전이라는 ‘집’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천주교 수원교구의 모태이자 한반도에 설립된 네 번째 본당인 왕림성당 신자들은,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해 온 성당이 어느새 학교부지로 넘어가 ‘지역사목실습관’이 되어있었다며 이를 시정해 달라고 10년 동안 교구에 요청했다. 또한 이와 관련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토지 문제를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이들의 요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원교구 설정 시기로 돌아가 왕림성당의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갓등이 공소’ 신자들이 토지를 기증해 ‘33칸짜리 기와집 왕림성당’을 지었다


‘갓등이 공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왕림성당의 교우들은 수원교구가 설정되기 전 성당을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기증했다.


성당과 성당의 재산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요구해온 단체인 ‘갓등이 본당 재산환수 및 복원위원회’(이하 갓등이 복원위, 위원장 최창환)에 따르면, 당시 토지를 기증했던 교우들은 법에 밝지 못했던 탓에 토지를 기증하기는 했지만, 명의이전 등의 행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교우들이 토지를 기증했다는 내용은 1982년도 가톨릭신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1963년 수원교구가 설정되고, 1967년 천주교수원교구유지재단이 설립되었을 때 왕림성당은 1901년 건축된 33칸짜리 기와집 성당과 한옥 사제관, 그리고 그 토지들을 가지고 수원교구로 편입되었다. 33칸짜리 기와집 성당은 구 230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 (자료출처=갓등이 환수위)


1970년 왕림성당은 33칸짜리 기와집 성당의 대들보가 터진 탓에 이를 철거하고, 1971년 적벽돌 성당을 신축했다. 적벽돌 성당은 과거 33칸짜리 기와집 성당 위편인 왕림리 구 232-1번지에 세워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왕림성당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974년 수원교구 2대 교구장으로 김남수 주교가 부임하면서부터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특히 이 기묘한 일들은 제4대신학교, 현 수원가톨릭대학교 건립을 둘러싸고 발생하게 된다. 1982년 5월 춘계주교회의에서는 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4대신학교 설립안이 통과되었다. 이후 위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왕림, 천진암, 성 라자로 마을 등이 언급되었는데, 이 중 교구사적 의미와 넓은 부지 및 대도시 접근성을 근거로 왕림이 선정된다.


이후 김남수 주교는 빠른 속도로 제4대신학교 건립을 추진한다. 이듬해인 1983년 3월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설립 인준을 받고, 4월에는 본관 기공식을 열었다. 그리고 5월에는 학교법인광암학원을 설립, 12월에는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로부터 학교 설립 인가를 받는다.


갓등이 복원위는 이 과정에서 왕림성당이 서있는 토지를 포함한 왕림본당 토지들이 광암학원으로 명의이전 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왕림성당지역사목실습관이라는 사실을 25년 만에 알았다


갓등이 복원위는 ‘수원가톨릭대 설립계획서’를 근거로 광암학원이 왕림성당 토지를 비롯해 학교 설립 인가 기준의 3배에 달하는 토지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미 왕림성당 토지들을 제외하고도 대학 설립에 필요한 충분한 토지가 있었음에도 왕림성당 토지까지 명의 이전한 것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재산을 빼앗아 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1982년 보도를 살펴보면 총 32,284평이 왕림성당 교우들이 기증한 땅이며, 추가로 해당 부지 내 개인 소유 토지 2,570평을 매입했다고 나온다. 갓등이 복원위 역시 1982년 기준으로 수원가톨릭대 부지가 31,154평이었다고 증언한다.


특히 수원가톨릭대 설립을 위해 광암학원으로 토지가 이전되는 과정에서 1971년 건축된 적벽돌 성당과 왕림성당 옛 한옥 사제관 등이 들어서있던 왕림성당 토지들과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기부한 토지들이 모두 광암학원 소유로 넘어갔다. 


갓등이 복원위는 ‘수원가톨릭대 정관’을 근거로 이 토지들이 1983년 5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광암학원 소유로 명의이전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1983년 당시 왕림성당 주임 정해성 신부는 그 해 수원가톨릭대 설립추진위원회 사무국장 및 건설본부장으로 취임했다. 이때까지도 왕림성당 신자들은 자신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는 성전 토지가 학교부지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김남수 주교의 지휘를 받은 수원교구는 이처럼 수원가톨릭대 설립에 왕림성당을 전폭적으로 활용했다. 갓등이 복원위는 1983년부터 신자들이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시작한 2008년까지 25년 넘는 시간동안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땅과 성당이 학교법인 소유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학교법인 땅에 수원교구 본당이 자리하게 되는 이상한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성전 봉헌식까지 했지만, 건축물대장엔 성전이 없었다

 

1983년 수원가톨릭대 본관이 지어질 당시까지도 1971년 지은 적벽돌 성당은 제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학교 부지에 종교시설이 자리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광암학원으로 명의이전 된 토지에 위치한 적벽돌 성당을 철거하고 1985년 콘크리트 성당인 현 왕림성당이 건축되고 1988년 봉헌식이 거행된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1988년 봉헌식까지 가졌던 이 ‘성당’은 이미 1983년 10월 광함학원으로 명의이전 된 땅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실 해당 건물은 수원가톨릭대 부속 ‘지역사목실습관’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2007년 경기도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왕림성당 건축물대장 역시 이를 확인해주었다.



‘지역사목실습관’은 다른 신학교에 위치한 성당들, 또는 가톨릭재단이 설립한 학교에 위치한 여러 건물들과 비교해보면 그 쓰임을 파악할 수 있다. 역곡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의 예수성심성당,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 위치한 대성당을 사례로 들어보자. 


이 두 성당 모두 특수한 형태의 용도(학생 사목, 교내 미사 등)로만 사용되며 일반 사목을 담당하지 않는다. 학교 부지 내에 종교시설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용도 역시 ‘교육연구 및 복지시설’로 등록되어 있다. 명칭은 다르지만, 으레 학교 내부자들을 위한 시설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결국, 수원교구의 모태가 된 뿌리 깊은 신앙의 표상이었던 왕림성당 신자들은 수원가톨릭대 설립이 시작된 83년도부터 ‘남의 땅’에서 건물을 짓고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이 되다 못해, 88년도부터는 신학교 부설 사목실습관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웃지 못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25년 만에 사실 알았지만, 이후 10년째 입씨름만


그렇다면 신자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언제 알게 된 것일까? 갓등이 복원위에 따르면,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모두 알게 된 것은 수원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 대학 건물 설립을 위해 구 한옥 사제관이 철거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라고 한다. 


2007년 11월 수원교구 A 몬시뇰과 평신도들은 사제관 주변으로 빨간 말뚝이 박혀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들은 이를 철거 작업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증거사진을 찍어두기까지 했다.


그 한해 전인 2006년 8월 23일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회의 중 당시 왕림본당 옛터에 자리한 구 한옥 사제관에서 기거하고 있던 B 몬시뇰은 수리를 위해 잠시 사제관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아 짐을 쌌다가 수리가 보류되어 다시 짐을 풀었다고 말했다. 


B 몬시뇰은 자신이 다시 짐을 푼 이후 교구 측에서 건축 설계도를 가지고 와 사제관 자리에 다른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며, 이에 대해 “이미 일이 진척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때서야) 말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이미 오래전부터 수원가톨릭대는 왕림본당 옛터에 평생교육원을 설립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며, 사제관 철거가 계획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계획은 이용훈 당시 수원가톨릭대 총장(현 수원교구 교구장)이 2000년 2월에 세운 수원가톨릭대학교의 중장기 발전계획서 ‘갓등2010’에 들어있었다. 


▲ 수원가톨릭대학교 건물 조감도(A: 영성관, B: 도서관, C: 하상신학원). 하상신학원(C)가 표시된 곳은 구 사제관이 있는 곳이다. (자료출처=갓등이 환수위)


‘갓등2010’을 살펴보면 현재 구 한옥 사제관과 왕림본당 옛터가 위치한 자리에 500평 규모의 ‘하상신학원’ 건립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갓등이 복원위는 1983년 이전에 발간된 ‘제4대신학교 종합계획도’와 2006년 수원가톨릭대가 발간한 ‘학점인정 평생교육원 설립 기초자료집’에 등재된 평생교육원 신축예정부지 도면을 근거로 왕림본당 옛터가 철거될 것이라는 사실과 2007년 화성시에서 ‘수원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생 교육원’ 설립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후 2008년 1월 17일 당시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왕림성당의 대화가 열리며 하상신학원 건축을 위한 사제관 철거를 반대하는 의견이 전달되고, 예정된 장소에 하상신학원을 설립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때까지도 교구는 왕림성당 신자들에게 왕림성당이 사목실습관이라는 사실이나 옛 왕림본당 터가 광암학원 소유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알리지 않았다. 갓등이 복원위는 당시 내부 공문을 입수했고 주교들과 관계자들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이후 갓등이 복원위가 조직되어 옛 왕림성당 터를 비롯한 현 왕림성당 터 토지 환수 및 본당 환수를 목표로 활동하게 되었다.


‘고의’든 ‘부주의’든, 잘못했다 사과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갓등이 복원위는 3대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협의를 통해 돌려받아야 할 토지를 구획한 지적도를 작성하고 왕림성당 및 왕림성당 토지를 돌려받기로 협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2009년 이용훈 주교 착좌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던 중, 2013년 갑작스럽게 125주년 기념 연합신앙대회에서 이용훈 주교가 왕림성당 재산을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토지의 경우 수원교구와 광암학원 측에서 분할에 따른 토지환수를 제안했고, 2008년에 한 차례, 2018년 한 차례 현 왕림성당 터와 옛터 토지 반환이 일부 이루어졌다. 


수원가톨릭대학교 부속 사목실습관이었던 현 왕림성당 건물과 토지는 왕림성당에 토지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시한 2008년 수원교구 제28차 대리구장 회의 입장을 반영해 수원교구 유지재단으로 명의이전 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서야 왕림본당 건물은 2018년 3월 지역사목실습관에서 종교시설로 용도변경이 이루어졌다. 


최덕기 주교 때부터 지금까지 수원교구는 왕림성당 신자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유일한 반응이라고는 지난해 7월 교구에서 발표한 왕림본당 130주년 감사미사를 알리는 단신에 “인근의 수원가톨릭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왕림 성당이 신학교 부속건물인 실습관으로 편입됐다가, 최근 성당 건물을 포함한 2,693평 대지가 본당 부지로 분리된 바 있다”는 소식뿐이다. 


수원교구는 왕림성당과의 일련의 과정을 ‘편입’이라는 정상적인 행정적 절차의 일환으로 치부했다. 갓등이 복원위를 비롯해 이 지난한 과정을 알고 있는 신자들은 수원교구의 행태가 고의적인 것이든 부주의에 의한 것이었든, 진심어린 사과 한 번이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어찌됐든 왕림성당은 다시금 성당과 옛 왕림성당 터 일부를 되찾았지만 처음 문제가 제기됐을 당시 교구장이었던 최덕기 주교와 갓등이 복원위가 협의했던 토지 반환은 수원교구 4대 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착좌하면서 새로운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 2편에서 계속 됩니다.



⑴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수원가톨릭대학교(상), 가톨릭신문, 2018-04-15, 제3090호


 수원교구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 (9) 수원가톨릭대학교 설립(1984) - 수원교구의 성소 못자리,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부, 수원주보 3면, 2018-06-17


 교계·정계내빈 대거 참석으로 귀빈실 모자라, 가톨릭신문, 1982-09-26, 제1323호


 수원 제4대신학교, 설립추진위 확대 개편, 가톨릭신문, 1983-07-24, 제1365호


 40년을 속이고도 부족하냐?, 안성뉴스24,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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