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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몇 가지 장면에 들어있는 교회 자화상
  • 김유철
  • 등록 2018-08-28 11:15:31
  • 수정 2018-08-28 1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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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에 비추어 보지마라.


팔레스티나 사람 예수보다 400여 년 전 중국 땅에 살았던 묵자(墨子, Motzu)란 사람이 있었다.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를 관통하던 무력의 시대였지만 그 무력의 광풍을 잠재울 ‘담론’이 통치자와 동시대인들에게 호소하던 시절이었다. 묵자를 비롯한 묵가학파는 공맹을 앞세운 유가학파와 함께 시대의 주류학문으로서 그들의 사상과 실천은 다른 학파와 비교하여 뚜렷한 차별성으로 수많은 지지자들이 함께 하였다.


묵자는 ‘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이라 이르며 물에 비추어보면 기껏 제 얼굴만 비출 뿐이니 물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말했다. 어쩌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물었다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 27) 라는 말이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 29)라는 두 질문은 예수 자신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너는 누구냐?”는 속물음의 여운이 더 짙다. 그러하다. “우리는 누구일까?”


#2 ‘기댈 언덕’이 거기였던가?


지난 2월 교종 프란치스코에 의해 주한 교황대사로 임명된 알프레드 수에레브(Alfred Xuereb) 대주교는 5월에 입국하여 7월 25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전달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곧바로 움직였다. 외교관인 교황대사의 움직임이 교계언론이 아니라 공중파방송이나 일반신문 등에 보도되는 일은 흔치 않으나 언론은 그의 움직임을 의미롭게 눈여겨보고 있는 듯하다.


대사는 7월 28일 첫 방문지로 제주교구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강우일 주교에게 예멘 난민기금 1만 유로(한화 약 1,300만여 원)를 전달했다. 대사는 예멘 난민들과 비공개 만남을 가진 뒤 열린 미사 강론에서 “최근 제주교구의 두 주교가 예멘 난민과 관련해 발표한 사목 서한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과 권고에 완전히 일치한다”라며 “교황은 우리가 부닥친 새로운 사회 현실 앞에서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더 너그럽게 우리의 형제이자 자매인 저들(난민신청자)을 환대하자고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사는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을 방문해 4·3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했다.


▲ 21일 주한교황청대사관을 방문한 대구가톨릭대의료원 노조들을 직접 맞이한 주한교황대사 알프레드 수에레브 대주교 (사진제공=의료연대)


이어 8월 21일 대구가톨릭대의료원 파업 참가자 550여 명이 직접 쓴 편지를 대사관에 전달하려고 들렀을 때 ‘놀랍게도’ 그는 대사관 앞에서 노조원들의 요망사항이 들어있는 편지들을 직접 건네받았다. 알프레드 수에레브 대사는 찾아온 노동자에게 안부를 물으며 강복기도를 해주었고 “대구가톨릭대병원의 갈등을 알고 있다. 성공적인 합의를 위해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병원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하겠다. 내가 그들 가까이에서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마치 2014년 8월 16일 순교자 시복식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의 편지를 소중히 챙기던 ‘그 분’의 모습이 선하다.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사가 교종에게 임명을 받은 소식을 듣고 필자는 <가톨릭프레스> 칼럼을 통해 지난 3월 ‘58개띠 형에게’라는 편지를 보낸 일이 있다. 그 편지에서 필자는 신임 대사를 ‘기댈 언덕’ 삼아 두 가지를 요청했는데 놀랍게도 그중 하나를 이행했다. 두 번째 요청도 그가 이루어주길 바라며 혹여 못 본 분을 위해 덧붙인다.


#3 인사이동에 들어있는

‘무언복종’


‘무언복종(無言服從)이란 용어는 현대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특수조직에는 여전히 위력을 가진 말이기도 하고 그것이 충성이나 심지어 신심처럼 통용되기도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특수조직 안에 종교인과 종교조직이 들어가는 것이 어쩔 수 없이 웃픈 일이기는 하지만 ‘무언복종은 분명히 지나간 자료로서도, 현재 벌어지는 일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필자의 졸저인 교회친일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에 10여 곳 이상 인용되어 있는 한국천주교회 대표 장상의 발언과 문서에 기록된 ‘무언복종’이란 표현은 때로는 교회 운영(관리? 혹은 통치?)에 복음과 더불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말을 아주 지나간 과거형의 표현이라고 일축할 수는 없는 것이 ‘사제 인사’를 바라보는 평신도들의 마음인 것을 인사권자는 십분의 일, 백분의 일이라도 알기나 알까?


어느 것이 높은 것이고 낮은 것인지 그 수준을 분간할 수는 없지만 ‘대기·정직·휴직·휴양·면직’ 거기에 해외선교까지 보이지 않는 사연이 겹치면 신자들로서는 물가에 엉거주춤 주저앉아 뭐가 뭔지 모를 뿐이다. 장상의 “무언복종하라!”는 늘 이렇게 시대를 넘나들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인가? 인사이동에 대하여 예능프로그램 식의 궁금증 해소를 원하는 것도 아니며 해당자에게 미칠 ‘2차 가해’ 등에 우려가 있다면 사제 인사와 관련한 공론화의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늘 고민 속에 답이 들어있으니 고민을 피하지 마라.


#4 다시 묵자와 예수에게 듣는다.


묵자는 중국 역사에서 진한(秦漢)시절 사문난적으로 평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거의 2000년이 지난 중국 5·4혁명 이후 잠시 세간의 눈을 끌지만 묵자가 가진 ‘보편적 사랑’과 ‘비폭력 사상’으로 인해 중국공산당 지배자들로부터 배척당한다. 참으로 힘든 운명을 지닌 그들의 길이다.


묵자는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한다면 세상은 평화로워 진다(兼相愛則治 겸상애즉치)고 말하며 세상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愛人若愛其身 애인약애기신”은 훗날 예수가 말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 31)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이다. 우리는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2000년이 지난 우리의 자화상이다.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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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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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8-08-29 17:56:03

    교종이면 교종이지 왜 여기 저기 교종 프란치코, 교황대사, 교황~을 혼용하는지?
    공연히 줏대 없는 지식으로 혼란을 생산하십니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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