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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박수근의 소’를 못 알아본 예술적인 소양
  • 전순란
  • 등록 2018-07-20 10:58:38
  • 수정 2018-07-20 11: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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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18일 수요일, 맑음


몇 주 전부터 보스코가 뒤꼍 비탈에 비스듬하던 오죽(烏竹)은 곧추세우고 산죽은 쳐내다 감동 앞에 쌓아 놓았다. ‘잘라놓은 대나무는 쌓여 가는데’, ‘그곳에서 커버린 잡초도 잘라야 하는데’ 하다가 오늘 새벽에는 그걸 태우기로 맘먹었다. 보스코에게도 내일 새벽엔 마당 축대에 마구 커버린 잡초와 잡목들을 낫질하라고 했더니만 오늘 새벽 5시에 낫을 들고 내려갔다.



그동안 가지치기한 나무와 베어낸 대나무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두 시간을 태웠는데도(대나무는 꺾어서 태워야 하니까) 끝이 안보이고 해가 나자 몸이 지친다. 이럴 때를 예비해 타 온 시원한 오미자주스를 마시자 다시 기운이 난다. 태우는 것도 힘드니 그동안 대밭 손질하느라 보스코도 고생했겠다. 8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나 보스코가 올라왔는데 그의 얼굴이 창백하다.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단다. 


전형적인 ‘열사병’ 증세여서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하고, 웃옷을 벗기고, 양손바닥 위장경락과 심장경락을 지압해주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30분쯤 지나자 안정을 찾더니 “배고파. 아침먹자.” 여차하다 아까운 ‘라틴어학자’ 하나 잡을 뻔했다. 바로 저래서 힘들어도 그에게 시키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편하다. 아무렴 내게 무엇이, 누가 젤 중요한가 또 한번 청명하게 깨우치는 아침이었다.



도시에서 단층집들과 이웃해서 살다보면 이웃집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렇게 더운 날이면 사방 문과 창문을 열어놓고 살아야 하니 앞뒷집이 담장 하나로 가려진 사이는 볼 것 안볼 것 다 보기도 한다. 2층에서 우연히 남의 집 속내를 들여다보아 정이 떨어지거나 맘이 멀어지기도 하고…


뒷집엔 부부가 남매를 두고 살았는데 어느 시점에서는 넷 다 일정한 직업이 없어 폐지를 모아 빵차로 내다 팔곤 했다. 그런데 수집한 종이를 수거처에 넘기는 날엔 커다란 고무 통에 물을 가득 받아 종이를 적셔 신문지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 작업을 따로 했다. 무게가 좀 더 나가게 하려는 꼼순가 본데 ‘저렇게 해서 얼마를 더 받는다고?’ 하면서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한번은 비가 부슬부슬 오는 늦은 밤에 심하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그 집 아줌마가 서 있었다. 우리 집과 그 집은 대문이 붙어있어 쓰레기를 한곳에 버리던 참이었다. 쓰레기통에 버려졌던 액자를 못 보았느냐 묻는다. 물론 봤다. 꽤 큰 액자였는데 누렇게 바랜 데다 낮에 내린 비에 젖어 얼룩덜룩했었다. 하지만 청소부가 이미 지나간 자리여서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아줌마 얘기로는, 남편이 지금 막 들어와 건넌방에 있던 그 액자를 살 사람이 생겼다 좋아했는데 하필 바로 오늘 아줌마가 방을 청소하면서 그 액자를 내다버렸단다. 평소에 동네에 버려진 것도 곧잘 주워다 쓰는 빵기네여서 혹시 갖고 들어갔을지 모르니 빨리 가서 물어보라 하더란다. 



아아, 불행히 전순란은 억대를 호가한다는 ‘박수근의 소’를 알아볼 예술적인 소양과 안목이 전혀 없었다! ‘쓰레기통 앞에서 그 액자를 보긴 봤는데 더러워서 아줌마가 버렸나 했어요.’ 라니까 아줌마는 그대로 주저앉는다. 그 밤을 도와 쓰레기 하치장까지 달려갔는데도 누가 챙겨갔는지 쓰레기에 묻혔는지 찾을 길이 없더란다. 그려진 소가 무슨 소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화가의 이름 덕분에라도 소그림을 팔아 목돈이 생겼더라면 폐지를 물에 적셔 무게를 늘이는 절박한 처지는 면했을 텐데…


작년에 스위스에서 사온 ‘피클 오이’ 씨앗이 모종 딱 하나를 싹틔웠는데 그걸 내가 수세미 모종으로 잘못 알고 데크 밑에 심었다. 자라며 보니 오이였고, 조랑조랑 마디마다 오이가 열려 하루에 두어 개씩 위아래층이 사이좋게 나눠 먹는 중이다. 금년의 텃밭 오이 농사는 망했다. 꽃은 피는데 열매가 통 안 열린다. 


휴천재에서 내려가는 길 20여 미터 거리에는 유영감님 논에서 물이 늘 조금씩 넘쳐흐르며 시멘트 포장도로를 물이끼가 덮고 있다. 좀 찝찝했던 길인데 오늘 저녁 둘이서 산보를 나섰다가 내가 그만 쭈욱 미끌어지며 벌렁 나자빠졌다. 핸폰 유리도 박살날 뻔,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거나 ​좌골로 주저앉았더라면 큰일 날 뻔했지만, 이럴 적마다 시어머니의 손길이 날 받쳐주시어 팔꿈치가 좀 벗겨지고 몇 군데 멍이 드는데서 그쳤다. 핸폰도 필름만 찢어지고. 영감님에게 전화해서 마을사람들 혹시 지나가다 낙상해서 크게 낭패 당하는 일 없게 하라고 일러드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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