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밀양에서 띄우는 편지
  • 유재영 수녀
  • 등록 2015-06-11 12:06:44
  • 수정 2015-12-18 12:20:44

기사수정

▲ 밀양 촛불문화재.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 유재영 수녀


컵 초에 불을 당겨받고 건넨 후 촛불 안으로 마음을 모으니 어느새 빨려든다.

내가 느껴지고, 밀양 촛불문화제에 함께 앉아있는 사람들이 느껴지고, 광화문 광장에 앉아있는 민중이 느껴진다.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온다.


평생 자식농사, 먹거리 농사에 한눈 한번 팔 새 없이 살아온 한국의 전통적인 어머니들. 내 땅, 내 먹거리를 지키겠다고 시작했지만 알면 알수록,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됐다.


인간의 시커먼 욕망의 덫에 몸서리치며 10여 년 간 외쳐온 주름진 외마디가 결국 등 돌리는 이웃들과의 갈라짐 앞에 허무와 좌절의 벼랑 끝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손들에게만은 더 이상 이 위험을 대물림 시킬 수 없다는 본능적 모성, 아니 자연 순리적 모성으로 벌떡 일어선 위대한 어머니들이다.


무너지는 생존권을 떠받쳐 안은 구부정한 허리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치닫고 있는 나라의 허리춤을 부여잡고, 창조 질서 보전이라는 자연 순리의 뒤틀리는 고리를 재갈물리고 있는 것이다.


작년 6.11 밀양행정대집행 이후 765kv 송전탑들이 모두 세워지고, 시험 송전을 반대하며 농성장 움막이 또 꾸려지고, 늘어가는 법적 소송들과 그에 대한 법률지원기금모금 노력들이 모였다.


하나의 얼굴들인 쌍용, 세월호, 스타케미컬 그리고 또 다른 밀양 삼척, 영덕 등으로 이어지는 연대의 걸음들. 다큐 영화 ‘밀양 아리랑’의 제작과 상영회들. 그리고 가장 최근 밀양 할매, 할배들이 쓴 나쁜 전기 보고서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책자 발간 및 북 콘서트 개최 행진들.


그 중심에 밀양의 할매, 할배들이 계시다.


▲ 밀양 할매와 송전탑 ⓒ유재영 수녀


지극히 평범하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던 한 어머니가 사회주의 노동혁명 운동을 하는 아들을 이해하고 동조하는 가운데, 마침내 한 아들의 어머니를 넘어 사회 혁명가들의 어머니로 대중의 의식을 개조하고 변화시켜가는 주도적 역할자로 변모해 간다는 내용인 러시아 막심 고리키의 소설 ‘어머니’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이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간직되어 있는 위대한 인간, 생명력의 진수일 것이고, ‘가장 인간적일 때 가장 진보적이 된다’는 명제와 상통하는 것이며, 바로 곳곳에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참 얼굴들일 것이다.


열심히 걷던 수도 삶이 세상과 가까이 맞닿아지지 않는 일종의 평행선 위의 발걸음 같은 갑갑함 속에, 이제는 시대의 질문 앞에 서야 한다는 절실함을 내 것으로 받아 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요구하는 일상의 한편을 과감히 접고 무언가에 여분을 허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고백하게 된다.


어머니의 직분이 기한 없이 계속되듯 죽을 때까지 하겠다는 밀양 할매, 할배의 불의와 악에 대한 저항의지와 자신의 일상을 과감히 접고, 함께 ‘선’을 지켜나가려는 수많은 연대자들. 이들이 이뤄가는 투박한 몸짓들이 바로 세상을 움직여가는 오늘의 복음일 것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코16,15) 이어서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16,17) 라고 말씀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신다. 시대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살아계신 영의 뜻을 잘 알아듣고, 행하는 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언어들’일 것이다. 모든 피조물에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살아계신 영으로 옮겨 놓으면 바로 그 분께서 내가 할 일에 손잡아 주실 것이다!


지금 나에게 들리고 있는 ‘새로운 언어들’은 어떤 것들인가?


작대기에 기대어 내딛던 걸음, 바삐 고추를 따던 총총걸음을 토요 촛불집회로 옮겨놓는 어르신들의 모습! 그 새로운 언어가 들리는가?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