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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노자와 교회 : 내가 물로 보여?
  • 김유철
  • 등록 2018-06-19 12:26:02
  • 수정 2018-06-19 12: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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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德之容 공덕지용 唯道是從 유도시종 道之爲物 도지위물 有恍有惚 유황유홀 惚兮恍兮 홀혜황혜 其中有像 기중유상 恍兮惚兮 황혜홀혜 其中遺物 기중유물 窈兮冥兮 요혜명혜 其中有精 기중유정 其精甚眞 기정심진 其中有信 기중유신 自古及今 자고급금 其名不去 기명불거 以閱衆甫 이열중보 吾何以知衆甫之然哉 오하이지중보지연재 以此 이차  

     

큰 德의 모습은 오직 道를 좇으니, 道 그 자체는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고,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다. 없으면서도 있는 것 같되 그 가운데 형상이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되 그 가운데 사물이 있다. 그윽하고 어둑한 가운데 정신이 있고, 그 정신은 매우 참되어 그 가운데 성실함이 있다. 옛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 이름이 사라지지 않아 만물의 근본을 다스리니 나는 무엇으로써 만물의 근본을 아는가? 이로써 안다.(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2003. 삼인)


모스크바에서 만난 십자가


▲ 스몰렌스카야 성당 ⓒ 김유철


독립영화였지만 당당히 모스크바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영화 <오장군의 발톱>(8월 개봉 예정) 시민제작자로서 모스크바를 다녀왔다. 몇 년 전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탄 이후 처음 가는 러시아였고 그 나라의 수도 모스크바인 만큼 설렘이 컸다. 그것도 영화제 공식초청이어서 항공권 제공이 되는 여정이라 살다보니 미리 받는 크리스마스 선물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러시아를 다녀온 사람이나 안다녀온 사람이나 이구동성으로 미리 당부했다. 모스크바 밤길이나 뒷골목은 피하라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의 호기심을 막지는 못했다. 또 살만큼 산(?) 나이에 그리 두려워할 것도 없다는 마음이 앞섰다. 일주일여 그곳에 머무는 동안 매일 새벽산책을 나갔다. 거의 동이 틀 무렵인 새벽5시부터 카메라를 매고 모스크바 강변과 도심의 뒷길을 탐색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꼭지점이 8개여서 8단 십자가(Восьмиконечный крест)라고 불리는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였다.


러시아 정교회


오래전 사도 성 안드레아가 ‘루시’라는 현재의 러시아 지역에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파한 이후 러시아 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슬라브민족에게는 오래된 민족종교와 같다. 988년 러시아의 전신인 키예프의 국교가 되었지만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탄압을 받고 다시 20세기에 들어와서 러시아 혁명이후 공산당의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1943년 스탈린의 종교정책 전환으로 부흥하여 교회의 공식적 조직이 크게 확장된 이후 현재까지 교세를 이어오고 있다.


▲ 니콜라이 게 - 진리란 무엇인가 / 트네챠코프 미술관


영화제 공식 참여시간 외에는 박물관, 미술관, 거리 방황이 여행자의 주된 일정이었다. 그 많은 장소에서 여행자의 눈과 마음에 계속 들어오는 것은 그들에게 비쳐진 예수와 교회에 대한 이미지였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만나는 숱한 작품 속에는 번지르르한 이콘성화도 있었지만 예술가들이 작품에 담아놓은 교회와 고위성직자의 모습들은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 속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 예수의 외로운 모습과 자애로운 성모의 모습은 그들에게 “진리가 무엇이오?”(요한18,38)라고 묻던 빌라도의 답답한 질문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도무유수 道無有水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새벽 산책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은 것은 도심에 있는 작은 성당 순례였다. 그들의 언어는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성당에서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많이 알려져 있는 붉은 광장의 유명한 성 바실리대성당은 가지 않았다. 아니 그곳을 갈 이유가 없었다. 그곳은 관광지였을 뿐. 주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여기나 그곳이나 젊은이보다는 노인들이 많았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새벽 성당을 찾았다. 초를 켜고, 향을 사르는 모습이 물처럼 보였다. 


노자가 이르기를 “도는 보이지 않으나 만약 모습이 있다면 물과 같을 것”이라는 의미로 ‘도무유수 道無有水’를 말했다. 짧은 여행기간에 슬라브 민족의 오래도록 지녀온 신앙관을 파악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에게 스며있는 예수의 오래된 발자국은 선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것이 물처럼 낮게 흐르고 있었다. 어감이 변해 버린 말이지만 누군가 자신을 물로 보다면 “내가 물로 보여?”라고 다툴 일이 아니다. 한국천주교회와 구성원 모두가 세상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고 물처럼 낮게 흐르자. 


▲ 이반 크람스코이 - 광야의 예수 / 트네챠코프 미술관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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