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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된 가톨릭국가, 아일랜드 교회는 지금
  • 끌로셰
  • 등록 2018-05-30 15:47:18
  • 수정 2018-05-31 18: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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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30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8차 개헌 내용을 폐지하라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출처=젠더와계급연구회)


지난 26일 아일랜드에서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통해 66.4% 찬성, 33.6 % 반대 여론으로 낙태 금지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 조항 폐지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수정헌법 제8조가 폐지되며 임신 12주 이하 산모에게는 제한 없는 낙태가 허용될 전망이다. 


특히 가톨릭국가인 아일랜드에서 가톨릭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개인의 권리를 신장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이 강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처럼 낙태를 죄로 인정하는 관행을 폐지하는 것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과 아일랜드 주교회의 입장도 주목 받고 있다.


교황청과 아일랜드 주교회의, 낙태죄 폐지 반대투표 독려했지만 역부족


아일랜드 수석 주교 에몬 마틴 (Eamon Martin) 대주교는 투표가 있기 전인 19일 사목 서한에서 “낙태를 죄로 명시하고 있는 아일랜드 수정헌법 제8조가 폐지될 경우 아일랜드의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전혀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생명과 자녀의 생명, 뛰고 있는 두 개의 심장, 연민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두 생명에 대해 생각하라”고 권고하며 수정헌법 제8조 폐지 반대에 투표할 것을 독려하기도 했다. 


낙태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기본권을, 생명 그 자체를 부정한다.


▲ 교황청 UN 상임 옵저버 이반 유르코비츠 대주교 (사진출처=AgenSIR)


한편, 교황청 UN 상임 옵저버 이반 유르코비츠(Ivan Jurkovic) 대주교는 투표 당일인 25일 세계보건기구 정책과 프로그램을 결정하는 세계보건총회(WHA)에서 이 같이 지적하며 “인간 생명은 신성하고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시민의 권리는 제1의 권리이자 기본권에 해당하는 생명권의 인정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어느 조건에도 귀속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낙태는 보건복지에 해당할 수 없으며 교황청은 낙태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모든 형태의 법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도록 허용하는 국가 차원의 법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대주교, “가감 없이 현실을 보자”


투표 결과가 발표된 뒤 에몬 마틴 수석 주교는 “아일랜드가 헌법에서 비롯되는 모든 태어나지 않은 아동의 권리를 삭제하고 자유로운 낙태 제도를 법제화하기 직전이라는 것에 큰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투표로 인해 “모든 인간 생명의 가치는 동등하며 태어나든 태어나지 않았든 모든 인간은 본원적 가치와 존엄을 가진다는 기본 원칙이 영향을 받아 실제로 어떤 생명이 다른 생명보다 덜 중요하다고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일랜드 수석 주교 에몬 마틴 대주교 (사진출처=CNS)


그러면서 “이제 아일랜드에서 생명 우선주의 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임신 중에 위기에 처한 여성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지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수정헌법 폐지가 가결되었다고 해도) 모든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확인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며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모든 행위는 언제나 매우 잘못된 행위”라고 강조했다. 


아일랜드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가 어디인지 특히 교회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을 보는데 가감 없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속으로만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블린 대교구 디어미드 마틴(Diarmuid Martin) 대주교는 “많은 이들이 이번 국민투표 결과로 가톨릭교회가 아일랜드 문화 형성에 있어 지엽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며 무관심 하다는 지표로 인식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결과에 놀라움을 표하며 그럼에도 교회가 낙태에 대한 입장을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틴 대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비추는 교회의 모습을 다시 세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엘핀 교구 케빈 도란(Kevin Doran) 주교는 28일 수정헌법 제8조 폐지에 찬성한 사람들에게 고해 성사를 하러 오는 것을 고려하라”고 요청했다. 현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도란 주교는 “찬성에 투표한 것은 죄였다”고 비판했고 이에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청취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1월 16일 칠레 주교회의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Vatican News)


한편, 이에 앞서 지난 2016년 수정헌법 제8조에 대한 폐지 안건이 의회에 상정되자 당시 아일랜드 주교회의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하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자기 지역의 정치인에게 연락하여 제안된 헌법 수정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그들에게 모든 상황에서 어머니와 태어나지 않은 아이 생명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 할 것”을 권고하며 헌법 폐지안의 국회 부결을 촉구한 바 있다.


교황, 오는 8월 아일랜드 방문예정‧‧‧국민투표결과 관련 공식입장은 발표된 바 없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8월 세계 가정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할 예정으로, 이번 아일랜드 국민투표 결과와 관련해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교황은 지난 28일, 국제가톨릭의료연맹 (World Federation of the Catholic Medical Associations) 대표단과의 만남에서 낙태, 안락사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태도에 관해 언급하며 낙태나 안락사에 관한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은 특히 의료 보건 영역 역시 기술관료제적(technocratic) 문화 패러다임과 무한한 인간 능력을 찬양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며 의료 기술 발전에 상응하는 윤리 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분의 역할이 환자의 의지를 실현해주는 것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특히 윤리 의식 없는 기술관료제 사회에서 의료인들은 “의료 전문 영역 뿐 아니라 임신 중절, 생명 중지(안락사), 유전 의학과 같은 민감한 윤리적 문제에 관한 법제화와 그 관련 논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와 관련해 여러 번 발언한 바 있다. 2013년 『복음의 기쁨』에서는 낙태에 대해 “인간 존엄성을 부인하고 제멋대로 태아를 다루려는 시도들이 자행되고 있다”, “신앙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 그 개인의 창조주에 대한 범죄”(213항) 라고 비판하고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214항)고 못 박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힘든 상황에 놓인 여성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고자 노력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214항) 라고 인정하며 낙태를 생각하거나 행한 이들의 고통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자비의 희년을 맞아 발표한 『자비와 비참』을 통해 교황은 낙태로 인한 죄를 사해줄 권한을 사제들에게 부여하고 이 효력을 사실상 영구적으로 연장했다. (자비와 비참 12항 참고) (관련기사)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발표한 교황 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도 “발달 정도와 관계없이 언제나 신성하며 모든 이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인간 생명의 존엄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무고한 생명을 지키는 일은 명확해야 한다”고 밝히면서도 “이미 태어난 가난한 이들, 궁핍한 이들, 버려진 이들, 혜택을 받지 못 하는 이들의 생명 역시 동일하게 신성하다”(101항)고 지적하며 모든 생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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