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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울릉도, 불운과 고마운 사람들
  • 지요하
  • 등록 2018-05-16 16:54:35
  • 수정 2018-05-21 17: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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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울릉도에 갔다가 5일 돌아왔다. 울릉도에서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울릉읍 도동항 부두 앞길을 걷던 딸이 길 가장자리 굴곡진 부분에 발이 걸려 시멘트 바닥에 넘어지면서 왼쪽 무릎뼈가 골절되고 말았다. 


우리 가족 처음의 울릉도 여행


▲ 울릉도가 화산섬임을 실감케 하는 나리분지. 여름에는 나리꽃이 가득 만발해서 나리분지라는 이름이 생겼다. ⓒ 지요하


우리 가족 난생 처음의 울릉도 여행은 딸의 제안 덕분이었다. 고향(충남 태안)에 소재하는 공공기관에 일자리를 얻어 8일부터 출근하게 된 딸이 출근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고 아버지 연세가 더 늘어나기 전에 울릉도 한 번 다녀오자는 제안을 했다. 


아내가 적극 찬동해서 나도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막투석을 하며 사는 신세라 캐리어 두 개에 투석 액을 준비하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3일치를 더 넣었다. 그리고 1일 오후 점심식사 후 곧 출발했다. 딸이 운전을 하고 경북 울진군 후포항으로 향했다.


강릉과 포항보다 후포항에서 가는 쾌속정의 항해 시간(3시간 30분)이 가장 짧다고 해서 후포항을 선택했다. 사정이 허락되면 울릉도에서 독도도 다녀올 계획이었다. 주간 기상예보가 불안하긴 했지만 날씨가 도와주기를 빌며 우리 가족은 여행길에 올랐다. 


후포항 근처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우리 가족은 항구 근처 시장으로 가서 영덕게로 저녁을 먹었다. 민박집으로 돌아온 후 11시쯤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몸 안의 투석 액을 빼고 6시간용 투석 액을 넣었다. 


다음날(2일) 아침 6시쯤에는 12시간용 투석 액을 넣었다. 대강 아침을 때운 후 우리 가족은 8시 1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 위해 후포항으로 갔다. 가는 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여객 터미널 매표소에서 1일 울릉도 가는 것은 아무 문제없지만 4일 울릉도에서 돌아오는 것은 보장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가족은 잠시 고민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 투석 액을 3일치나 더 가져왔으니 초과 비용을 감수하기로 하고 배에 올랐다. 나는 창가에 앉았지만 비 때문에 바다 풍경도 볼 수 없었다. 울릉도 근해에서 만난, 맹렬히 쾌속정을 따라오는 돌고래들이 유일한 볼거리였다. 


울릉도 후포항에 내린 다음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렌터카를 인계 받았다. 또 딸이 운전하여 2박3일 예약을 한 높은 지대의 리조트로 가서 짐을 풀었다. 비는 그쳤으나 안개가 자욱해서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짙은 안개가 온 섬에 가득한 것 같았다. 도리 없이 숙소에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렌터카를 이용한 울릉도 투어


▲ 해변도로를 달리며 계속 만나게 되는 높은 기암절벽들 ⓒ 지요하


▲ 해변도로의 한 풍경 ⓒ 지요하


다음날(3일)은 하늘이 맑았다. 하지만 파고는 높은 편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렌터카에 올라 내가 핸들을 잡고 울릉도 투어를 시작했다. 맨 먼저 울릉읍의 도동성당을 찾아갔다. 2008년에 설립 50주년을 지냈다는 도동성당 안에서 잠시 기도를 했다. 성당에서 나와 복잡한 도동 거리를 빠져나온 다음 한동안 해변도로를 달렸다. 계속 이어지는 높은 절벽들, 기이한 바위들을 보며 울릉도가 화산섬임을 실감했다. 일방통행의 터널을 세 개나 지난 다음  서면 태하리에 있는 ‘태하향목 관광모노레일’에 도착했다. 


먼저 모노레일을 타고 산을 오른 다음 왕복 35분가량 산길을 걸었다. ‘태하등대와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를 본 다음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천부성당을 찾아갔다. 천부성당 역시 10년 전에 50주년을 지낸 역사가 있는 성당이었다. 우리 가족은 울릉도에 있는 두 개 성당을 같은 날 모두 찾은 셈이었다.  


▲ 천부성당 높은 계단과 성모상 앞에서 / 계단이 너무 높아 나는 오를 수 없었다. ⓒ 지요하


이어서 ‘나리분지’로 이동했다. 구불구불한 높은 산길을 오르며 사륜구동 차가 아니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다시 했고, 나리분지가 분화구였음을 실감했다. 너른 분지 안의 ‘산마을식당’으로 가서 산나물비빔밥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고추장을 넣지 않고도 맛이 좋아 거뜬히 밥그릇을 비웠다. 


다시 해변도로를 밟고 돌아오다가 길가 호박엿 공장에 들러 엿과 젤리, 호박 빵을 사고 25000원을 현금 지불했다. 그때 울진 후포항 선박회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4일) 배가 뜨지 않는다는 연락이었다. 우리 가족은 내일 숙소를 옮기고 하루 더 묵기로 했다. 독도를 가보는 일은 포기했다. 숙소 앞 언덕 위에서 멀리 바다 위에 배처럼 떠 있는 독도를 눈에 담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귀로 예정일이었던 4일 숙소를 옮겼다. 리조트를 떠나 사동 항 근처 호텔에 짐을 옮긴 다음 렌터카도 반환했다. 호텔은 텅텅 빈 상태였다. 강릉과 포항, 후포항의 모든 배가 발이 묶인 탓이었다. 5천 명이 들어올 예정이었다는 말도 들었다. 


호텔이 텅텅 빈 덕에 하루 19만원 숙박료를 10만원으로 할인받을 수 있었다. 호텔 방에서 TV를 보며 오전을 보낸 다음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기 위해 2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음식점은 휴업 상태였다. 투숙객이 거의 없는 탓이었다. 우리 가족은 밖으로 나가 식사를 하기로 했다. 


공교로움 속에서 발생한 뜻밖의 사고


▲ 노면의 굴곡 / 딸이 보행 중 돌출 부분에 발이 걸려 시멘트 길바닥에 넘어져 무릎뼈를 다친 울릉읍 도동항 부두 앞 ⓒ 지요하


승강기 안에서 만난 분이 있었다. 울릉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신다는 분이었다. 그분의 호의로 우리 가족은 그분 승합차를 타고 도동항으로 갈 수 있었다. 승합차에서 내린 다음 우리 가족은 영업을 하는 음식점이 어디에 있나 두리번거리며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딸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시멘트 길바닥 위에 나동그라졌다. 신음을 토하며 일어나지를 못했다. 근처에 있던 여행사를 하시는 분이 달려와 보고는 급히 119 구급차를 불렀다. 잠시 후 우리 가족은 구급차를 타고 울릉보건의료원으로 갔다. 


응급실에서 사진을 찍어본 결과 탈골이 아닌 무릎뼈 골절이었다. 우선 부목을 대고 붕대 처치를 한 다음 1인 병실로 입원을 했다. 응급실 의사가 딸을 후송할 병원을 물어 우리 집에서 가까운 서산의료원을 지목했다.  


응급실 당직 의사는 서산의료원 정형외과 의사와 직접 통화를 한 다음 서산의료원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두 분이고 수술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는 말을 전해 주었다. 우리 부부는 딸을 서산의료원으로 후송하기로 결정하고 내일은 제발 배가 뜨기만을 빌었다. 


우리 부부는 로비로 내려가 콜택시를 부른 다음 호텔로 갔다. 관리실이 비어 있어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아 일단 짐들을 가지고 나왔다. 3층 관리실에 열쇠를 놓고 내려왔을 때 젊은 직원을 만나 그의 승합차에 짐들을 싣고 의료원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호텔 지배인이 와서 5만원을 돌려주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원 당직의사와 간호사, 원무과 직원들은 환자 보호에 최선을 다했다. 환자를 속히 운송하기 위해 배편을 알아보는 등 애를 썼다. 5일 오후에 단 한 척이 포항으로 간다고 했다. 1천 명 가까이 승선하는 가장 큰 배라고 했다. 그 배에 환자를 태우기로 하면서 보호자 1인만 승선할 수 있다고 했다. 여행객들이 밀려서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도리 없이 나는 남기로 했다. 6일 12시에 후포항으로 가는 배를 타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울릉보건의료원에 하루 입원하기를 원했다. 혼자 투석을 하며 밤을 지낸다는 게 불안했다. 간호사들이 있는 의료원 병실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응급실에서 당직의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입원 수속을 밟은 동안 4,50대로 보이는 여성 원무과장이 응급실로 왔다. 내일은 또 무슨 변동이 있을지 모르는데 복막투석 환자를 붙잡아놓을 수는 없다며 오늘 확실히 뜨는 배가 있을 때 같이 보내드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며 당직의사에게 소견서를 쓰도록 부탁했다. 


그 의사 소견서 덕분에 나도 5일 오후 5시 20분에 출항하는 배에 오를 수 있었다. 환자를 병원 구급차에 태워 배로 옮기는 수고는 물론이고, 우리 부부의 발권까지 원무과 직원이 대신 해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한량없었다.


울릉도 ‘유감’과 고마운 사람들


▲ 딸이 넘어지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고 달려와 구급차를 불러준, 울릉도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분께 현장 사진을 부탁했다. ⓒ 지요하


포항으로 오는 동안 높은 파고 때문에 배의 롤링이 극심했다. 화장실에 가기도 어려웠다. 여기저기에서 멀미로 구토를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속도도 평소보다 느려서 10시 10분쯤 포항항에 도착했다. 울릉보건의료원의 예약 전화를 받고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사설 응급차량에 환자를 태우고 아내도 동승했다. 울릉보건의료원 원무과 직원은 서산의료원까지 50만원에 예약을 했다고 했는데, 차량 기사는 60만원을 요구했다. 그냥 감수하기로 했다. 


대전에서 사는 아들이 미리 와 있었다. 나와 아들은 택시를 타고 후포항으로 간 다음 내 차에 올랐다. 택시비는 85,000원이었다. 애초 포항항에서 배를 타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딸과 아내는 6일 새벽 2시에 서산의료원에 도착했고, 우리 부자는 4시쯤 서산의료원에 도착했다. 나는 처음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투석을 하기도 했다. 


딸은 9일 오후에 수술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무릎뼈가 세 동강났고 근육도 많이 파열되어서 근육을 꿰매며 철심을 박아 뼈들을 연결했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딸은 현재 회복 중에 있다.

 

내가 서산의료원을 택한 것은 내 집에서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있는 대전의 대학병원, 동서가 살고 있는 천안의 대학병원들도 생각했고, 보훈가족 60% 감면을 받는 대전 보훈병원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병원과 집을 쉽게 오갈 수 있는 서산의료원을 선택하면서 비용을 감수하기로 했다. 


딸이 8일부터 기간제로 출근하기로 했던 지역의 모 공공기관도 딸의 치료기간 동안 출근을 유예시켜 주기로 했다. 대학 사학과 출신인 딸은 불운 가운데서도 전공 계통의 일에 대한 희망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울릉보건의료원 직원들의 친절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일박도 하지 못했지만 호텔의 지배인과 직원, 울릉도에서 여행사를 하시는 분 등 고마운 분들이 많다. 울릉도 주민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훈훈했다. 


그러나 단 하나, 도동항 부두 앞의 노면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시멘트 포장길의 가장자리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심히 걷다가는 발이 걸리기 딱 좋게 턱을 만들어놓았다. 그 기형적인 길바닥 때문에 우리 가족은 큰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말았다. 울릉군과 울릉읍의 주의 환기를 당부한다.











[필진정보]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추상의 늪>이, <소설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정려문>이 당선되어 등단함. 지금까지 100여 편의 소설 작품을 발표했고, 15권의 저서를 출간했음. 충남문학상, 충남문화상, 대전일보문화대상 등 수상. 지역잡지 <갯마을>, 지역신문 <새너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과 논설주간으로 일한 바 있고, 향토문학지 <흙빛문학>과 <태안문학>, 소설전문지 <소설충청>을 창간함.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외래교수, 한국문인협회 초대 태안지부장, 한국예총 초대 태안지회장, 태안성당 총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공동대표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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