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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 거짓희망의 유포, 남발하는 힐링
  • 지성용
  • 등록 2018-05-14 14: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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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7년 4월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 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 이스가리옷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를 배신한 사실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신앙인이 돈으로 예수를 배신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에도 드물지 않다. 돈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고위성직자들이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대기업 총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최근 들어 교회가 영리사업과 상조회사 등을 운영하며 막대한 자금을 형성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장례식장 운영, 대학확장, 의료기구 수출입 판매 등으로 교회가 영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교회 유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의 속성, 운동 방향과도 일치한다. 이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20세기 말 지구촌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세계적 변동은 거주인구 천만 명 이상의 ‘메가시티(megacity)’가 빠르게 증가한 점이다. 1975년만 해도 뉴욕과 도쿄, 멕시코시티 등 3-4개 정도뿐이었지만, 40여 년 만인 2016년에는 대한민국 서울을 포함해 47곳으로 증가했다. ‘메가시티’는 글로벌 세계의 정치 중심이자 새로운 시장지향적 글로벌 경제의 거점, 점차 심화되는 도시 간 글로벌 경쟁의 핵심 주체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세속화(secularization) 과정은 신앙과 교회를 사적이며 인간적인 영역으로 축소시키려 합니다. 더 나아가, 초월적인 것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써 윤리적인 타락을 가져오고, 개인과 집단의 죄의식을 약화시키며, 상대주의를 키웁니다. 이런 것들은 전체적으로 방향감각의 상실로 이어집니다.(『복음의 기쁨』 64항)


메가시티들은 새로운 글로벌 정보·지식경제의 모든 과정들을 주어진 특정 지역 속에 집중시켜, 최고의 것(강력한 힘과 사람들)과 최악의 것(구조적으로 부적합한 사람들)을 집중시킨다. 이러한 문제에도 메가시티들은 경제·기술·사회적 역동성의 중심이고 각 나라의 실제적 발전 엔진이며 새로운 경제 속에서 모든 사람이 의존하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해 주는 접점이라는 이유로 매력이 증가하고 있다.

  

1970년대 초부터 40여 년간 진행된 한국가톨릭교회의 고속성장과 확장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대사회적인 건강함을 유지했던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정의평화위원회의 활동 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종교사회학의 ‘합리적 선택 이론’에서 말하는 ‘종교시장(religious market)’에서의 ‘신자유주의’와 ‘소비자(고객) 중심주의(consumerism)’가 표출된 것으로 바라보는 학자들도 있다. 


‘합리적 선택 이론’은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인간 사회에서 종교가 탄생·성장·발전·쇠퇴하는 일련의 변화 과정을 인간 사고의 경제적 합리성에 근거해 설명하려는 새로운 시도다.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 이후의 기존 종교사회학이 소홀히 취급해왔던 종교 현상의 공급 측 요소들이 1990년대 이후 최근 종교경제모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그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종교 사회를 공급자와 수요자로 구성된 하나의 시장으로 가정하는 이 모델은 미시적 관점에서 종교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행위자들이 경제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종교적 믿음과 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거시적 관점에서 종교 시장에 대한 법적 규제가 시장 참여자들의 종교적 참여도를 떨어뜨린다고 한다. 종교 집단의 성장이나 감소가 종교적 수요의 양적 변화에 기인하기 보다는 종교 공급자들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종교시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종교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자들이 성장하고, 비효율적 공급자들은 쇠퇴한다는 이론이 지금 한국개신교와 가톨릭교회에 반영되고 있다.


‘종교경제(religious economy)’는 종교를 하나의 상품(commodity)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사업가형 사목자 (pastopreneurs)’다. 이는 교회와 공동체가 선교를 확장시키려 할 때 필요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비즈니스의 위험과 비슷한 위험을 불사하려는 교회의 지도자를 말하며, 이들은 일반의 평범한 지도자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다양한 현실적 기법을 사용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사업가형 사목자’들은 더 큰 성당을 짓고, 더 많은 시설을 만들어 내며 심지어 ‘주교와 함께하는 성지순례’라고 선전하는 해외 여행투어 프로그램 등 온갖 위험한 일들을 불사하면서까지, 신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종교와 비즈니스 관행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돈에 대한 교회의 변화된 관점도 중요하다. 기존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가지게 된 한국 천주교회 주류 집단인 중산층 신자들은 자신들의 상승적 사회이동, 즉 사회경제적 지위 성취가 신(神)의 뜻이라는 일종의 ‘자기정당화’를 일삼고, 막연하게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성취될 것이라는 기복적 ‘긍정 신학(?)’에 도취된다. 미국 개신교 메가처치 설교자로 긍정적 사고를 설파한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 한국어로 번역된 2005년 이후 오랫동안 인기도서가 된 점만 봐도, ‘번영의 복음’ 한국판이 담은 성공의 교리와 자본주의 양자 간에는 친화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한국형 개신교의 메가처치 형태들과, 가톨릭교회의 교구별 대규모 성령기도회, 체육관 전례, 각종 성모신심관련 행사들은 무속신앙의 영향을 받아 한층 개인숭배적인 요소가 강하다. 또한 성공지향적인 중산층이 모여서 부르주아적 종교 조직이라는 동질성을 띠며 복음의 고난과 희생보다는 축복과 번영을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삶의 위기와 고통의 한 복판에서는 잃어버린 십자가를 찾을 수가 없어 어려워하는 신자들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의미를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문화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이러한 문화에서 새로운 언어, 상징, 메시지 그리고 패러다임을 차용하는데 이것들은 대체로 예수님의 복음과 반대되는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여 도시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the Synod)에서는, 오늘날 이 거대한 공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그 변화가 만들어내는 문화는 새로운 복음화에 있어 유리한 거점이 라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도시민들에게 더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기도와 교감을 위한 혁신적인 공간과 가능성을 구상해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73항)


신앙을 어떻게 상품화 시키는가? 개신교는 이제 종교상품 시장이 다변화 되고 상품도 다양해져 다양한 종교물품과 서적, 음반, 성물, 강의 등이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게 광범위하게 유포 된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종교상품 시장의 후발업체 격으로 개신교에서 이미 상품화시켜 재미를 톡톡히 보았던 방식들을 여과 없이 반영하여 사업에 적용한다. 대규모 체육관성령세미나, 안수치유기도 피정, 음반, 성물, 도서 등 소비의 측면에서 사용자들의 요구가 아닌 생산자의 기획에 따른 불필요한 상품들의 생산과 판매가 줄을 잇는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안에 ‘힐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뜻하는 것이 이루어 질 것이다” 라며 한국인들의 기복신앙과 현세주의에 부합하여 금세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책들과 대중강의가 지금 우리들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인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 체제로 들어서며 한국사회사 경제 위기에 처하고, 실업과 실직, 부채와 파산으로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내 몰리면서 이 사회에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상처받고 거리로 내 몰린 이들에게 종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밥 한 끼가 아니라 ‘마음을 치유(힐링)한다’는 것이었다.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최고조에 달하고 다시 한번 한국사회에 쓰나미로 다가올 때 많은 이들은 불안과 충격을 받았고, 생활에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는 주 문에 걸려 ‘힐링’이라는 처방전을 받고 TV, 신문, 인문학 강의들에 ‘힐링’자만 나오면 달려가는 묘한 ‘힐링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겠나’ 했지만 역시나 삶에서 다가오는 어려움은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문제와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들을 ‘중독’상태로 내 몰아 막연한 기대와 희망만을 품게 했다.


복음은 인간의 말 재주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사목자가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는 복음은 헛된 것이며 복음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식별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세속주의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신자가 소수에 불과한 나라에서조차, 여론은 가톨릭교회를 신뢰할 수 있는 기관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또한 가장 궁핍한 이들을 향한 연대와 관심 덕분에 신뢰받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는 평화, 사회 화합, 환경과 생명 수호, 인권과 사회적 권리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항상 중재자로서 행동했습니다. (『복음의 기쁨』 65항)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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