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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노자와 교회 : 25년 사제에게 하늘은 무엇일까?
  • 김유철
  • 등록 2018-05-08 10:12:09
  • 수정 2018-05-09 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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致虛極守靜篤 치허극수정독 萬物並作 만물병작 吾以觀其復 오이관기복 夫物芸芸 부물운운 各復歸其根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귀근왈정 靜曰復命 정왈복명 復命曰常 복명왈상 知常曰明 지상왈명 不知常妄作凶 부지상망작흉 知常容 지상용 容乃公公乃王 용내공공내왕 王乃天天乃道 왕내천천내도 道乃久沒身不殆 도내구몰신불태 

       

비어있음을 철저히 통찰하고 고요함을 착실하게 지키면 만물이 함께 번성하되, 나는 그 돌아감을 본다. 모든 사물이 끊임없이 바뀌지만 저마다 제 뿌리로 돌아오는구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존재의 운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고 존재의 운명을 일컬어 실재實在라 하며 실재를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 실재를 모르면 재앙을 일으키고 실재를 알면 모든 것을 품는다. 모든 것을 품음이 곧 공公이요, 공이 곧 왕이며, 왕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도道요, 도가 곧 영원함 이니 몸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2003. 삼인)



은경축,

아름답지만 새겨야 할 말


노자 16장에 나오는 스승의 말씀은 25년쯤 사제로 산 사람들이 읽고 행하면 좋을 그런 가르침이다. 구 교우들은 사제의 나이는 헤아리지 않는 무량수라고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오십대 들어 맞이하는 사제의 은경축은 사제 자신에게도 그렇거니와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신자들의 마음에도 바람결이 일렁이기도 매 한가지다. 평신도의 혼배성사 25주년을 기념하는 은경축처럼 숱한 사연이 하루하루 쌓여 그 날을 맞이한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16장 끝 구절을 풀기를 “容乃公용내공 모든 것을 품는 것은 사私가 없는 것이며, 公乃王 공내왕 사私가 없는 것은 일체에 충만한 것이며, 王乃天왕내천 일체에 충만한 것은 모든 것을 벗어나는 것”이라 새김으로서 ‘공公과 왕王과 하늘天’의 의미를 새롭게 했다. 은경축보다 더 중요했던 25년 전 서품식 그 날 하늘에서 공적으로 받은 왕직에 대한 실재實在의 의미를 새기라는 말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축하와 축복으로 아름다울 사제의 은경축이지만 다시 출발해야 하는 부활의 터닝포인트이기도 하다.



문을 좀 여시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7,7)라는 예수의 말씀이 때로는 역설적이게도 그 문 안에 있는자에게 하는 당부이자 명령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 말씀은 “너에게 청하는 자가 있다면, 찾는 자가 있다면, 문을 두드리는 자가 있다면”에 이어지는 그 다음 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 맞은 이를 외면하고 지나가던 사제(루카10,29-37)는 없었을까? 하고 되돌아보는 한국종교 전반의 현실이다. 


25년쯤 사제로 살았다면 사제관을 열어두면 어떨까? 두드리기도 전에 열려있는 사제관으로 세상사에 강도 맞은 이들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고민을 가진 이들이, 벗이 그리운 이들이 들어오면 사제의 사생활이 없어지는 걸까? 사생활이 없어지면 비로소 모든 것을 품는 공公의 시작이라는 노자 스승의 말을 되새긴다. 서품 25년에 근원으로 돌아가는 고요함을 맛보고 그 고요함이 사제 직분의 실재實在이고 실재를 아는 것을 일컬어 밝음이라 하니 그것이 하늘이 주는 최상의 은경축 선물이 아니겠는가?



마니피캇(Magnificat)을 부르던

마리아의 마음으로


복음사가 루카는 무슨 마음으로 하늘아이를 잉태한 마리아의 말을 기록했을까? 오래전 사제 서품식에서 울리던 ‘성모의 노래’를 25년의 사제 세월로 너무도 많은 것이 익숙해지고, 굳어지고, 닫히려는 사제들의 머리 위로 “나에게 큰일을 하신 그분”이 어떤 분인지 다시 울려 퍼지길 시인의 마음으로 기도한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루카1,46-55)




[필진정보]
김유철 (스테파노) :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이며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이다.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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