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쟤가 내 아들인가? 국민 아들인가?’
  • 전순란
  • 등록 2018-05-02 10:30:41

기사수정


2018430일 월요일, 맑음

 

엄마는 아직 주무셔요?” 아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난다. 오늘은 외교부에 들어가 회의를 하느라 일찍 간다던데 뭐라도 먹여 보내야지 싶어 아침을 준비하는 중 아래층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리며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소리와 더불어 아들은 벌써 가버리고 없다. 이번에는 한국 와서 20일 만에 가는데 빵고가 오던 날 단 하루 집에서 밥을 먹고, 점심 저녁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외식을 하고 밤늦게야 돌아오니까 걔가 내 아들인지 국민의 아들인지 헷갈린다.

 

오늘 저녁은 마지막이어서 춘천막국수라도 먹기로 하고 솔밭공원으로 나갔는데, ‘꿩 대신 닭이라고, 엊그제 평양냉면 대신 막구수 마저 동이 났는지 식당 문은 닫혀 있고 불은 꺼졌다. 덕성여대 앞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짜장면, 볶음밥을 한 접시에 시키고 짬뽕을 따로 시켜 나눠먹었다. 지리산 동네 가까운 중국집에서는 두 사람이 다른 메뉴를 시켜도 한 가지를 시키세요! 어떻게 사람마다 다른 음식을 시켜요?’라며 식당주인이 고객에게 호통을 치므로 서울 와서 짬짜면이라도 시켜먹는 날엔 대단한 호강을 누리는 기분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범은 동네 시장 반찬가게에 가서 콩자반, 쥐치포 볶음, 깻잎, 무말랭이, 오징어포, 단팥빵, ‘싸구려 요거트’(손주들은 꽁지에 이빨로 구멍내고 빨아먹는다)를 사들고 올라왔다. 제네바에 있는 식구를 위한 장보기다. ‘왜 엄마한테 해달라쟎고?’ 하니까 엄마, 때로는 불량식품을 먹으며 얼마나 해방감을 느끼는지 모르시죠?”란다. 집에서 엄마가 하는 고기 넣은 궁중떡볶이보다 길바닥에서 파는 시뻘건 밀가루 떡볶이를 더 좋아하는 게 애들이다.

 

오전 11. 내일 지리산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눈 검사를 하러 공안과에 갔다. 내가 내려가기 전 얼굴 한번을 더 보겠다고 한목사와 두 엘리가 찾아와 조계사 앞 채식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매일 사람 만나 밥 먹느라 고생한다며 아들을 놀렸는데 그게 바로 내 얘기가 됐다. 보스코는 점심을 챙겨먹고 혜화동 사제단 사무실로 회의를 하러 나갔을 시각이다.

 

두 엘리가 떠나고 나서도 한목사는 우체국으로, 공안과로 동행을 하며 함께 있어주었다. 친구란 별 일 없이도, 할 말 없이도 곁에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다. 보스코와 가장 친한 친구가 수복씨인데 둘이 만나도 그저 앉아서 말없이 있다가 아야! 나 간다?!”라고 싱겁게 떠나곤 한다.



어제 연술이서방님이 준 페튜니아를 마당에 심었다. 우리가 자주 와서 보지도 못할 테고 아래층 구총각이 그게 꽃인 줄이나 아는지 모르겠지만 빵기네 집 마당엔 혼자라도 꽃이 피어나고, 주인 없는 마당에선 괭이가 생쥐를 갖고 놀다가 길게 허리를 늘이고 잔디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집이면 좋겠다. 내일 떠나므로 꽃에 물을 주고 절구마다 깨끗한 물을 채워 우리 집 놀러오는 새들이 마른 목을 축이게 했다. 어제 연술이서방님네 그 넓은 정원을 보고 내 첫 느낌은 참 좋다. 그런데 이게 손바닥 만한 우리 정원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일이면 거의 3주만에 지리산으로 돌아가는데 안주인 손길을 기다리는 휴천재 텃밭과 마당 화단이 이제야 걱정되기 시작한다. 안과 선생님은 나더러 한달간 얼굴 세수도 하지 말라면서 특히 지나친 노동을 당분간 금했는데 그 땅이 나를 그냥 둘지 모르겠다.

 

국민 88.4%가 지지하는 판문점 선언을 어떻게든 깎아내리는 보수세력은 거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보이는 듯하다. ‘위장평화쇼!’(홍준표)를 외치는 목청에 편승하여 저 선언이 어처구니없다!’고 한 나경원 자유당 의원의 말은 특히 귀에 거슬린다. 서울대교구의 평화신문이 그니(아셀라)가톨릭 리더로 띄워주었기 때문이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9일에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위해 진실 된 대화의 길로 나아가는 남북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결단에 기도로 함께 한다. 협력이 계속 되어 사랑하는 한국인과 전 세계에 좋은 결실을 가져다주기를 기도한다고 하였다. 자유당 지지 20% 국민가운데 들어 있는 꼴보 가톨릭신자들이나 나아셀라는 이런 교황을 뭐라고 할까?

 

더구나 우리 주교님들은 27일 당일에 상호 간의 존중과 협력의 미래를 담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이 발표된 것은 한반도 통일 시대를 여는 역사의 사건이자 이 땅에 희망의 복음이라고 환영하면서 국민들의 성원과 국가 지도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오늘 우리 겨레가 평화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뎠음을 기뻐하며 하느님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선물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하였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