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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토착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 지성용
  • 등록 2018-04-30 16:01:03
  • 수정 2018-04-30 16: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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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17년 4월 발간된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 한국 천주교의 첫 영세자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는 장면.


한국교회의 기원에 대한 논의들은 차치하더라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1784년부터 한국교회는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형성된 교회다. 이 자발적 신앙활동의 주도자들은 이승훈(李承薰),이벽(李蘗), 권철신(權哲身), 정약종(丁若鐘), 정약용(丁若鏞) 등의 개혁적 지식인들이었으며 모두 당시 사대부 계층의 인물들이었다. 


당시 실학파는 유교 전통을 반성적으로 새롭게 인식하는 개혁정신을 지니면서, 비판과 실증 그리고 실용정신에 기초를 두고 새로운 학문적 기풍을 형성하고 있었다. 실학파는 학문의 객관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는 개방정신을 지녔으며, 특히 성호학파는 서양과학과 천주교 사상에 관해 18세기 전반부터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성호학파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유교신념에 입각하여 천주교 사상을 공박하는 노론과 천주교 신앙을 수용하는 소론으로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이벽을 중심으로 한 남인학자들은 1777년 이래 천진암(天眞庵)과 주어사(走魚寺)의 강학회(講學會)를 통해서 천주교 신앙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리학의 경직되고 원론적인 주리적(主理的) 틈 가운데에서 새로운 학문을 탐구하고 새로운 정신을 함양하며, 암울한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궁리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싹을 키워나갔다. 그들은 당대의 지배적인 성리학적 이론체계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공자와 맹자의 사상적 골격을 이루는 초기 유학에로 연구범위를 집중했다.


복음화는 교회의 과업입니다. 교회는 복음화의 주체로서 계급조직이나 제도 그 이상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우선 하느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걷는 백성입니다. (『복음의 기쁨』 111항)


그들은 공맹학(孔孟學)의 초기유학 속에서 참된 유교의 진리를 인식하면서 결과적으로 전통적 유교문화의 정수를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은 초기 유교의 기본사상에 입각하여 수신치기(修身治己), 극기복례(克己復禮) 등의 정도(正道)를 실천하면서 점차적으로 새롭고 폭넓은 세계의 영성으로 시야를 돌리기에 이른 것이다. 


그 기반 위에서 이들은 17세기 즈음 마테오 릿치(Matteo Ricci, 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나 판토하(Diego de Pandoja, 1571-1618)의 『칠극(七克)』 등의 한역서학서를 연구하면서 그리스도 신앙을 체화하기 시작했다. 『천주실의』의 저자 마테오 릿치 신부는 이른바 ‘보유론(保儒論)’의 입장에서 원시유교와 천주교의 동질성을 이론적으로 제시하면서 당시의 중국교회의 토착화를 위한 합리적 이론체계를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신앙의 진리를 연구하고 수용하기 시작한 당시의 조선왕조 사회는 공적인 문화와 종교 그리고 정치 및 제반 생활규범이 유교사상에 의해 지배되는 절대군주체제의 사회였다. 그 사회는 엄격한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유교이념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지배될 수 있었던 정적이고 폐쇄적인 획일사회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 사회체제 안에서 노비, 고아, 무당(巫堂)이나 백정 등 천민 들은 물론 대다수의 상민과 부녀자나 유약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 삶을 살아야 했다. 


한국교회가 설립 초기부터 착수했던 토착화 작업의 성취 노력은 로마교회 당국의 선교정책 변화와 관련하여 지속된 박해로 인해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서양인 선교사들에 의해 포교활동이 시작된 뒤에는 전통적 한국문화와 종교사상에 대한 선교사들의 무시 또는 무지로 말미암아 서구사회에서 토착화된 교회의 이식(plantatio, 移植) 혹은 부식(implantatio, 扶植) 노력으로 시종 점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상태는 신앙의 박해가 끝나고 일제 식민통치가 지속되는 동안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 수도원 한국인 청원자들과 파리외방전교회 사제 (사진출처=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교회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된 위대한 계획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류 한 가운데서 그분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선포하고 가져다주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은 다시 길을 찾아 걸어갈 희망과 용기와 힘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자비를 아낌없이 베푸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환영과 사랑과 용서를 받고, 복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 받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 114항) 


교황 바오로 6세는 1975년 12월 8일 공포한 사도적 권고인 『현대의 복음선교 Evangelii Nuntiandi』에서 토착화와 관련된 서술 가운데 “복음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복음의 힘으로 모든 개인과 집단의 양심,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활동, 그들의 생활과 구체적 환경을 내적으로 변혁시키려 노력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회가 복음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판단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양식 등을 복음의 힘으로 역전시키고 교정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도적 권고는 토착화의 의미를 해설하고 있다. 여기서는 ‘문화의 복음화(Evangelzatio Culturae)’라는 말로써 토착화 개념의 의미를 서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복음화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문화의 깊은 뿌리에까지 생명력 있게 침투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곧 현대 복음 선교의 사도적 권고는 복음이 가르치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인류의 모든 문화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복음과 복음선교가 어떠한 문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문화와 융합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사도적 권고는 복음에 의해 침투되는 여러 문화가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재생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많은 신학자들이 토착화에 대한 논의와 전통에 대한 존중으로써 그리스도교를 다시 바라보려는 노력을 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신학사상, 전례양식, 신심운동, 영성생활 그리고 건축양식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서구교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 지은 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와 디자인은 서구의 것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필자가 로마에서 공부를 하며 미사를 지내던 우르바노 기숙사에는 아프리카와 세계의 여러 나라, 특별히 선교지 국가의 신학생들이 와서 공부를 하는데, 그들이 보여주는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영성은 전례 안에, 기도 안에 그리고 생활 속에 아주 멋들어지게 녹아 있었다.


바오로 6세는 민중의 경건함이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만 알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민중의 경건함은 사람들이 믿음을 증언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거의 영웅적 희생과 관대함을 갖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러 베네딕토 16세는 라틴 아메리카와 관련해 이야기하면서 민중의 경건함이 “가톨릭교회의 보물”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라틴 아메리카 백성의 영혼을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아시아 교회, 라틴 아메리카 교회, 아프리카 교회 등은 신학의 토착화를 위한 다양한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주요과제인 토착화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격변하는 민족과 인류의 상황 그리고 지역교회와 세계교회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개별적인 문제들을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시대의 징표’에 유의하면서, 즉 현대의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직면하게 되는 사건과 요구와 염원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인지하려 노력하면서 중차대한 토착화의 과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복음을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를 복음화해야 합니다. 가톨릭의 전통을 지닌 나라들에서 문화의 복음화는 이미 존재하는 풍부함을 촉진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종교적 전통을 지닌 나라들이나 철저하게 세속화된 나라들에서는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과정을 도모해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 69항)


2천년 동안 수많은 민족들이 신앙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 은총을 일상생활 속에서 꽃피웠으며 각자의 문화가 지닌 언어로 그 은총을 전해왔습니다. 한 공동체가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때마다 성령께서는 변화시키는 복음의 힘으로 그 문화를 풍요롭게 했습니다. 복음화된 민족의 그리스도적 역사 안에서 성령은 교회가 가진 계시의 새로운 측면들을 보여주고 교회에 새로운 모습을 부여함으로써 교회를 장식하게 됩니다. 토착화를 통해 교회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문화와 함께 교회 고유의 공동체를 이끌어 들입니다.” (『복음의 기쁨』 116항)



[필진정보]
지성용 : 천주교 인천교구 용유성당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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