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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성조기가 나부끼고 일장기까지 등장한 3·1절!
  • 전순란
  • 등록 2018-03-02 11: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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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일 목요일, 맑음


3·1만세 운동을 하러 나가기에 딱 좋은 청명한 날씨다. 바람이 불어서 정신이 좀 사나워서 그렇지 뛰어 나가면 그리 추울 것 같지도 않다. ‘태그끼아재들’이 우리 태극기에 대한 이미지를 너무 훼손하여 국기를 꼭꼭 접어 서랍장 깊이깊이 넣어놓고 행여 쓸데없는 외출로 눈에 안 나게 하던 참이었다. 쉽게 눈에 뜨이면 보수꼴통이나 ‘틀딱’(틀니 딱딱 거리며 싸돌아다니는)이라는 오해라도 받을까 국경일에도 국기게양이 껄끄럽다니…


아무튼 서랍 속에 개켜 넣었던 태극기를 꺼내 다리미로 곱게 다려 테라스 가운데에 상하로 매어 걸었다. 막 시집와서 산 태극기니까 색이 바라고 많이 낡았다. 그동안 오빠가 태극기 집회에 나갔다가 집에 가져온 태극기가 여럿이라는데 가서 하나 얻어 올까 하다가 같은 깃발이라도 태생의 의미가 다르니 그냥 쓰기로 했다. 그래도 이불 호청의 백기 옆에서 찬란하게 나부끼는 내 나라 깃발이 아름답다.



오늘이 어떤 날인가! 바로 일제치하에서 독립을 하자고 일본놈들의 총칼을 무릅쓰고 민족이 일어선 날인데… 바로 그날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심지어 일장기까지 들고 나온 무리는 어느 나라 광인들인가? 


3·1운동 당시에 기독교가 얼마나 큰 몫을 했는데(33인 중 천주교는 하나도 없었다!), 일본군에 희생당한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는데! 오늘 동원된 기독교도들은 구국기도회라면서 그 주최자들이 ‘가짜뉴스’를 기도문으로 삼고 증오에 찬 고성을 질러대더니 결국 ‘박근혜를 살리라!’는 현수막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태그끼 아재들은 세월호 상징물을 때려 부수는 만행으로 친일기득권 옹호와 인간성 말살을 드러내고 말았다.



증오와 욕설로 이루어진 기도에 ‘아멘!’, ‘할렐루야!’



3·1절에 일장기를 그려들고 나온 파렴치라니!



문대통령이 삼일절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반성을 촉구했는데 그 당당한 모습을 보니 역시 우리 촛불들이 대통령하나 잘 뽑았다! ‘정대협’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그동안 속을 많이 끓였는데, 대통령이 저렇게 가해자 일본 정부에게 ‘너희 입으로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범죄행위는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한,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는 않는다고, ‘일본은 인류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하라!’고 단호한 입장을 피력해 주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도 못 부르던 이명박그네 친일(親日) 아니 ‘종일(從日)’ 세력을 꾸짖듯, 일본에게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정확히 말해주고 “사실부정은 침략반성 거부행위”라고 쐐기를 박았다니 속이 다 시원하다.


광신도들 정체는 세월호 상징물을 때려 부수는데서 드러났다




개신교 쪽에 있는 친지들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가톨릭의 ‘미투운동’에 신부 엄마인 내가 얼마나 실의에 빠져있을까 걱정되더란다. 맞는 말이다. 지금 내 심경은 주님이 골고다언덕에서 처형당한 뒤 갈릴래아로 피신한 제자들과 흡사하다. ‘이제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갈란다.’ 라며 그물이라도 매만져야 이 답답한 심정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니까 자기들은 오히려 가톨릭이 부럽고 바람직하단다. 개신교 목회자들의 성윤리가 얼마나 문란한지 너무 잘 아는데 미투를 시작도 못하는 게 참으로 저질스럽단다. ‘과연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하나?’ 고민에 빠져있단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이불과 침대를 속속들이 뜯어내 빨래를 했다. 테라스에는 따스한 태양과, 끝이 좀 차긴 하지만, 싱그러운 봄바람이 호청을 백기처럼 흔들어대며 열심히 빨래를 말린다.


봄이 되어도 녹지 않는 동토의 땅 우리 마당! 하수구 입구가 얼어 어제 내린 빗물이 하수구를 못 찾고 차올라 구두를 적시기에 오늘 끓는 물로 하수구를 녹여서 뚫었다. 또 이층 세탁기 배수에 ‘에러’가 떠서 세탁기도 뜯어고치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세탁기를 돌렸더니 어지러울 만큼 졸리다. 이엘리나 현미씨는 요즘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데 잠이 쏟아져 눈을 뜰 수도 없는데 일기를 써야하는 나는 오히려 행복한 비명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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