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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일’이 구원의 첫째 조건은 아니다
  • 신성국
  • 등록 2018-01-31 16:56:04
  • 수정 2018-02-08 10: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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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미정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발걸음은 하느님의 사랑이며, 구원의 역사다. 하느님께서 펼치시는 인간 구원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 사건이다. 하느님은 오늘, 인간 세상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를 통해 생명의 나라, 평화의 나라, 정의의 나라를 실현하는 분이시다. 구원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이며, 선물이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우리 입으로 예수를 말한다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생명을 보호하는 모든 노력들이 바로 구원의 과정이다. 


남과 북이 만나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전쟁의 위험을 중단시키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은 구원의 업적을 이루신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2월에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은 우리 역사에 중대한 사건이며, 이를 계기로 남과 북의 평화, 북미간의 대화와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요한 1, 5) 


지난주에 이어 ‘빛과 어둠’을 주제로 풀어 가보자. 창세기의 창조 설화는 빛이 가장 먼저 생기고, 마지막에 인간 생명이 창조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요한 서문은 생명이 먼저 생긴다. 생명을 받고 빛이 생기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을 진리라고 한다. 구약의 창세기 신학과 요한 신학은 서로 다른 고유하고 독특한 관점에서 생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요한은 생명에서 빛이 왔다는 사실을 ‘진리’라고 한다. 진리는 생명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말이다. 생명 없이는 진리도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는 생명을 갈망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는가의 문제가 생명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진리 안에서, 진리의 생명을 사느냐가 핵심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삶은 결국은 ‘진리를 품은 생명’이다.


생명 연장이 우리 삶의 존재 목적은 아니다


진리를 향한 생명이 참생명이며, 이것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logos라고 선포하며 로고스는 생명을 주는 진리임을 말한다. 의학이 발달한 현시대를 ‘웰빙시대, 장수시대, 백세시대, 고령화시대’라고 한다. 생명 연장이 우리 삶의 존재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삶이 어둠 속에 살지 않고, 빛 속에서 사는 게 목적이다. 우리 삶이 권력과 자본에 의한 지배를 당하지 않고, 인간으로 누려야 할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 우리 삶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불안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존중을 받으며 사는 것이 참생명이다. 


요한복음의 서문은 예수가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깊은 숙고를 통해서 기록한 것이다. 생명의 존재 목적, 이유, 기원, 갈망에 대하여 진지하게 풀어주는 것이 바로 요한 서문 logos이다. 앞으로 우리는 요한이 생명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 살펴볼 것이다.


진리는 생명을 향해 존재하며 진리는 생명을 비추는 고유한 표현 수단이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생명에 대한 의지와 갈망을 부어주셨다. 마치 창세기 창조설화에서 인간에게 ‘혼과 영’을 불어넣어주시는 생명출현과 요한의 로고스는 공통점을 갖는다.  


요한은 이 ‘영’을 Holy Sprit(성령)라고 말한다. 요한이 베푼 ‘물의 세례’와 예수가 베푸는 ‘성령의 세례’는 생명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생명이고, 진리이다. 또한 생명과 진리를 주는 성령을 우리는 갈망한다. 


생명체험은 생명의 진리를 아는 것이다.


생명의 관점에서 예수를 보라고 우리를 초대하는 요한의 의도를 주목해야 한다. 종교인들은 먼저 착한 일을 해야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에 앞서서 생명을 받아야 한다. 착한일이 구원의 첫 번째 조건이 아니다. 


먼저 우리는 생명을 받아 누리는 자로 산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생명을 받은 자로 기쁘게 살아야 한다. 하느님과 함께 생명의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체험은 생명의 진리를 아는 것이다. 생명의 진리를 아는 것은 요한복음 전반에 걸쳐 선포되고 있다. ‘요한, 생명이야기’에서는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깊이 있는 해석을 시도할 것이다.


한국의 신앙인들이 축복, 기적, 성령 충만 등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두면서 의존했던 것은 복음에 대한 몰이해와 예수 정신의 결핍에서 온 원인이 있다. 신앙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향상시키는 교회 지도층의 노력이 부족했고, 무관심했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는 질적 양적으로 변화하며, 부단한 노력으로 발전을 도모하는 반면에 교회는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심지어는 세상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 형국은 신앙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빛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깨어있는 시민들이 빛이 되고, 세상의 어둠과 불의를 몰아내는 주체도 시민들이 되고 있다. 교회가 예수 정신을 잃는다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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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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