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요즘은 천사도 차를 운전하고 다닌다
  • 전순란
  • 등록 2018-01-29 16:03:32
  • 수정 2018-01-29 18:54:45

기사수정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맑음


날씨가 추워도 하늘이 맑으니 기분이 좋다. 집밖이 전부 대형 냉장고여서 냉동실이 따로 필요없다. 냄비건 김치통이건 자리를 찾아 마당 한쪽에 놓아두고 길냥이 입질만 피하게 야물게 닫아 내놓으면 그만. 신발장이 있는 현관 역시 1도 전후여서 김치냉장고 자격이 충분하다. 동치미는 살얼음이 얼어 정말 맛있고 단감도 단단하게 제 품위를 유지한다. 세상에 다 좋은 일도 없지만 춥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걸어서, 버스로, 전철로 강변역에 나가 버스를 타고 함양으로 내려가야 하는 오늘. 갑자기 천사 하나가 멀리서 자가용을 몰고 나타났다! 요즘은 천사도 차를 운전하고 다니나보다. 감기로 골골하는가 싶어 두 노친네를 자기 차로 함양까지 데려다 주러 왔단다! 주말이라 함께 내려가 이삼일 묵겠다는 말에 깜빡 속아 염치없이 차를 탔는데, 함양 다 가서는 오늘로 돌아가야 한다니! 내일 또 어느 노인수녀님을 모시고 성지순례를 가기로 해서… 차를 운전할 줄 아는 천사는 노인공경에 일정도 분주하다. 



중부고속도로로 나가는 길에 겨울 아침에 하늘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굴뚝 연기(아마도 아파트촌 공동난방에서)가 저 푸른 하늘과 시원하고 맑은 공기를 더럽힌다는 생각에 하얀 연기마저 눈에 거슬린다. 우리 시각이나 편견이 잘못 되면 자연이나 타인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뜨끔해진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정말 ‘못된 것’들이 ‘못된 말’로 저지르는 ‘못된 짓’이 많다. 어제 우리들의 ‘이여인터’ 총회에 앞서 ‘이주민방송’ 대표 정혜실 선생의 “혐오발언과 이주민 인권”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나야 오랜 외국생활에서 나 역시 외국인이었고 지금도 큰애 빵기네 가족이나 작은아들 빵고까지 내 땅이 아닌 곳에서 살기에 우리나라에 와서 사는 외국인들에 대해 한국사람들은 별반 저항감 없으려니 했다.


정혜실 선생은 자기가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했더니 가족과 제일 먼저, 그것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던 엄마와 부딪쳤단다. 파키스탄인은 이슬람을 믿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않는다면서 못마땅해 하던, 독실한 기독교도 엄마. 손주가 생기자 이슬람도 구약은 믿는다니까 몇 걸음만 더 나가면 신약까지 믿는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서더란다.




사위의 개종을 위해 철야기도, 산상기도, 통성기도, 금식기도 등등 하느님과 담판낼 만한 기도란 기도도 꽤 많이 하셨을 거란다. 그니의 남편은 여전히 알라에게 매달려 있어, 아마도 여호와와 알라가 협상을 했는지, 남편은 그저 그런 신앙을 유지하는 무슬림으로 남고, 그니 역시 주일이면 할 일이 유난히 많아져서 교회에 안 가도 하느님은 어디에라도 계심을 알고 교회에 나가면 되레 하느님이 영 안 계시다는 느낌이 오는 지경이더란다. 


모든 인간이 저 큰 우주에서 이 작은 지구별에 함께 사는 가족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하고, 종교가 ‘사해동포’를 가르치는 역할이 중요한데 오히려 이슬람 혐오를 가르치는 목사들을 종종 보면서 실망감이 커지더란다. 문제는 종교나 알라 신앙, 여호와 신앙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외국인 혐오사상(제노포비아)에서 오는 언어폭력과 제도적 차별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단다. 한국남자와 결혼한 여자는 그래도 어렵사리 한국국적을 얻었지만 그니 같은 한국여자와 결혼한 외국인 남자는 한국 국적 얻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단다, 호주법이 바뀌기까지는! 



외국인과 살면 ‘양색씨’, 일본순사들이 잡아간 처녀가 돌아오면 ‘정신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화냥년’(사내들이 힘이 없어 지켜주지 못한 불쌍한 여인들이 잡혀간 중국에서 죽지 않고 뻔뻔하게 살아 돌아왔다고) 이라고까지 불러온 한반도 남정들!


제천 화재와 목욕탕 아줌마들의 떼죽음이 엊그제 일인데 오늘은 밀양의 화재와 노인들의 떼죽음! 전 국민이 애가 타는 지경에 병원주인은 ‘우리병원은 스프링쿨러 달 의무 없다!’고 큰소리치거나, 현장에 와서 애도를 표하기보다는 “화재 인재 거듭 나는데 정부는 어딨냐? 생일 축하 광고판에 환한 미소로 쇼통에만 혈안이 돼 있는 문재인 정권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활권도 지키지 못한다”는 정치공세부터 터뜨리는 자유당의 혐오발언도 평범한 시골 아낙의 귀에 몹시 거슬린다. 밀양시장, 밀양국회의원, 밀양시 시의원 14명 중 12명이 자유한국당인 터에 말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