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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념’으로 사는가 ‘말씀’으로 사는가!
  • 신성국
  • 등록 2018-01-18 18:53:23
  • 수정 2018-02-13 15: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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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첫걸음이 힘차게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이젠, 70여 년간 분단 한반도를 억누른 적대적 대결이 종지부를 찍고 자주, 평화, 협력 관계로 부활하는 평화의 한반도가 되기를 학수고대한다. 


분단 민족 앞에서 과연 한국 종교는 시대가 요청하는 복음적 사명을 다했는지 통렬히 반성해야 하고, 남북 화해와 상생을 위한 순교적 자세로 매진하는 시대의 예언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이 2천 년 전 예수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종교 예식에만 머문다면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사이파의 위선이다. 복음은 2018년도 지금 이 땅에 깔린 절망과 전쟁의 어둠을 거두어내고, 암흑의 세계를 뚫고 부활한 예수의 생명을 사는 것이다. 복음은 결코 강론대의 화려한 언어가 아니다. 이 땅에서 선포해야할 복음은 가장 모순된 분단의 구조를 단죄하고, 뭇 생명들이 폭력과 전쟁의 공포심에서 벗어나도록 온전히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다. 


박해받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저항하는 신앙 공동체… 요한복음 잘 이해하려면 요한 공동체 ‘삶의 자리’를 이해해야


교회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선포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 회개의 선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36년간 친일행적에 대한 뼈아픈 속죄행위, 70년간의 분단 체제와 독재체제 앞에서 보여준 부끄러운 행적들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와 참회만이 민족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길이다. 금년에 이런 아름답고 용기 있는 행동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요한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요한 공동체가 살았던 ‘삶의 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한  복음서는 요한 공동체의 산물이기 때문에 공동체의 삶, 그들이 겪은 심각한 문제와 위기들, 그 위기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얻은 교훈들을 수집하고 편집한 책이다. 


요한복음서는 박해받는 공동체이며 동시에 저항하는 신앙 공동체였다. 처음 공동체의 출발은 팔레스티나 지역이었는데, A.D 66년경에 유대교는 예수 공동체에 공격과 탄압과 박해를 가했다. 신앙공동체는 팔레스티나 지역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는데 요한 공동체는 소아시아 지역의 에페소에 정착했다. 


에페소의 요한 공동체는 다시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아야 했다. 요한복음 서문에서 ‘생명의 문제’가 유독 강조되는 이유는 박해 상황에 처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선 공동체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다.  


요한 공동체 안에는 헬라 문화권, 로마 문화권, 유대문화권 사람들로 다양한 문화집단들이 섞여있었다. 그 중에서도 헬라 문화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이로 인해 다양한 종교 사조와 전통이 뒤섞여 있었는데, 영지주의와 그리스도 환영설이 가장 위협적인 사조였다. 두 사조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기로 하겠다. 


요한은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logos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로고스의 교회로 사는가? 아니면 이데올로기 교회로 사는가? 


요한 공동체는 외부적으로는 박해의 위험 속에서 공동체를 지켜야 했고, 안으로는 신앙의 혼돈을 가져오는 이교적인 이데올로기를 막아내야 했다. 특히 Ideology(이념, 체제)는 logos(말씀)와 상반된 개념으로 반생명적이며 반복음적인 우상이었다. 구약시대부터 예언자들이 야훼 신앙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그 우상신은 바로 Ideology였다. 정치, 종교 지배자들이 만든 우상숭배, 맘몬, 바알신은 모두 이데올로기였다. 유대교는 율법을 종교적인 억압과 착취의 이데올로기로서 변질시켰다. 율법은 하느님의 만민보편 사상을 거역하는 선민사상과 시온주의, 차별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표본이었다.


요한복음의 서문에서 선포된 logos(말씀)는 바로 이데올로기와의 전면전을 벌인 구약 예언자들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요한은 율법의 시대가 끝나고 logos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 것이다. 로고스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생명을 살리는 하느님, 생명의 하느님이다. 

요한복음은 오늘날 한국 교회를 향해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로고스의 교회로 사는가? 아니면 이데올로기 교회로 사는가? 


세월호 참사 앞에선 한국 교회에 요한은 진지하게 묻는다.


세월호 유족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함께 슬퍼하고, 얼마나 아파했는가? 진상규명을 위해 애타는 가족들의 행보에 어떻게 함께 했는가? 


살아있는 생명을 지키고, 억울한 생명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가 곧 하느님 앞에 선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거대한 성전을 짓고, 화려한 건물을 세우고, 많은 헌금으로 풍요롭고 성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생명 앞에선 교회, 생명을 대하는 교회를 통해 하느님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 로고스의 교회로서 생명의 문제를 온전히 자기의 문제로 끌어안고 사는 것이 복음을 사는 교회가 아닌가? 


사람들에게 삶의 자유와 해방, 풍요로운 생명의 은총을 주는 교회가 요한 공동체였다. 그러나 법과 규율에 매이게 하며 죄의식과 죄책감에 빠지게 하여 삶에 대한 불안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교회는 바알과 맘몬의 교회였다. 요한복음 서문은 로고스와 이데올로기 중 양자선택을 하도록 우리에게 내놓는다.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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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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