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지성용 신부의 책 『복음의 기쁨, 지금 여기』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고 <가톨릭프레스> 시대의 징표 코너에 매주 월요일 연재 합니다. - 편집자 주

▲ (사진출처=인스타그램 @franciscus)

예언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논쟁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소수 권력자를 만족시키는 지금 체제는 당연히 문제제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언자는 동시대에 인기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핍박을 자처한다. 예수의 슬픈 삶이 그러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도 죽어서까지 세 번이나 파문을 당했다. M. 에크하르트도 살아있는 내내 비난을 받았고, 신비영성가 힐데가르트 수녀도 700년이나 유폐됐다가 복권됐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나섰을 때 흑인 목사들조차 ‘괜한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비난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시대의 동료들로부터의 응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들이 위대한 선조와 순교자들, 예언자들이 되기를 희망하며 용기 내어 앞으로 나아갈 필요를 절감했다.

거짓 그리스도, 거짓 예언자, 구약의 예레미야와 하난야(예레미야 28장)의 서로 다른 식별은 예수 시대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예레미야는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바빌론과 화친을 맺든지 전쟁을 준비하든지 양 당 간의 결정을 내야 하는 상황을 주시했다. 남유다의 현실을 보았을 때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와의 평화를 위한 정치적 협정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난야가 볼 때는 마치 그것이 외세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의 생명과 민족의 존망이 걸려 있는 중요한 사안 일수록 객관적인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히드키야 임금은 듣기 싫은 소리에는 귀를 막아버린다. 그리고 달콤한 음성, 편안한 선택, 긍정적 사고, 평화. 이러한 인간적인 바람으로 인해 결국 예레미야 예언자의 진실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 36-45장)

거짓 예언자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거짓 예언자는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들 안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백성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지 않는 언론, 거짓을 꾸미고 가르치는 지식인은 거짓 예언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 내의 거짓예언자들은 누구인가? 세상이 ‘힐링 캠프’니 ‘힐링 무엇’이라는 말을 붙여 팔아먹기 시작하자 덩달아 교회출판계는 ‘힐링은 우리의 것’이라며 갖가지 힐링을 쏟아낸다. 모두가 성공하리라는 무지개빛 낙관론에 이제 사람들은 슬슬 싫증을 내고 있다. 십자가 없는 성공과 힐링이 난무하는 교회 학문과 대중강의 안에서는 올바른 지성과 영성의 풍토가 자리 잡을 수 없다. 그러니 교회의 지적풍토, 영적지반이 영 허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어디로나 가야한다. 복음의 빛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오늘날 교회는 자주 주저한다. 교회는 어느새 대형화, 중산층화, 여성화, 고령화, 제도화, 관료화 되어 버렸다. 교회 안의 양들도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멀찍이서 바라보며 공동체에 들어와 보려는 이들에게도 배려나 관용이 없다. 교회의 구성원들은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꼬박꼬박 교무금과 건축헌금을 내며, 일 년에 두 번 정도의 판공성사에 나가서 내적 성찰이 결여된 고백을 위한 죄를 만들어 고해하고 신자로서의 의무, 율법을 지켰노라 만족하며,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위 ‘발바닥 신자, 손바닥 신자’가 대부분이며 강론 중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무슨 큰 금기를 깬 것처럼 난색을 표하는 신자들도 있다.

사회 민주화를 외치던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이 교회에 입문하면서 80년대 이래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교회는 중산층화 되어가고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교회는 어떤 계층 어떤 계급을 향해서나 늘 열려 있는 공간 이지만, 실상 이런 교회의 중산층화는 아직도 교회의 다수를 형성하는 도시빈민이나 서민층 신자들과의 위화감을 조성한다. 대도시에 수백 억 원을 들여 건축한 교회나, 교회에서 힘을 쓰려면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은 교회의 중산층화 혹은 부유화를 직,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변질되거나 여가 공간, 친목공간으로 전락한다면 교회는 본질적이고도 고유한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다. 교회는 이 시점에서 진정 가난한 이들에 대해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또한 교회 구성원의 성비불균형과 고령화도 큰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본당 미사를 가만히 지켜보면 어느 본당이든지 -특별히 신도시 본당이 아니라면- 나이 많은 노인들과 여성들이 상당수임을 살펴볼 수 있다. 레지오, 마리애나, 연령회 등 교회의 주요한 단체들의 활동력은 실상 이런 신심 깊은 할머니들이나 중년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상당수의 남성 교우들은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면죄부(?)를 쓰고 교회 내 단체 활동을 꺼려하고 피하려고 한다. 동시에 이런 활동의 여성중심적 운영에 비해 교회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는 여성선출을 꺼려하여 여성들의 목소리가 교회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천주교 신자모임 소위 ‘대수천’이라는 교회 내 조직이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등장하는 시국미사마다 따라다니며 미사를 방해하고 있다. 1970년대와는 다르게 대한민국을 수호한다는 일부 천주교인들이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에게 “사제복을 벗고 정치를 하라”고 항의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은 시국미사가 열리는 곳마다 몰려다니며 난장을 부리고 있다. 그들에게 종북좌파로 낙인찍힌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들은 그 옛날 예수가 길에서 당한 수모를 똑같이 경험하고 있다. 

예레미야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한다.” (예레미야 1, 7) 오늘날 “가서 제자로 삼아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시시각각 변하는 계획(scenarios)과 복음화라는 교회의 사명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 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새로운 이 선교 ‘여정’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각 그리스도인과 모든 공동체는 주님께서 가리키는 길을 반드시 파악해야 하지만, 우리는 또한 우리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소외된 지역’에 도달하라는 그 분의 부르심에 복종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20항) 

그러나 그들은 “거역하거나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매질하는 자들에게 자기들의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이들에게 제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야 50,5-6) 한국교회의 사제들이 인간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유신 독재정권을 거슬러 사회적 구원 실현을 위해 투쟁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리스도교 순교정신에 기인한다. 이 정신이 민주주의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실현을 위해 과감하게 투신하는 의미 있는 사회개혁 자세로 구현되어 나타난 것이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선언이 있기까지 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나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한 여러 교회 단체의 민주 정의 사회 실현을 위한 적극적 활동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게 했다.

▲ (사진출처=『6월 항쟁 서른 즈음에』 중에서)

평신도들이 사제들의 보수화를 우려하고 걱정하며 사회참여를 촉구하던 이전 시기와는 다르게 요즈음에는 사제들이 평신도들의 사회참여를 촉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선을 위한 정치 참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분명히 말하며,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증언하라고 재촉하는 상황이다. 제도와 구조를 지키기 위해 성직자들이 머뭇거리던 상황에서 이제는 평신도들마저 자신들 삶의 자리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화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성당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십자가 불빛은 대낮처럼 밝혀져 있지만 신자들은 자꾸 교회를 떠나간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더 이상 교회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학교 공부도 그렇지만 교리엔 영 흥미가 없다. 주일학교 학생 수는 2014년 기준 초등부가 9만 7,946명으로 1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중등부는 3만 6,190명, 고등부는 2만 2,139명이다. 2012년과 비교해서 초등부는 3.8%(3,846명), 중등부는 3.6%(1,348명), 고등부는 3.4%(772명) 감소했다. 지난 10년 동안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학생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교회는 위기다. 위태롭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제 문제를 올바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랄 뿐이다. 사제에 대한 맹종과 헌신을 신앙으로 잘못 생각하는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공동체나 교회라면 변화는 아직도 먼 것이고, 그렇다면 끊임없는 계몽을 통하여 형식이나 제도 보다 신앙의 내용을 근본적으로 강화시켜 나가는 데에 문제 해결의 출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여기서부터 교회는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