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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노자와 교회 : 부활의 첫 음성 ‘평화’
  • 김유철
  • 등록 2018-01-02 11:16:18
  • 수정 2018-01-05 16:5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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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교회> 연재를 시작하며.

노자 경전을 매주 한 장씩 열어보려 합니다. 아울러 노자가 품은 세상의 관점을 한국천주교회 오늘의 그림자속에서 헤아려봄을 새로운 공부로 삼으려 합니다. 부족한 것이 많은 연재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매주 한걸음씩 걷겠습니다. 노자의 한글 주역본은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2003, 삼인)입니다. 김유철 두손모음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命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慾以觀其妙 常有慾以觀其徼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노자1장)


도를 말로 하면 말로 된 도가 도 그 자체는 아니다. 이름을 붙이면 이름이 곧 이름의 주인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에서 하늘 땅이 비롯되고, 이름 있는 곳에서 만물이 태어난다. 그러므로 언제나 보고자하는 마음 없이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보고자하는 마음으로 보면 껍데기 현상을 본다. 이 둘은 같은 것인데 겉으로 나타나며 이름을 달리한다. 그 같은 것을 일컬어 신비로움이라 하니 신비롭고 신비로운 도야말로 온갖 것들이 나오고 들어가는 문이다.



전례의 첫 날



평화주간을 보내고 있다. 세상 곳곳의 분쟁이 있는 곳에서마저 새해 벽두에는 모두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천주교회는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인 1월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사실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과 ‘세계 평화의 날’은 모두 20세기 들어와서야 세계 보편 축일이 되었고 새롭게 제정되었다. 그것은 그럴 필요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필요성은 늘 부족함을 채우는 원동력이다. 2번의 세계대전이 지나가고 미‧소 양 대국을 정점으로 한 냉전체제가 다시 한 번의 세계전쟁을 바라보던 1960년대 세상은 모두 평화를 갈망했다. 교회는 그러한 마음을 읽고 세상민들의 아픔과 염원 그리고 우려를 품는 마음으로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과 ‘세계 평화의 날’을 전례의 첫 날로 삼았다. 



평화는 정의의 실현이다



이미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만도 아니요, 적대세력 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인 것이다. 인간 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또 항상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사목헌장 78항 중)라고 말한 바 있다.



가짜 혹은 거짓말



그러하다. 이천 년 전 부활한 예수의 첫 음성 역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 라고 했다. 그 음성을 기억하는가? 그러니 교회의 첫 마디도, 교회를 구성하는 신자들의 첫 음성도 한결같이 ‘평화’라는 한마디로 응답되어야 한다. ‘첫’이란 것은 단순히 일의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의 완성체인 ‘한처음’(창세기1,1 / 요한1,1)과 같은 하느님의 움직임이다. 노자선생은 그것을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 부르고, 장일순선생은 다시 그것을 ‘온갖 것들이 나오고 들어가는 문’이라 말한다. 과연 한국천주교회와 신자들이 그러한가? 평화를 단지 ‘말’로 할 뿐이고, 평화라는 ‘이름’에 현혹된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가짜 혹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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