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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수 1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06-01 16:46:30
  • 수정 2016-03-23 17: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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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프레스 김근수편집인이 6월부터 루카복음 해설을 가톨릭프레스에 연재를 시작한다. 4복음서 해설의 연속인 이번 연재는 이미 출판된 슬픈 예수(마르코복음 해설), 행동하는 예수(마태오복음 해설)에 이어 4복음서 해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 된다. 필자는 성서신학의 연구 성과를 참조할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성서를 보는 해방신학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이틀에 한번 정도 실리게 될 이번 해설에서 루가복음에서 특히 강조된 가난한 예수가 잘 드러날 것이다.



가난한 예수 1



“1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2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3 존귀하신 테오필로스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루가복음 1,1-4)


1장 ‘많은polloi 이’는 조금 과장된 표현이다. 마르코복음 저자와 예수 어록집 Q를 가리킨다. Q는 우리 손에 전해지지 않았다. 마태오와 루가를 비교하여 Q의 존재와 내용을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그들의 작업을 이야기라고 루가복음 저자는 이름 붙였다.


‘이루어진 일’이라는 표현에 전해진 자료를 보는 루가 저자의 고유한 관점이 들어 있다.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이 마침내 완성되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루가 4,21; 9,51; 사도행전 2,1) ‘우리 가운데서’는 예수의 1세대 제자뿐 아니라 루가와 테오필로스를 포함한다. ‘손을 대었습니다’는 표현은 그 일이 성공했다는 것인지, 실패했다는 것인지 말하는 것은 아니다.


2장 목격자는 예수가 세례 받은 사실부터 예수를 지켜본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사도행전 1,21-) ‘말씀의 종’은 믿을 만한 목격자라는 뜻인 것 같다.(사도행전 1,22;6,4) ‘전해준 것’은 입으로 떠도는 전승과 글로 전해진 전승을 모두 포함한다.


그냥 전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옳게 정확하게 전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눈으로 본 목격자는 귀로 들은 증인보다 당시 역사가들에게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말씀logos은 루가에서 하느님의 말씀뿐 아니라 구원역사를 포함하는 단어다. 종은 위임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3절 일pragma의 뜻은 사건 ‘보도’에서 ‘사건’까지 다양하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3절에서 저자는 자신이 복음서를 쓴 방법을 소개한다. 생략하거나 빠트린 것 없이 ‘모든’ 일을 살펴보았다. ‘처음부터’, 즉 예수의 세례받음이나 또는 예수 생애의 시초부터 다루었다.


그리고 ‘자세히’, 즉 저자 자신이 역사가답게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작업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객관성을 내세우던 루가가 1,5 이하에 갑자기 민속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독자들은 놀랐을 것이다. ‘순서대로’라는 말이 시간 순서를 꼭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귀하께’라는 표현은 신약성서에 공무원에게 언제나 부르는 호칭으로만 나타난다.(사도행전 23,26; 24,3; 26,25) 루가복음이 증정되는 분이 품위를 드러내고 있다. 테오필로스는 흔한 이름이었다. 그는 이미 신도가 되었거나 지금 세례 받을 준비를 하는 예비 신자일 수 있다.


테오필로스가 배운 내용이 진실임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루가복음은 교리교육 교재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이 단락은 그 구조, 내용, 헌정으로 보아 책의 서문으로 볼 수 있다. 이 서문이 루가복음에만 해당되는지, 또는 사도행전까지 포함하여 쓴 서문인지 확실히 알기는 어렵다. 루가에게 기대된 작품은 학술 논문도 아니고 종교적 교리도 아니고 사건에 대한 소식이었다.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2세기에 이르기까지 아주 조심스럽게 책을 펴냈다. 구전 전승이 다양한 상황에서, 더구나 세상 끝날이 곧 오리라는 전망이 있던 시대에 책을 쓰는 일은 의미가 적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서문에 저자 이름이 빠진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관행이 교회에 일부 있었다는 주장이 있더라도, 여전히 수수께끼다. 대부분 저자들은 자기 이름을 밝혔기 때문이다.



만일 루가가 이전 작업자들의 작품(마르코복음, Q)에 만족했다면, 그가 새 작품을 쓰려 애쓰진 않았을 것이다. 루가가 보기에 이전 작품에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없고, 부활 이야기가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다. 역사의 예수를 ‘전부’(pasin, 3절)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pasin은 그리스어 중성명사로는 사건을, 남성명사로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다. 중성명사로 쓰여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세히’(akribos, 3절) 다루지도 않았다는 루가의 불만이 담겨 있다. 이전 작품들과 자신의 방법이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불트만Bultmann은 루가가 신앙의 진리를 역사서술로 대체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루가에게 정직한 연구는 신앙의 진리를 더 확증한다는 소신이 있었던 것 같다. 루가는 역사가일뿐더러 신앙인이요 증인이다. 예수의 역사는 사도들의 역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신념이 루가에게 있었다. 그 신념을 우리 시대 독자들도 마땅히 배울 수 있다.


루가복음에는 예수의 행동이 예수의 말씀보다 대부분 먼저 소개되고 있다. 말씀은 무성하고 행동은 주저하는 오늘 그리스도교가 루가복음에서 꼭 주목할 순서다. 성서에서도 그리스도교에서도, 행동이 말씀보다 먼저다. 예수의 말씀은 즐겨 인용하지만 예수의 행동은 모른 체하는 오늘 그리스도교는 대체 무엇인가.


역사의 사건에서 구원의 역사를 눈치 채는 루가의 눈이 나는 부럽기만 하다. 우리 시대 사건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채는 눈이 우리에게도, 교회에게도 주어지기를 기도하고 싶다.


책속에 이름을 적어 독자 개인에게 바치는 사례는 그리스 역사서에서 거의 없었다. 그러니 테오필로스는 아주 큰 영예를 얻었다. 예수의 역사를 누가 책으로 써서 내 이름을 그 책에 기록하고 내게 증정한다고 상상해보자. 갑자기 숙연해진다. 테오필로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테오필로스처럼 예수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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