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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 전순란
  • 등록 2015-05-30 11: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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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8일 수요일, 맑음



참 기나긴 하루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정리를 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또는 우리가 밖에서 돌아왔을 적에 깔끔하게 정리된 집이 날 기다려주기를 바라기에, 며칠간이라도 집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말끔하게 집을 치우고 정돈하고 마무리하고서 떠난다. 또 우리가 없을 적에 우리 집을 쓰려는 사람이 언제 오더라도 불편하지 않게 쓰라는 준비이기도 하다.


어떤 자리에서 처음 뵙는 수녀님들이 잘 아는 사이처럼 인사를 해 와서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보스코가 누구에게나 건네는 ‘건망증 인사’. 심지어 대여섯 번을 만나고서도 하는 인사, 특히 여자들에게는 거의 늘 하는 인사)라고 물으면 “지리산댁 거실에 걸려 있는 사진에서 뵈었어요.”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10년 가까운 외국생활 중에 늘 휴천재를 개방해서다. 그런데 2007년 귀국하여 휴천재에 눌러 살면서부터는 그런 여유가 없어져 참 서운하다.



9시경 지리산을 떠나 2시쯤 서울에 도착했다. 우선 노원자동차면허시험장에 들렀다. 80년 1월에 내가 면허시험을 본 곳이니 35년의 인연이다. 필기는 쉬웠고 코스와 주행도 한 번에 붙었었다. 그해 2월부터 이탈리아에서 당장 운전을 시작해서 35년간 남편 보스코의 충실한 기사로서 살아오는 전순란! 


첨엔 “곧장 앞으로(sempre diritto!)” 운전이어서 후진이나 주차는 지나가는 남자를 아무나 붙잡고 염치없이 부탁했었고, 맥없이 착한 이탈리아 남자들은 말없이 차를 세워주곤 했는데 그래선지 지금도 나는 후진이 서툴다.


오늘 면허시험장에 들른 것은 올 여름 쓸, 국제면허증을 받기 위함이었는데 신청서와 면허증 그리고 8500원의 수수료를 냈더니 여권을 달랜다. “어머나, 어떡하죠? 전 지리산에서 왔는데 여권을 안 갖고 와서?”라고 하소연하니 창구 여자가 염려 말란다. 공공서비스 부문은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다고 자부하는데, 과연 10분 만에 국제면허증이 턱하니 나왔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후진적이고 불편하고 썩어빠진 분야가 이명박과 박근혜 집권 이후의 정치라는 세평을 실감한다. ‘지리산종교연대’가 산청군 원지 소공원에서 ‘세월호 1000일기도’의 일환으로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보스코와 내가 필히 참석할 자리였지만 큰아들을 마중하러 올라온 길이어서 동석하지 못해 미안했다. 지리산 주변을 돌면서 성심원, 진주 옥봉성당, 하동 문화관, 구례 원불교당, 남원 문화원, 인월 실상사, 함양 옥동교회로 순회하면서 매달 기도회를 열고 있다. 


실상사 ‘대나무기도전’에서는 기도하는 분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앉아 있다. 민중의 저런 외침에 귀를 콱 틀어막은 박근혜 정권의 후한무치가 국제사회를 통탄케 한다. 그 유가족을 천대하고 우롱하는 정권과 언론의 작태에 국제여론이 “차암, 이건 사람도 아니다!”라고 탄식한다니....


산청 원지 공원에서 열린 "세월호 지리산천일기도회"




또 팽목항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5.18에 시작한 10일간의 단식기도회를 끝냈는데 그분들 역시 침몰해가는 대한민국호를 건져내려고 몸부림치는 분들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를 국민이 존경한다면 저분들의 ‘행동하는 신앙’ 덕분이리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대로 “제 손아귀에 쥔 것 지켜 주십사 비는 ‘속물근성의 신앙’에 젖은 신도들”을 일깨우려는 절망적 몸부림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든 적게 모이든,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기회가 닿으면 달려가서 ‘사회복음의 근본’을 강연하는 보스코의 노력도 저분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비롯한 활동이리라.


팽목항에서 열흘간 단식하며 기도하며...


오늘 미사로 단식기도회를 마친 신부님들...



열흘을 굶고도 이분들에게 이처럼 밝은 웃음이 나오는 뿌리가 어디 있을까?


집에 도착하여 짐을 내리는 그 길로 ① 창동 이마트로 가서 빵기편에 며느리에게 보낼 물건들을 사고, ② 종로3가에 가서 오티나 의사에게 줄 수지침을 사고, ③ 동대문 시장에 가서 카르멜라가 부탁한 선물들을 사들고서 끙끙대며 걸어가는데 창동전철역에서 이문자 선생을 만났다.


우리 집 옆에 ‘매맞는 여성들의 쉼터’를 운영할 적에 실무를 도맡아 그니들과 함께 살던 분인데 여러 해 동안 그 집을 거쳐 간 여인들을 내가 잊고 있었다니... 선자, 선희, 옥자, 효진,... 한참이나 그니들의 근황을 물으며 저녁을 이선생과 함께 먹었다. 


그 당시 엄마를 따라나온 아이들이 군대를 다녀오거나 대학에 다니지만 그 엄마들은 여전히 남편의 폭력의 피해자 그대로라는 소식에, 여인들의 불행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다. 


그리스도신자인 내가 '주님'이라고 불러온 분 앞에 서는 날, 그분 앞에서 남편의 횡포에 희생된 저 가엾은 여인들, 국가의 방치 속에 자식을 잃고 억장이 무너진 세월호 부모들, 지진을 당한 네팔의 빈민들을 만나 "우리가 전에 만나 적이 있나요?"라는 쑥스러운 인사를 건넨다면 그것은 자칫 나의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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