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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배) 다볼 산과 에베레스트, 그리고 대모산
  • 김웅배
  • 등록 2017-08-03 12: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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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어린 시절 나는 정릉에 살았다.


중·고등학교 때, 동네 친구들과 북한산 백운대를 수시로 올랐다. 정릉에서 올라가는 코스는 비교적 쉬운 편이라 조그만 솥과 찌개 끓일 냄비를 들고 점심을 해먹고 내려오기도 하고 늦게 올라갔다가 야밤에 내려오면서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었다. 별로 달리 즐길 일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백운대 올라가는 것이 일상적 기분풀이였다.  


한정수는 같은 동네에 살아서 집안 사정까지 대충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함께 어울려 지내진 않았지만 동네가 빤하니 서로 그저 덤덤히 알고 지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7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만나 2년간 군대생활을 같이 했다. 성격도 호방하고 다른 사람들과 친화력도 좋고 어릴 때 좀 알았던 친구라 반갑기도 해서 꽤 친하게 지냈다. 제대를 하고 각기 바쁘게 살다가 80년대 초중반 어느 날, 내가 다니던 회사로 이 친구가 찾아왔다. 기억하기로는 음향기기 수입업체의 영업일을 한다고 왔던 것 같다. 반갑고 오랜 만이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냥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에베레스트를 갔었다고 했다. 


‘아니, 뜬금없이 무슨 에베레스트! 인간이 지상에서 오로지 갈 수 있는 우주적 장소라는 데를!’ 


나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친구는 단신인데다 가슴이 두툼하고 행동도 약간 느린 편이라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아직 데뷔하기 전인 유명 축구스타 마라도나를 많이 닮기도 했는데 그 체구로 그동안 산을 탔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바로 1977년 에베레스트를 한국 최초로 오른 18인의 원정대 일원이었던 것이다.


▲ (사진출처=Pixabay)


당시에 온 신문과 방송에서 어마어마하게 보도됐던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의 드라마는 그야말로 고상돈 이라는 슈퍼스타의 탄생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특히 박상열이 정상 100M를 앞둔 상황에서 등정에 실패한 다음, 고상돈과 셸퍼 2인1조가 2차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대한민국은 완전 뒤집어졌다. 그때 그 환희는 엄혹하던 시절 나같이 시니컬한 사람조차 가슴 설레게 했다. 그것은 1969년, 미국에 의해 달에 인간이 첫발을 내딛은 사건과 버금갈 정도였다.


그러나 한편,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일등주의를 선호하는 우리의 현실은 고상돈이란 이름에 열광했을 뿐 그 외 대원들은 대중들에게 관심 밖이었다. 당시에 다른 대원들의 이름도 지상에 나오긴 했지만 한정수란 이름을 보았다 해도 동명이인이겠지 정도로 넘어갔을 것이다. 세상 일이 모두 그렇듯이 정상에 서는 사람은 극소수다.


모든 일에는 계획이 있게 마련이다. 어마어마한 인력으로 엄청난 돈을 들여 뭔가 이루어야 하는 일에는 순서가 있게 마련이다. 나중에 책에서 본 얘기지만 1차공격조가 실패하면 2차 공격은 누가 한다는 것을 미리 정했다고 한다. 처음 계획에는 2차 공격조로 고상돈과 한정수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계획이다. 2차 공격 시, 산소 재고량도 모자랐고 악천후에 셸파가 보조를 해야만 한다는 판단에서 고상돈이 혼자 공격자로 선정 된 것이다. 한정수는 장비 담당을 하면서 고생도 많았고 대원들 간에도 알아주는 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실 전국에 산악인을 대상으로 대원을 선발했다는데 그들 사이의 실력 차이란 미미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엄선한 제자 셋만을 데리고 다볼 산에 오르신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엄청나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담소하는 놀랍고 두려운 체험을 한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로 신성과 우주적 신비를 나타냄으로서 제자들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존재로 천상의 체험을 한 것이다. 일종의 신비체험이리라! 


그런데 12제자 중 왜 셋만 뽑으셨을까? 모두 데리고 가서 체험케 했다면 더욱 확실한 많은 증거자들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에베레스트처럼 험한 곳도 아닌데 말이다. 


주님이 올라가신 산이 어딘지는 아직 명확히 판명되지는 않았으나 다볼 산일 것이라는게 이제껏 정설로 내려온다. 600m 정도 높이로 백운대보다는 낮지만 평야지대에 종처럼 돌출된 모습이 평지에서 보면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난다고 한다. 600고지라면 험한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북한산 백운대와 비교하자면 두 세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모르긴해도 당시 척박한 유다 땅에 살던 제자들의 체력이라면 물론 모두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오르지 못하고 바닥에 남겨진 제자들의 볼멘 수근거림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자신이 고상돈과 경쟁을 해야 했다는 상황을 아주 덤덤하게 얘기하는 그의 눈가에 달관한 듯한 미소를 얼핏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슈퍼스타 고상돈은 맥킨리에서 산화한 뒤여서 나의 초점은 이친구가 그 원정대 일원으로 에베레스트를 갔었다는 사실에만 꽂혀 있었다. 에베레스트라는 그 엄청난 곳을 다녀왔다니! 나누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았다. 


지금도 산을 타냐고 물었더니 산행은 하지만 산악회에도 안 나가고 전문적인 등반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는 곳을 물으니 개포동이라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 대모 산이 가까워 아침마다 산행을 한다면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어마어마한 산을 갔다 왔던 그 친구의 실력도 확인(?)할 겸 산에 오르자는 약속을 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면서 헤어졌다. 


다볼산에 오르기 전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누가 첫째인지 철없이 서로 싸우기까지 한 상태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셋만 데리고 가신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께서는 세 제자들과 다시 산을 내려오면서 제자들에게 산 위에서 본 것에 대해 함구하라고 명하신다. 여기에 답이 있다. 메시아 비밀사상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 의미로 냉정하게 본다면 예수께서는 다른 제자들의 신앙 체력을 못미더워 하신 것은 아닐까?


12제자를 모두 데려갔다면 예수님께서 변모하시어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놀았다는 소문이 아마 천리만리를 갔으리라. 그렇지 않아도 당시 기득권층인 사제나 율법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존재가 불편해 죽을 지경인데 모세와 엘리야를 양 옆에 두고 대화를 나눴다는 얘기가 항간에 퍼졌다면 그들은 아마도 불경죄로 일찌감치 고소를 했을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계획도 약간 수정을 해야 했을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께서 허락하셔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만 공적 신비체험을 하는 영광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그 세 제자가 나중에 그 일을 발설 했다는 얘기는 성경 어느 곳에도 없다.



고산 등반가들의 말에 의하면 8000M 이상의 고봉은 산이 허락해야만 정상에 발을 올려놓을 수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계절의 변화와 그날의 일기 등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무수한 산악인들이 이 고봉에 오르려고 엄청난 시간을 들여 훈련을 하고 정신 무장을 한다. 훈련 도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도 다반사다. 수백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장비와 음식을 나르며 고산병을 극복하고 산 바로 밑에 왔다고 해서 원정대원 전체가 정상을 밟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뽑힌 몇 사람만 오르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모르는, 아니 알지만 애써 피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정상 등정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해 대원들 간의 암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개인의 일탈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단체행동과 배려가 덕목인 이 산사람들에게 진한 우정도 존재하지만 인간 세상일진데 어찌 갈등이 없으랴? 


약속대로 나는 한동안 아침마다 한정수와 함께 내 어린 두 아들과 대모산을 올랐다. 매일 저녁 회사에서 술추렴을 하고 아침마다 오르기에는 300고지도 안 되는 대모 산도 나에겐 죽음이었다. 특히 마지막 꼭대기에 오르기 전, 3,40m의 깔딱고개란! 북한산 백운대를 어렵지 않게 오르락내리락 하던 때가 언제였더라?


▲ 북한산 백운대 ⓒ 전순란


젊었을 때보다 살이 찌고 배도 나온 이 친구는 정말 평지를 걷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산을 오르고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쓱 한번 닦는 게 전부였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아들에게 에베레스트를 다녀온 아저씨라고 얘기해 주니 존경스런 눈으로 쳐다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한정수는 말없이 그 호탕한 웃음으로 애들을 대했다. 


결국 나는 한정수에게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지 못하게 된 정확한 이유를 직접 듣지 못했고 에베레스트 원정에 대해서도 여러 번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항상 그 너털웃음으로 대신했다. 에베레스트의 위용을 나에게 설명하기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고 또 가십성으로만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마뜩지 않아 말을 삼가 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예수님께 뽑힌 세 제자가 예수님의 함구령으로 천상을 맛보고도 아무 말도 못한 안타까움이 오버랩 된다. 게다가 오르지 못한 나머지 제자들의 심경이야 오죽했으랴?


90년대 초, 미국으로 오면서 한정수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십여 년 전 그의 부음을 들었다. 암이라고 했다. 나는 그와 대모 산을 같이 올랐던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한편으론 자신의 입으로 발설 한 적이 없지만 순전히 나의 느낌으로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코앞에 두고 오르지 못했던 한정수의 눈물이 보이는 듯도 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제외하고 다볼 산에 오르지 못한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처럼 한정수도 결코 산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300 고지에 불과한 대모 산일지언정.


8월, 주님의 거룩한 변모 대축일을 맞아 에베레스트와 대모 산 그리고 한정수를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원정대 18인의 한 사람으로 당당히 역사에 기록돼 있다.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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