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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믿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믿는다”
  • 전순란
  • 등록 2015-05-28 12: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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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7일 수요일, 맑음



날로 짙어 가는 초록 이파리들 따라

나의 생도 조금씩 깊어지게 하소서

 

쓸쓸히 지는 장미꽃 덤불 아래

내 목숨의 끝 생각하게 하소서  


-정연복 “6월의 기도”에서



지글거리는 태양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뜨거운 바람을 들여보낸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뒤꼍에서 조금씩 흘러드는 바람의 살랑거림 한 자락이 전부인 오전,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내 소녀시절 히스크리프의 애절한 사랑을 읽으면서 저토록 간절하게 매달리는 사랑을 한번쯤은 받고 싶다는 꿈으로 아련했던 기억이 환갑이 넘은 이 나이에도 가슴 뛰게 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사랑을 해 보았다고, 지금도 그 사랑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때문일까?




낮 더위를 피해서 보스코는 이른 아침에 배나무 소독을 했다. 세 번째다. 벌써 잎마름병이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고 올핸 배가 유난히 적게 열렸단다. 6월초에 한 번 더 소독을 하고서 봉지를 싸야 할 게다.


텃밭은 코스모스, 금송아, 해바라기, 민들레로 꽃밭이 되어버렸다. 텃밭에는 꽃마저도 잡초일 따름인데 안주인이 텃밭 절반에 올해 농사를 포기하자 저것들이 제 세상 만난듯 뽐을 내는 중이다. 한쪽에서 루콜라, 파슬리, 곰보배추가 꽃을 옴팡지게 피워 올리고 있다. 상추, 치커리, 쑥갓, 파, 양파를 한 아름 따고 캐서 가슴에 안고 올라오는 길이 그렇게 당당할 수 없다.


아침에 서울 상계동 체칠리아씨가 산청의 미루씨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떴다. 최근 필이 꽃혀 내가 즐겨쓰는 흰 차양의 모자가 그니의 선물이어서 '모자체칠리아'라고 불러 내 주변의 여러 체칠리아들과 구분한다. 부지런히 점심을 끝내고 볼품은 없지만 시골에서 만남직한 것들을 챙겨 그니를 보러 갔다. 산청 미루씨 매장에서 차를 들며 세 여자가 한참이나 환담하다 보스코랑 마산교구청으로 갔다.


마산교구 정평위가 한 달에 한 번 갖는 강연회에 보스코가 초대받은 자리다. 교구청에 간 김에 우리 함양본당에 계시면서 함양본당 100주년 성당을 지은 황인균 신부님을 만났다. 그분이 계실 적에 본당교우들은 행복했고 우리 문정공소 신자들도 행복했다. 한 사제가 오면 모두를 행복으로 구원하기도 하고 자칫 모두를 절망으로 분열시키기도 한다.



황신부님이 교구청에 들어가 주보 “가톨릭마산”을 맡으면서 보스코가 단문을 연재한지 벌써 3년이다. 주일마다 요즈음 이 주보의 오프닝멘트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시는 총대리 배신부님도 만났다. “제가 신부님 글의 광팬(狂fan)입니다.”라는 내 인사에 “우리 아버지가 워낙 수상한 사람이어서 그 아버지를 닮아서요.”라며 농담으로 껄껄 웃으신다. 


1973년 우리 결혼식에 합창을 부르러 오기로 했었는데 “그때 전 근신경고를 받은 참이어서 못 갔습니다. 내가 테너파트였는데 내가 빠져 아마 노래가 엉망이 되었을 거에요.” 라며 43년의 일에도 유머를 보태신다.


정평위 박철현 신부님이 동창이신 황신부님, 농민회 지도 박창규 신부님(보스코와 번갈아 ‘가톨릭칼럼’이라는 글로 교회의 사회교리를 펴고 계시다), 정평위 부회장님,국장님을 함께 초대하여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하셨다. 시국관이 같아 마음이 통하는 이들의 식탁은 언제나 행복하다.




보스코는 “교회와 사회교리”라는 주제로 가톨릭교회가 사회교리를 가르치게 된 역사적 현실적 배경을 교황 프란치스코의 핵심사상에 비추어 이야기하였다. 강연 후 뒤풀이를 김유철 시인에게 초대받아 아홉 사람이 차를 마시면서 암울한 정치상황과 한국 주류 언론의 해악을 성토하였다. 


자기생애에 교황을 위해 간곡한 기도를 드릴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노라는 김유철 시인의 말에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믿는다.”라는 정기석씨의 칼럼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도 밤마다 교황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바치는데 이 또한 생전 처음이다.


(정기석 기자 칼럼을 읽고 싶다면...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9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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