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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 염은경
  • 등록 2017-05-07 13:50:39
  • 수정 2017-05-08 14: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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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남북문제를 악용…이제 더는 안 된다.


(신성국 신부) 앞서 분단문제를 이야기 했는데, 그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엄청난 고통과 비극을 만듭니다. 제가 KAL858기사건 진상규명 활동을 하다가 캐나다로 교포사목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곳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제가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적극 참여하고, 사회운동에 적극적 이었다’ 하면서 ‘빨갱이 신부가 오면 안 된다’고 극렬하게 거부했던 일이 있습니다. 신부 발령문제 까지도 ‘빨갱이’가 들어갑니다. 우리 사회는 곳곳에 분단의 비극과 아픔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윤원일 부원장) 그것은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북문제를 악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사람이면 단호하고 강력하게 평화의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남북한은 한 형제입니다. 서로 같은 언어를 사용합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어머니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분단의 고통은 매우 큽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는 분단이 종식되기를 기도합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


사실, 이것은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하시면서 “한 형제자매이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시면서 북한을 도와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주교님들이 모두 앉아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하셨어요. 교황이기 이전에 외국사람입니다. 외국사람도 그렇게 말을 하는데 우리 주교님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셨을까요? 창피한 일입니다. 


(김상수 작가)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1차 대전 후 프랑스와 독일이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뒀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프랑스 사람이나 독일 사람이나 똑같이 지배자들이니까 같이 술도 마시고 즐기면서 지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사실 다 형제들이니까 잘 어울려서 지냈지요.


그 당시는 SNS도 없고 신문이 유일한 소식통인데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몇 개월 걸려서 옵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 1차 대전 중인데 독일과 프랑스가 전쟁을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자 아프리카에서도 ‘우리도 춤 그만추고 전쟁 해야겠다’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식민지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서로 총을 못 쏘는 겁니다. 서로가 누구인지 다 아는데 총을 어떻게 쏘겠습니까. 그런데 뒤에서 ‘왜 돌격하지 않느냐’면서 방아쇠를 당깁니다. 형제가 총에 맞아 쓰러지니 그때부터 눈이 뒤집히면서 처참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몇 달 후에 신문이 다시 왔는데, 보니 전쟁이 이미 끝났다는 겁니다. 너무나 처참히 싸웠는데 이미 몇 달 전에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은 기가 막히는 일이죠. 싸움의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싸움을 시킨, ‘대리전쟁’입니다. 6·25전쟁이 그렇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동포들과의 싸움을 시킨 건데 대리전쟁의 시기를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단계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동독사람들이 서독TV를 봤습니다. 북한에서 한국드라마도 보고 하면서 서로 동지성을 점차 강화하고 교류해야 합니다.


교류에서 가톨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책임 있는 지도자 주교나 추기경 같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섰을 때 신자들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선 가톨릭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 ⓒ 최진


(윤원일 부원장)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1945년 8월에 해방되고 난 후 분단이 됐는데 소련이 들어오고 미군이 들어왔습니다. 남쪽에선 미군정을 하고 북쪽은 소련이 왔다가 인민회 만들고 나눠서 분단이 됐어요. 사실 그 시기에 바른 정치인들이 ‘분단되면 안 된다, 남북의 통일을 우선해야 한다’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여운형 선생께서는 김일성도 만나고 여러 시도들을 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암살을 당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이 그때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야당 정치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자신 있게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언론에서도 무분별하게 색깔논쟁을 내보낼 것이 아니라 전쟁을 조장하는 정치인들을 질타하고 남북의 화해를 위해 바른 소리 하는 정치인들을 조명해줘야 합니다.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김상수 감독) 사실 이런 이야기는 매우 상식적인 것인데 이렇게 상식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과격한 사람들이 됐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북’패러다임을 씌웁니다. 그런데 지난번 촛불 정국은 박근혜를 끌어내리기 위한 과정이었고 가톨릭언어로 한다면 그야말로 ‘공동의 선’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마음 안에 가지고 있는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이번 선거가 매우 중요합니다. 햇볕정책에 대해서 자신 없게 얘기하는 후보 뽑아서는 안 되고,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분단을 부추기는 후보를 경계하고 투표 한다면 점차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촛불을 든다는 것은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촛불 들고 광장으로 나간 힘이라면 투표도 해야 합니다.


(윤원일 부원장) 저도 어는 종교를 가졌든 신앙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최근 개신교에서 나온 종교개혁 책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습니다.


저는 루터가 95개조 반박문내고, 7성사 반대하고,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부해보니 루터가 개혁하자고 한 것은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제도와 교리였습니다. ‘좀 더 근원으로 돌아가자, 초기교회 공동체 교부들이 있었던 아름다웠던 시대로 가자’는 거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양심회복,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것이었고 그것을 극단적으로 주장한 세력들까지 등장하면서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지는 거였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과거 교회사 공부를 다시 해보니 가톨릭은 신자들부터 ‘진짜 종교개혁 운동’을 다시 해야 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사회참여를 할 것인가 고민하고 교회개혁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입니다.


가톨릭역사 200년은 한국 역사 안에서도 200년입니다.


(신성국 신부) 조진선 수녀님, 성가소비녀회는 비교적 사회 현장, 광화문이나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진선 수녀) 저희 수녀원(성가소비녀회)은 1943년 12월 25일에 창설 됐습니다. 설립자 성재덕 신부님은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1935년 사제 서품을 받고, 같은 해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어 1939년 서울 혜화동 성당 주임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으며, 한국 역시 일제강점 하에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 성가소비녀회 설립자 성재덕 신부

전쟁의 후유증으로 상해군인, 고아, 장애인들이 생길 것을 직감하신 신부님께서 그런 시대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전문화된 수녀회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프랑의 한 수도회를 모델삼아 준비하셨는데, 프랑스 혁명당시에도 살아남았던 그 수녀회는 ‘가난한 이의 하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였습니다. 항상 노동자의 가정이나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 함께 생활하는 수녀회로 지금도 NGO활동가처럼 활동하면서 가난한 이의 하녀로 생활하십니다.


또, 수녀원을 12월 25일 설립하시면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마구간에 태어나신 강생이 우리의 카리스마이고 우리의 이름은 ‘성가정의 하녀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신부님께서 쓰셨던 언어나 가르침을 보면 매우 놀랍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정의로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 등 지금으로 말하면 ‘시스템’인데 ‘시스템이 어떻기에 가난한 일들이 발생하는 가를 보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많이 하셨습니다.


‘하느님이 너희를 통해서 강생하시도록 해라’ ‘내리시오, 내리시오, 가난한 이들에게 내리시고 가난한 자, 미소한 자를 사랑하시오’라고 하셨고, 그리고 ‘만약 동네에서 수녀님들이 제일 잘 산다는 소리를 들으면 끝의 시작’이라는 표현도 하셨습니다.


부천 성모병원이나 숙명여중·고를 교구 학교법인으로 넘긴 이유는 창설자 신부님께서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사업을 하는 게 좋고 그 사업이 커지고 잘 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라는 표현을 많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부천 성모병원이 처음 성가병원이었잖아요. 그 병원이 커지는 것을 보고 슬퍼하셨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성국 신부) 사람, 그 가운데도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으라 하고, 사업으로 커진 학교나 병원을 다른 곳에 넘기는 것은 매우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김상수 작가) 제가 1984년에 한국가톨릭200주년 기념행사 연출을 했었는데 그때 제목을 ‘사람’으로 정했습니다. 십자가를 놓고 ‘아멘, 아멘’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십자가를 내려치고 역사 안에서, 사람 안에서 풀어 본 것이죠. 가톨릭역사 200년은 한국 역사 안에서도 200년입니다. 배운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가리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에 믿음을 심어주었느냐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았던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였을 때 광화문에서 행사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라틴어로 미사를 하는 겁니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는데 왜 라틴어를 쓰나요, 그것은 전례를 따르는 게 아니라 죽은 형식에 갇혀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에 그런 내용을 쓰기도 했습니다.


가톨릭 안에서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과거 한국에서 순교자들은 왜 죽어갔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양반들과 식사도 따로 하고 짐승처럼 취급받던 사람을 어느 날 형제로 부르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사람대접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충격이었던 것이죠.


그 과정에서 (우상숭배 문제로) 제사지내는 것을 거부하면서 오해가 있지 않았습니까? 전례, 미사를 우리 현실에 맞게 만들어 가는 문제에도 교회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이 시대 광화문 광장에 사람 백만 명 모아놓고 라틴어로 미사 지내는 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지도자라는 분들부터 각성하고 분별해서 사람을 옭아매는 수단을 없애야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하는 것은 평신도, 우리들


▲ 천주교수원교구 세월호 3주기 추모미사에 5천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했다. ⓒ 최진


(윤원일 부원장) 1970년대 ‘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들어졌습니다. 엄혹했던 그 시대에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교회의 소명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의 역사이기도 하고 공동체의 역사이기도 한데 교회는 이런 역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국 7대 종단 가운데 가톨릭은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존중 받는 종교입니다. 사제, 수도자들이 독신으로 산다는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엄혹했던 시절에 국민들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매 맞고, 감옥에 가고 했던 사제단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교님들이 사제단을 배척하고 신부님들이 사제단 활동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상처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서 나라가 못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앞서 수녀님께서 병원과 학교를 교구에 넘겼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더 나아가 이제 나라가 잘 살게 됐으니 병원과 학교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교회가 할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과 역사가 존중하고 있으니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지금처럼 주교님들이 인사권을 쥐고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 그것은 교도권 문제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제도 주교들과 같은 사제입니다. 우리들도 평신도 사제입니다. 공의회 문헌이 선언을 했으니 잘못된 일에는 주교님과 논쟁도 벌이고 설득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이래로 정치권력이든 종교권력이든 인민이 죽기로 싸우면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조진선 수녀) 저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하는 것은 평신도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라는 표현 자체도 구분 짓는 것 같아서 불편한데 사실 수도자도 평신도이니까요. 앞서,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마치 교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세 이후에 ‘원죄’를 강조하고 법을 만들었죠. ‘주일을 지켜라’ ‘뭐는 하지 마라’ 하면서 그걸 지키지 않으면 죄인이 되니 고해성사를 봐야 하고, 또 돈을 내야하는데 기쁘고 찬양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바치는 경우가 많죠.


교회는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데 사제들은 못 싸웁니다. 깊게 종속돼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여성 수도자들은 조금 빗겨져 있고, 이번에 촛불을 들고 나왔던 시민들처럼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가 이런 세상인가 하면서 나와 싸워야 합니다.


인민이 행복한 나라, 아이가 미래를 계획하고 안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점에서 하느님 나라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종교도 이런 관점에서 더 늦기 전에 지도자 자리에 계신 분들이 내려놓고 깨어나야 할 것입니다.


(윤원일 부원장) 맞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교회는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습니다. 교회가 그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하느님 교회로써 의미는 없어진다고 봅니다. 교회가 ‘제도’로 남지 않고 일상 안에서 공동선을 실행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고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더욱이 사람들의 고통을 모른 척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교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가 잘못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나서서 얘기하고,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함께 만들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교회를 개혁하는 일은 사회개혁만큼이나 중요하고 값진 일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투표를 통해 좋은 대통령을 뽑기 위해 고민하듯이 바른 교회가 되려면 어떤 수장이 있어야 할지도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신성국 신부) 고맙습니다. 오늘 이렇게 대선을 앞두고 선거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분단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정치개혁·사회개혁 만큼이나 교회개혁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촛불민심이 희망하는 정권교체, 이번 대선에서 이루어야 할 최우선 과제 일 것입니다. 오늘 이 좌담회가 국민들의 간절한 호소를 담아 ‘반드시 이루자’는 외침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긴 시간, 함께 해 주신 네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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