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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비극, “박근혜는 하나가 아니다”
  • 염은경
  • 등록 2017-04-27 18:51:07
  • 수정 2017-05-01 12: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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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임헌영 소장을 만났다. 가톨릭프레스 편집위원 신성국 신부와 함께 만난 임헌영 소장은 “민족문제연구소와 가톨릭은 인연이 깊다”면서 그간 연구소 활동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로 대화를 시작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 곽찬


민족문제연구소 활동 목적은 ‘동아시아 평화정착’ 


(임헌영 소장) 먼저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가톨릭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연구소 초대 이사장이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 회장이었던 이돈명 변호사였습니다. 2대 이사장은 조문기 독립운동가, 3대 이사장이 김병상 몬시뇰이었습니다. 그리고 4대 이사장이 함세웅 신부님입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일체의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 때는 ‘없애야 하는 단체’로 지목될 만큼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이런 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주신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를 해 주신 것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기자) 네, 저희도 모두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도움으로 시작된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도부터 현재까지 수 없이 많은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이 되는 활동은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임헌영 소장) ‘친일인명사전’ 편찬입니다. 우리 연구소의 활동목적은 과거가 아닌 ‘현재’,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분단된 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통일을 해야 하고 중국, 일본, 한국이 호외평등 이웃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역사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역사청산이 되지 않으면 세 나라 국민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유럽인처럼 정답게 지낼 수가 없습니다. 


▲ 친일인명사전 (사진출처=민족문제연구소)


그 과정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친일 청산’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연구소의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오늘날 이런 정치파행은 ‘친일파’ 때문에 생겼습니다. 친일파 후예를 그냥 둔다면 남북한 평화도 불가능하고, 동북아 평화도 불가능 하니 국내적으로는 친일파 청산을 하고 외부적으로는 일본에 과거에 대한 사죄를 받아야 합니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후손들이 마음 놓고 전쟁 없는 나라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친일파 청산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신성국 신부) 프랑스의 경우 4년 간 나치정권을 깨끗이 청산하고 역사를 새로 세우는 모범국가 사례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와 같은 역사청산이 우리나라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요. 


(임헌영 소장) 우리나라 학자들은 대개 ‘일본 너희는 뭐냐 독일처럼 하라’는데 그건 학자들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유럽에서 독일이 과거청산을 그와 같이 안했다면 아마 독일은 망했을 것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은 자기 나라 안에, 우리식으로 말하면 친독파라고 하고 거기선 협력자라고 하는데 그들을 철저히 응징합니다. 그리고 친독 경력이 발견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에 몸 담지 못합니다. 대통령까지도 사표를 냅니다. 전 유럽이 다 그랬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독일이 과거사 청산을 안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하나가 돼서 전 유럽이 평화를 이룩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친일파들이 집권을 하고 일본은 전범들이 집권을 했는데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미국이 반소련, 반중국을 위해 한국에는 친일파가 필요하고, 일본에는 전범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상대적입니다. 우리나라 잘못 반, 일본 잘못 반, 미국에는 모든 책임이 있고 만약 2차 대전 끝난 뒤에 뉘른베르크 재판 같은 수준으로 엄격하게 일본에서 동경재판을 했다면 군국주의자들 전범들 다 청산하고 일본정치도 달라지고, 우리나라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바뀌면 우리나라도 바뀌고 우리나라가 바뀌면 일본이 바뀌고 상대적입니다.


▲ ⓒ 곽찬


수많은 박근혜, 이 시대의 비극 


(기자) 박근혜 정권의 ‘건국절’ 발언,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12·28한일합의, 사드배치 강행 등으로 역사학계에서는 ‘현 정세가 100여 년 전 국가의 존망이 위협을 받고 있던 때와 유사한 심각한 위기 국면’이라고 경고한바 있습니다. 


(임헌영 소장) 100년 전보다 더 합니다. 그때 국민들은 옳고 그름을 분간 했는데 지금은 나쁜 짓 한 사람들이 태극기 들고 더 떠들지 않습니까?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우리나라 전체의 정의감을 없앴습니다. 옳고 그르다는 판단력을 없애고, 역사의식을 없앴습니다. 


대통령 하나가 이렇게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역사에 증명했습니다. 세계에 어떤 나쁜 지도자도 자기 민족과 국가를 이렇게까지 황폐하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고 봅니다. 


(기자) 박근혜 정부의 ‘역사쿠데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십니까? 


(임헌영 소장) 그게 연구과제입니다. 무지하다고 보기에는 너무 악랄하고, 악랄하다고만 보기에는 너무 몽매합니다. 국가나 민족, 정의나 불의, 예의와 무례와 같은 상식이 없습니다. 최순실과 가까이 지내는 게 뭐가 나쁘냐, 개인적으로 해준 것인데 뭐가 문제냐 하는 것은 우리 가치관으로 판단 안 되는 인간형입니다.


순진하거나 무지하기에는 악랄하고, 선악을 판단하기에는 무지하고, 세계 지도자 중에서 아주 깊이 연구해 봐야할 유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 곽찬


(신성국 신부) 그런데 단순히 볼 수 없는 것이, ‘박근혜’라는 인물이 한 개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태극기 집회처럼 많은 사람들과 괴물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임헌영 소장) 저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집권하는 만 9년 동안 똑같은 인간들을 많이 양산했습니다. 국민의 세금을 빼돌려서 제2의, 제3의, 수많은 박근혜를 만들어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전혀 선악, 정의, 불의 판단이 없습니다. 이런 문화를 바꾸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염려스럽습니다.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이렇게 많은 예술가, 철학자, 교육자 특히 종교인, 그렇게 많은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 있는데 제가 묻고 싶습니다. 왜 이걸 못 고쳤느냐, 하느님 말씀도 안 통하느냐. 이번 집회에 기독교 신자가 많았던 것으로 보도되는데 ‘아, 하나님이 저렇게 오·남용 되는 게 누구 책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구교는 유럽을 통해 들어와서 다른데, 개신교가 들어올 때 계몽주의를 안 겪었습니다. 이 점이 유럽과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볼테르나 독일 고전철학자 칸트 같은 사람들이 계몽주의를 통해 기독교 폐해를 지적했습니다. 


올바르지 않은 신앙 지독한 맹신주의를 비판한 것이 계몽주의입니다. 그런데 미국 역시 계몽주의를 겪지 않고 기독교 신앙이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유럽에서는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 계몽주의인데, 우리나라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계몽주의였습니다. 


어떻게 나쁜 지도자에게 축복을 내리는 기도를 합니까? 참 하느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계몽주의를 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교 안에서 계몽주의 신부님, 목사님들이 빨리 많이 나와서 운동을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촛불혁명은 인간존재의 구국, 정신문화의 최고 정점


(기자) 소장님께서는 지난 해 6월 < 한겨레21 >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혁명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가능하다’면서 촛불혁명을 예견한 것과 같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혁명 이후,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임헌영 소장) 봄이 오면 꽃이 피듯이, 젊은 사람들 속에서 정의감이 살아납니다. 저는 그 힘을 믿습니다. 반대가 다수여서 혁명을 일으키는 힘이 안 되더라도 그런 세력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아요. 


역사학자들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모두 피를 흘렸습니다. 이번에는 피를 안 봤잖아요. 피를 보던 혁명의 시대에서 평화적인 혁명의 시대를 연 것이 촛불혁명입니다. 이것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인데, ‘피를 안 본 혁명 촛불이란 것은 인간존재의 구국’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정신문화의 최정점’입니다. 


▲ ⓒ 최진


이것은 종교적인 차원입니다. 촛불을 드는 순간에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모두 자기 마음 속의 신을 찾아요. ‘나도 촛불처럼 누군가를 밝혀야지’, ‘빛이 돼야지’ 하면서 피 없는 혁명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셨듯이 그것까지는 이루었는데 뒤를 이으려고 보니 기존 정치인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혁명은 촛불이 이룩했지만 더불어 살면서 선거를 하려니 쉽지 않습니다.


촛불혁명이 해 냈듯이 뒤에 나올 대통령은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촛불을 범국민적인 축제로 승화시켜 전국 방방곡곡 촛불집회하고 마을마다 잔치를 벌여서 정치를 살리고, 누가 되든 무혈 시민혁명 정신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성국 신부) 저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 역사,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마다 청산해야 될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는 새로운 정부에 들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임헌영 소장) 친일청산작업을 계속 해야 하고, 일본의 퇴행적인 행태를 막아야 합니다. 동아시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일본도 바뀌고 우리나라도 바뀌어야 하는데, 우선 우리가 바뀌면 일본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봅니다. 옛날에 일본이 우리나라 문화를 배워 갔듯이 일본도 배울 때가 됐다고 봅니다. 


일본, 중국, 북한에도 영향을 주면서 동아시아에서 모범적인 정치를 하는 정권이 돼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못하면 또 촛불 들고 바꿔야 합니다. 누가 될지 모르지만 정신 차리게 해야 하고 국민들 마음 속에 항상 촛불을 품고 있다가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나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도 물러나지 않고 힘차게 많은 국민들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자) 민족문제연구소 2017년 사업계획을 보니, 핵심과제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을 꼽았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왜 중요합니까?


(임헌영 소장) 국·공립 역사박물관이나 역사관에 가면 친일 청산과 같은 역사의식, 독립운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정신은 느껴볼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위정자들, 집권한 세력들의 업적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저희는 일제식민지시대 수탈의 역사, 서민들의 삶부터 침략정책까지를 다 보여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과 해외에서 오는 여행자들에게 까지도 ‘식민지 때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느끼게 해주기 위해 계획하게 됐습니다. 박물관 안에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자리도 100석 정도 마련해서 언제든지 강의를 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어디 대기업에서 후원을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모두 국민 모금으로 친일인명사전도 만들고 일을 해 왔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해서 앞으로 30억을 더 모금해야 하는데 여러분들의 관심이 많이 필요합니다. 


(기자) 민족문제연구소의 다양한 활동의 근간에는 ‘기억’와 ‘기록’, 그리고 ‘증언’의 소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기억의 종교’라고 하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헌영 소장) 저는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의 선함을 믿습니다. 그 선함은 기록입니다. 기록에서 잘못 된 것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데서 신앙심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다음 편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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