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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여기, 성주 길바닥에 있다”
  • 최진
  • 등록 2017-03-30 14:24:03
  • 수정 2017-03-31 21: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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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대구 정평위와 남녀 수도자들은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 행동에 연대의 뜻을 밝히며, 평화미사와 기도회로 투쟁에 동참했다. ⓒ 최진


박근혜 정권이 탄핵심판으로 갑작스럽게 끝나자, 한미 양국은 연내 배치로 공표한 사드배치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사드배치 강행으로 순례 길이 막힌 원불교인들은 한 겨울 길바닥에 주저앉아 원불교 성지 보호와 한반도 평화, 그리고 전쟁 없는 나라를 외롭게 외쳐야 했다.


이에 한국 천주교인들은 원불교인들과 성주 주민들의 외로운 투쟁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 수도자들은 지난 15일 한반도 사드배치 반대 행동에 연대의 뜻을 밝히며, 평화미사와 기도회로 투쟁에 동참했다.


29일 미사가 봉헌되는 경북 성주군 예수성심시녀회 평화계곡 피정의집 현장을 찾았다. ‘사드배치 반대’라는 문구는 작은 시골 시외버스터미널부터 곳곳을 장식했다. 


“자기 집 안방에 CCTV를 설치해도 저 딴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어르신은 ‘중국이 한국의 사드배치에 경제보복을 하는 것은 주권 침해며 강경히 맞서야 한다’는 한 종편 방송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은 “여기 사람들은 저 사드만 아니면 속 썩을 일이 없다”고 했다.  


“군사적 균형 깨진 동아시아, 화약고로 변한다”


평화 기도회지만 현장은 평화롭지 않았다. 이날 미사를 주례하기로 한 대구대교구 청년국 구자균 차장신부가 피정의집으로 올라오는 도로에 가로막혀 도착이 지연되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장비들에, 마을주민들이 놀라 길을 막았고, 그 상황에 구 신부가 끼여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사 전 미리 모인 수도자들과 신자들을 위해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황동환 신부는 사드배치에 대한 문제점과 투쟁현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사드배치 문제점과 중국의 반발, 그리고 동북아를 둘러싼 전쟁문화의 실상을 간결하고 쉽게 전달했다.


▲ 황동환 신부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면 동앙시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 최진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중국과 러시아와 전쟁을 해야 한다.


황 신부는 “한‧미‧일 군사동맹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쟁조직이다. 그리고 사드 배치가 그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미국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300개, 중국이 50개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이 앞도적인 군사력을 우위에 두고도 중국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50개 중 단 한발이라도 미국 대도시에 떨어지게 되면 그 피해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지금껏 미국은 중국을 어쩌지 못하고 있었는데,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의 주요 미사일 기지를 파악할 수 있어, 이 균형이 깨진다고 우려했다.


특히 미·중 간의 군사적 균형이 깨지면, 중국은 이에 대응하는 군사력 보강에 힘을 쏟을 것이고, 이후 일본과 러시아, 북한과 한국까지도 군비경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드배치 하나로 군사적 균형이 깨진 동아시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드배치 막아내기 위해서는 연대가 중요”


▲ 평화를 염원하며 성주 소성리에 함께 모인 신앙인들 ⓒ 최진


설명이 끝나고 구 신부가 도착했다. 구 신부는 평화를 염원하는 이 미사를 소풍 오는 마음으로 즐겁게 왔다고 밝혔다. 황동환 신부도 “우리는 단지 평화를 염원하는, 종교인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소풍을 오듯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정마을과 팽목항, 그리고 성주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함께 더불어 안전하고 평화롭게 잘 살아보자는 소박한 염원이다. 그런데 국가는 이 선량하고 약한 염원은 안중에도 없다.


구 신부는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를 청하지만, 현장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와야 한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교황님의 말씀처럼, 신앙인들은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십자가를 따라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원불교 교무들이 온 몸으로 사드를 막아내고 있는 진밭교 삼거리로 향했다. 천주교인들의 방문에 원불교 교무들은 기꺼이 일어나 환영의 뜻을 보냈다. 그러나 경찰은 병력을 동원해 이들을 막았다. 


▲ 이날 다함께 원불교 구도길을 순례하고자 했지만 경찰은 이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 최진


원래 이 길은 원불교 구도길이다. 경찰이 못 가게 해서 겨울동안 우리가 여기 주저앉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천주교가 함께 해주시니 백배, 천배 힘이 난다.


원불교 대구‧경북 김도심 교구장은 국민이 탄핵을 해야 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정부가 사드배치를 결정했고, 그 정부가 결국 국민의 심판으로 끝이 났는데, 왜 사드배치는 강행되고 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김 교구장은 마을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관계자의 말에 “지금 집회보다도 이곳을 찾아 준 천주교 동지들이 더 중요하다”며 자리를 지켰다. 원불교인들과 천주교인들은 손을 맞잡고 둥글게 서서 ‘우리의 소원’을 제창했다. 노래가 끝난 후 종교인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천주교인들은 묵주기도를 이어가며 사드배치 반대 정기집회가 열리고 있는 소성리 회관으로 향했고 원불교인들은 무력으로 막힌 구도길을 다시 지켰다.


“하느님은 성주 길바닥에”


▲ 평화를 되찾기 위해 성주 소성리로 모인 신앙인들 ⓒ 최진


집회장소 바로 옆에는 천막으로 지어진 천주교 상황실이 마련돼 있다. 상황실을 지키고 있는 황 신부는 성주를 찾아 온 신자들이 잠시라도 편히 앉아 차 한 잔 하며 연대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할 것 같아 상황실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황 신부는 “신자 분들이 이곳 성주 현장으로 봄 소풍을 오셨으면 좋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현장을 찾은 대구대교구 유천성당 신재화 씨는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경찰의 모습을 모며 답답함을 느꼈다. 자유롭게 순례하지도 못하는 나라가 과연 내 나라인가 싶었다”라며 “공부와 취업 준비로 항상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런 국가의 현실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정말 의미 있는 봄 소풍 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사순이 끝나면 각 본당마다 엠마오를 하게 될 텐데, 숱한 돈을 써가며 해외성지순례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아픔이 있는 현장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 사순이 끝나면 아픔이 있는 현장으로 엠마오를 떠나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어떨까 ⓒ 최진


안강성당 박현숙 씨는 “아프고 어렵고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이 성주에 있다. 예수님은 외국 큰 성당에도 계시겠지만, 여기 성주 길바닥에도 있다. 새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이제는 신심을 소비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좀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주 소성리를 방문하면 지글지글한 온돌이 제공되는 소성리회관이 숙소로 주어진다. 마을 어르신들이 손수 마련한 저녁도 먹을 수 있다. 또 천주교 상황실을 방문하면 진한 다방커피와 황동환 신부의 한반도 평화강연을 제공받을 수 있다. 탄핵 후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사람들이 몰리는 유명 관광지나 해외성지순례보다, 단 한명의 발길도 소중하고 감사한 성주 소성리로 봄 소풍과 엠마오를 가는 것이 어떨까. 강력추천 할 만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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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imekings2017-03-31 14:59:58

    jaime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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