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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수녀 에스텔의 종신허원식
  • 전순란
  • 등록 2015-05-23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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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1일 목요일, 맑음


지리산 골짜기 무논에 개구리 울음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바람결에 가끔 소쩍새 소리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한다. 짝을 찾는 저 마음의 외로움이 사라질 때까지 이 초여름의 “소쩍소쩍”은 솔숲에서 피나게 이어질 게다. 


이 마을만 해도 대부분이 과수댁들이어서 불을 끄고 살짝 열린 창틈으로 불어드는 저 새소리에 폐부를 찌르는 아픔을 누르면서 “지랄 맞게도 우네~”라며 먼저 간 영감생각을 하고 한번쯤은 베개를 고쳐 베며 몸을 뒤척일 게다.


“여보, 뒷문을 열고 밤의 소릴 좀 들어봐요.” 보스코는 열린 서재 뒷문 앞에서 한참이나 서 있다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선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이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이 순간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참 아름답다. 그리고 참 행복하다.


아침에 엄마를 깨워 시간 맞춰 식당에 가시게 재촉하는 일은 참 힘들다. 그런데 “엄마, 성서방이 엄말 데리러 온데.”라고 한 마디 하자 엄마가 서둘러 바지를 입으시고 지퍼를 올리고 머리를 나한테 내미신다. 머릴 빗어달라는 시늉이다. 


식당에서도 반찬을 잔뜩 담아와서는 밥과 국만 잡숫고 다 버리시는 습관인데 이모님이 호박감자 샐러드를 가리켜 보이며 “언니, 몸에 좋으니 다 잡수세요.”하자 말없이 다 드셨다. “엄마가 웬 일이에요?”라고 이모님을 쳐다보니 “누구 앞인데?”라면서 성서방에게 눈길을 돌린다. 그 연세 그 정신에도 엄마가 사위 앞에서는 여자로서의 자존감을 되살리시는 게 여간 신통하지 않다.


미리내 성지의 '성요셉성당'


보스코는 유무상통에서 엄마와 함께 움직이면 언제나 장모님 팔장을 끼거나 손을 잡고 걷는다. “누구유?”라는 눈인사를 받으면 엄마는 으쓱 “우리 큰 사위”하면서 보스코의 볼을 만지신다. 


평소에 비틀거리시면서도 밀의자도 안 쓰시고 지팡이도 짚지 않아 내가 까닭을 물으면 초라해 보인다!” 라는 답변. 조용대 판사의 맏따님, 이전(梨專) 국가대표농구단의 ‘넘버 식스’ 콧대 높던 처녀시절의 자존감이 엄마를 지탱하는 힘이다.


8시 30분에 우리는 원주로 떠났다.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녀회’에서 종신허원을 하는 보스코의 외조카 에스텔 수녀의 서원미사에 가는 길이다. 여주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동안 행사장으로 가는, 같은 수도회 양신부님과 회원수사 3명을 만났다. 


양신부님은 로마에서 나와 가깝게 지냈던 분으로 몇몇 부인들이 ‘양사모’(양신부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모임)를 꾸려 그분의 잠비아 회원양성과 선교활동을 돕고 있다.


서원미사를 주례하는 원주교구장 김지석 주교님은 “세상에 재미있는 일도 많고 꾸미고 싶은 얼굴도 있고 입고 싶은 옷도 많을 처녀들이 이 길에 들어선 까닭”을 물으면서 자기가 택한 삶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 죽는 순간 “내가 선택 하나는 참 잘 했다!”할만큼 살라고 격려하셨다. 




총원장수녀가 세 수녀의 종신허원을 받으면서, "(자매가 이 약속을 잘 지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는 자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합니다!”라는 한 마디가 개신교였던 내 귀에 생경하게 들렸다. 


오는 길에 남편에게 그 말을 했더니만 돈보스코 성인도 살레시안들에게 “일과 빵과 하늘나라를 약속한다.”고 했단다. 적어도 “모든 살레시안은 과로사(過勞死)로 죽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살레시안들에게 일이 많은 것 하나는 내 보기에도 분명하면 밥 세끼와 천국은 지급되어야 할 듯하다.


조카 수녀의 종신서원을 축하하러 찬성이 서방님(가톨릭교회에서 300여권의 책을 낸 ‘번역작가’ 성찬성은 모르는 교우가 적다) 내외도 올라오고 보스코의 외가에서 가톨릭 집안을 일구어온 정자 시누이도 아들을 데리고 서울에서 왔고, 수녀의 남동생도 딸을 데리고 올라왔다. 


특히 평일임에도 광주에서 원주까지 올라온 세 커플이 눈에 띄었는데 에스텔 수녀 대학생시절에 교회활동을 함께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기특하여 여주휴게소에서 보스코가 그들에게 커피를 사면서 그 우정의 내력을 들었다.


함양에 다 와서 서상 베로니카씨 집에 들러 로마에 가져갈 된장을 사고, 거연정 해넘이를 보면서 둘이서 한가하게 저녁을 먹었다. 어둑한 길일수록 숲은 더욱 검푸르고 산은 더 깊어 보이고 차창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더 신선하여 휴천재로 가는 길은 더욱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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