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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웅배] 사도좌, 땅으로 내려 온 권위
  • 김웅배
  • 등록 2017-02-20 11:12:00
  • 수정 2017-02-20 11: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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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다큐 영화를 보았다. 이젠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인’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너무 소탈하고, 행동에 거리낌이 없고, 아무데나 다니시는 것 같아 신변이 좀 걱정(?)되기도 하다. 그 다큐 영화에서 교황님 스스로 말씀하신 부분을 기억나는 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교황궁 안에 교황 관저는 깔때기를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에요. 안쪽은 널찍하지만 입구는 정말 좁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면 꼭 물방울 떨어지듯 한사람씩 들어옵니다.  정말이지 난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없으면 난 살 수가 없어요!”


엎어놓은 깔때기와 물방울의 비유가 너무 재미있어서 혼자 깔깔대고 웃었다. 그런 소통의 부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궁 밖에 ‘성녀 마르타의 집’이라는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주교 사제 등, 성직자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주거를 옮길 정도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했다.


그런데 단순히 수평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시민들과의 소통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무실과 침실도 구별 못하는 어느 대통령은 도대체 자신의 백성들에게 무슨 존재일까?!  


다른 일화에 예를 들 것도 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겸손하고 격의 없는 자세는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상관없이 세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3억의 신앙을 돌보는 교황으로서 파격적인 행보는 그래서 더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 하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러한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행보로 인해 사도좌(교황좌)의 권위가 결코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년 2월은 가톨릭 전례력에서 그다지 큰 이벤트가 없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축일이 하나 들어있다. 바로 매년 2월 22일로 정한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이 그것이다. 사도좌 축일은 예수의 으뜸 제자인 베드로에게 교회의 수위권과 천국의 열쇠, 그리고 사죄권을(마태 16, 15-19) 주님으로부터 받은 로마의 주교좌인 성 베드로 사도좌(교황좌)를 위한 축일이다. 


최근에 ‘쿼바디스’라는 유명한 영화를 다시 한 번 보았다. 고전 종교영화는 가끔 어릴 때 기억을 상기시킨다. 네로의 눈물단지와 젊은 연인들의 사랑,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 거대한 원형 경기장 안에서 리지아의 호위 검투사 우루수스와 황소의 싸움 등등 그때 봤던 쿼바디스의 이미지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보면서 새로운 내용을 보게 되었다. 드라마 상에서 바오로는 주인공들과 가까이 지내는 예수의 사랑을 전파하는 설교자로 나온다. 그 바오로가 극중에서 베드로에 대해서 “우리 주 예수님을 직접 뵌 분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반석으로 삼은 분이 오신다!”라며 감격의 상찬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과 같이 생활하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수제자 베드로에 대해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 대사였다. 


당시 내로라하는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에 비해 전혀 뒤질 것 없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 바오로의 안목으로 볼 때 베드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보잘 것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낱 어부에 불과한 그에게 사도의 권위를 그렇게 높게 들어 올린 이유가 무엇인가! 



바티칸 광장에 가면 베드로와 바오로의 석상이 대성당을 배경으로 좌우에 서있다. 내 기억에, 바라보는 쪽에서 보면 베드로 사도는 왼쪽이었던 같다. 물론 베드로 입장에서 보면 우측이다. 사도 베드로는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고 있고 사도 바오로는 성령의 칼을 들고 서 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놀랍지 아니한가? 열쇠를 들고 천국을 지키려는 베드로와 보다 넓은 길을 만들려고 성령의 칼을 든 바오로! 베드로는 자신의 민족, 예수도 인정한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유다 민족의 사도라면 바오로는 보다 개혁적이고 더 넓은 세계를 지향하는 이방인의 사도였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을 보유하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베드로와 바오로라는 ‘좌우익의 절묘한 만남’으로 세상을 복음으로 이끌었다.


‘예수가 없었다면 바오로도 없고 바오로가 없다면 그리스도교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도 바오로가 초대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필설로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만큼 바오로가 이방인의 사도라는 별명과 함께 이천여년 이어 온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감히 한마디 더 추가한다면 ‘우리에게 어부 베드로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시몬 베드로의 존재가 없었다면 즉, 예수님께서 촌부 베드로를 반석으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면 사도좌도 없었을 뿐더러 그리스도교는 조타수를 잃고 초대교회에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수님은 진보적이지만 베드로는 진보적이지 않았다. 그냥 생계를 잇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장삼이사 중에 한 사람일 뿐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그저 당시의 문화와 관습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아마도 로마의 식민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가 부당하다는 정도의 식견을 가졌을 뿐이지 로마 제국과 무슨 기득권들의 행태에 반기를 들만한 인물도 아니었고 그냥 유다교라는 민족적 종교에 기반을 두고 살던 일반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른 것은 다른 제자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세상에서 메시아로 보이는 예수를 추종함으로써 세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메시아에 대한 팩트를 잘못 이해한 것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러나 ‘좌충우돌’ 베드로는 현세를 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냉온탕을 드나드는 좀 찌질한 행동거지를 반복한 끝에 드디어는 예수님의 으뜸 제자로 거듭나서 일방적인 예수님에 지시에 의해 교회의 반석이 되어 든든한 우익을 담당하게 된다. 


한편 바오로는 바리사이 중에서도 바리사이로서 당대의 율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보수 계층이었다. 그에게는 기득권층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진보 성향의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목표가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예수를 체험한다. 그리고는 기존 질서를 깨고 당당히 예수를 외치는 진보주의자로 새로 태어나 그답게 예수님의 좌측을 차지한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교에는 좌우익의 안정적인 날개를 달게 되었다. 두 사도의 권위는 두 사도의 좌우익의 협업에서 자연스레 생겨났다.  


현 세태에 비추어본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는 사도좌의 권위와 버금간다. 아니 오히려 좁혀 생각하면 현 교황이 누리는 권한과 권위보다 정치적 대통령이 누리는 권한이 훨씬 크고 대단하다. 중세 막강한 교황의 권한과 권위는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의 권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음은 물론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었다.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강력한 황제들도 교황 앞에 무릎을 꿇은 적도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반추해 본다면 세속에서 억지로 들이대는 권위에 반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권위는 불법적인 무리가 볼 때, 형편없이 작은 권위로 비추일지 모른다. 아니 실제로 육신을 구속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한 권한과 권위가 아닌가? 그런데 왜 세계의 권력자들은 교황 앞에서 작아지고, 착해지려는 어린아이 코스프레를 하려고 하는가?  


사도좌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만이 앉을 수 있는 권한과 권위를 나타나며 로마의 주교좌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도 바오로는 교황좌에 앉지는 않았으나 베드로와 동격의 사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두 사도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로마에서 순교했으며 교회에서는 6월 29일을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축일’로 지정했다. 사도좌는 좌우에 함께 앉아 있는 두 사도의 존재감으로 더욱 권위가 있어 보인다. 아무도 교황의 좌우익을 넘나드는 편향성을 비난 못한다. 


이천여년이 흘러서 성 베드로와 바오로의 후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한과 권위는, 중세의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나 정치적 세속적으로도 막강했던 교황보다 훨씬 작지만, 현세에는 과거의 교황들은 물론 세속의 그 어떤 대단한 권력자보다 권위와 영향력이 높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권위주의적인 교황좌(사도좌)’를 땅으로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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