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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의 일상적 비극
  • 전순란
  • 등록 2015-05-21 12: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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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20일 맑음


“옆에 옆에 방에 살던 80대 후반 노인부부가 말이다, 젊어서부터 그렇게 그렇게 부부싸움을 해왔다는데, 그날 점심에 남편만 밥을 먹으러 내려왔고, 식사 후 혼자서 산보를 하더니만 방에 올라가 보니까 (할머니가) 욕조 미끄럼방지 손잡이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지 뭐니.” “???” “결혼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싸울 거리가 남아 있으니 기운도 좋다고 사람들마나 욕을 하드라, 얘.” 엄마의 실버타운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건물을 한 바퀴 돌면서 이모님이 들려주신 비극이다.



노인들의 자살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일주일 전에 입소한 할아버지가 이모님 옆방에 사는데 부인 돌아가시고 스스로 식사와 생활을 건사하지 못하자 자식들이 이 실버타운에 모셨단다. 들어온지 일주일 만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오지 않아 직원들이 올라가 보니 옆으로 누운 채로, 그러니까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모님 침대를 향해 누운 채로 돌아가셨더란다. 실버타운을 운영하는 이들이 일상으로 대하는 비극이다.


“그러니까 말이다, 제 명을 다하고 간 사람은 벽 하나를 두고 옆에서 죽어도 하나도 안 무서운데 투신이든 목을 매든 자살을 한 사람의 방은 그 앞을 지나가기도 무섭더라, 얘.” 


삶과 죽음을 하느님 손에 맡기고 마지막까지 자기 운명을 살아간 사람들이야 노래하며 춤추며 저승길을 걸어가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힘겹고 괴로울까? 하느님은 그를 오죽이나 측은히 맞으실까? 보스코는 사람이 자신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후회가 곧 지옥이라는데...



13년 전만도 이곳 입주자들의 평균연령이 75세였는데 먼저 살던 사람들은 늙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고령들뿐 이선지 지금은 평균연령이 85세란다. 식사 후 현관 앞 의자에 앉아 담소를 하다 한두 시간 지나서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는데 이젠 노인들이 10분을 못 넘긴단다. 


내가 이모님이랑 산보를 하는 동안 사위랑 나란히 앉아 계시던 엄마도 “추니까 죄다 들어가 버렸어. 여름엔 이 앞에 잔뜩 앉아들 있었는데..”라는 말을 거듭하시더란다, 쓸쓸한 표정으로...


엄마는 지난 번 검사 결과로 약을 바꿔드시면서 정신이 더 맑아지고 밤이나 낮이나 약에 취해 누워계시던 모습 대신 오늘은 침대에 앉아 TV를 보고 계신다. 이모님 말에 의하면, 아흔 중반을 넘기면서 바뀐 점이 엄마가 고집이 너무 세지셨다나... 이젠 당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단체생활의 규율이나 약속은 지독히도 안 지키신다나... 7시 30분의 아침식사도 전화를 하고 사람이 올라가서 모셔 내려와야 하니 직원들로서는 보통 고달픈 일이 아니라나... 


하지만 이곳 원장님 말씀은 다르다. "어머님만 같으면 저흰 세상 편하겠어요. 한 마디 말씀도 없으시고(이모님은 직원들에게 매사를 따지시는 성격이다) 저흴 보면 빙긋 웃기만 하셔요."


엄마가 안 하시던 일도 하신다. 초저녁에 지켜보니 밤중에 엄마 침대에서 비닐 뽀시락 소리가 난다. 전화기 밑에 과자를 두고 그걸 까서 한 조각씩 입에 넣고 우물거리신다. “엄마, 뭐 만난 거 먹어? 나도 좀 줘.” “아니다, 얘. 다 먹고 없다.” 


그러고서 얼마 뒤 다시 그 뽀시락 소리가 들린다, 어둠 속에서... 잠결에 보니 어느 새 냉장고 앞에 서 계시고 냉장고 문을 열고 한참이나 들여다보시더니 포도를 몇 알 따서 들고 자리에 누우신다. 이 일은 밤새 몇 차례나 반복된다. 엄마가 밤을 새는 일상이다. 


“내게도 저런 날이 오겠지? 그게 정상이 아니고 좀 우스운 일이라는 걸 알기나 할까? 보스코는 어찌 될까? 작년 가을만 해도 나이 98에 기역자로 휜 허리로 텃밭 농사를 짓던 아주머니 한 분도 이젠 도우미에 의지하여 움직이신다. 유아원과 양로원을 함께 두면 서로 수준을 맞추어 잘 놀고 어르신들은 애들의 재롱을 보며 생기를 얻으실 텐데...


이완구와 홍준표를 불구속 입건한다는 검찰. 참 더러운 세상에 참 더러운 인간들이 검찰권을 쥐고 있으니 우리의 법감정이 참 더럽다. 칸트라는 위대한 철학자가 “정의를 위해서라도 영혼은 불사불멸해야 한다.”는 지론을 폈는데, “모든 인간은 공평한 정의를 희구한다.” “그런데 세상에 정의는 절대 안 이루어진다.” “따라서 저 희망이 헛되지 않으려면 인간은 사후에 그 정의구현을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불사불멸해야 한다.”는 논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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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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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bino9102015-05-26 02:25:23

    마지막 단락에서 갑자기 주제가 바뀌어서 당황했네요

    실버타운의 쓸쓸함아 잘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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