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가 해운대성당 바로 옆 부지를 독단으로 매각해 신자들의 반발을 샀던 자선아파트 부지 매각금 전액을 자선아파트 건립 취지에 따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교구는 4일 교구 홈페이지를 통해 “천주교 아파트는 부지만 교구 앞으로 돼 있고, 그 위에 있는 집과 건물은 개인들의 소유로 돼 있는 상황”이라며 “재건축이 필요한 시점에서 건물 소유주들이 요청하는 재산권 행사와 관련한 토지 이용 동의에 대해 교구가 교회정신으로 응답해 왔다”며 부지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해운대성당 신자들의 부지매각 반발에 대해 “지상권을 가진 입주자들의 재건축 추진이 재개발 회사와 연계 돼 이뤄졌다”며 “본의 아니게 인접한 해운대성당에 아쉬운 결과를 남기게 돼, 교구로서 심히 유감스럽고 안타깝게 여기는바”라고 전했다.
교구 재무평의회는 “지금보다 어려웠던 교구 초창기에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도 그 정신을 구현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라며 “그래서 이번 해운대 소재의 자선 아파트 정리로 보상받게 된 금액 전액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교구가 밝힌 보상금액은 세금을 제외하고 약 24억이다. 부산교구는 교구 총대리인 손삼석 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나눔 실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구의 독단적 행정, 이번에는 아닐까?
부산교구는 교구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을 공지하기 전, 지역신문과 교계 언론에 하루 앞서 이 사실을 알렸다. 언론에 발송한 보도자료 내용에는 자선아파트 건립 취지와 매각 배경에 대한 소개가 교구 홈페이지 내용보다 더욱 자세히 담겼다. 해운대성당 신자들에 대한 언급은 언론사 보도자료에서는 찾을 수 없다.
부산교구는 해운대성당 신자들이 부지매각에 반대해 논란이 일자, 지난해 11월 22일에도 교구 홈페이지에 매각과 관련한 경위서를 공지했다. 당시 경위서에서도 자선아파트의 기원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해운대성당 신자들이 자선아파트 건립과 상관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또한 부지 매각은 주민들이 재개발을 위해 교구에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교구가 3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는 매각금 처리 결정 내용과 더불어 지난해 밝힌 교구의 입장을 보완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선아파트 부지매각에서 발생했던 여러 문제들의 원인, 신자들과 소통하지 않았던 태도를 교구가 이번 결정에서는 반영했을까.
김영욱 해운대성당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총무는 교구가 매각대금 처리와 관련해 신자들에게 알린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교구가 명분 없는 토지매각을 비밀리에 진행한 후, 지역 언론사와 교계 언론을 이용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구는 매각대금 사용 문제를 신자들보다 언론에 먼저 알렸다
김영욱 총무는 “교구가 신자들보다 언론에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는 것은 언론 플레이를 하겠다는 것이다. 교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힌다”라며 “교구가 멋대로 땅을 팔고 문제가 되니까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명분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명분 없는 매각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더니, 이제 와서는 언론을 통해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신자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독단적 매각이나, 교구 이미지만 생각하는 독단 언론 플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라며 “교구는 신자들을 협력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노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한탄했다.
또한, 교구의 부지 매각 문제가 현재도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교구가 매각한 땅에 세워질 초고층 오피스텔 건물이 해운대초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해,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일조권 보장 문제로 항의에 나섰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학교 바로 옆에 지상 36층, 지하 4층 규모의 대형 빌딩이 들어서면, 아이들이 햇빛 없는 그늘 속에서 학교를 다녀야 한다며 해운대구청과 관련 기관을 상대로 건축허가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김 총무는 “교구가 땅을 급하게 팔아버린 것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도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햇빛 없는 운동장과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사태는 땅의 70%를 소유하고 있던 교구가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라며 “초등학교 학부모들과 지역민들은 천주교를 원망한다. 그래서 성당 신자들은 학부모와 지역민들에게 미안해하며 성당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사가 시작되면 성당 붕괴 위험도 있지만, 무사히 끝나도 더는 성당에서는 하늘을 볼 수 없게 된다”라며 “교구가 독단으로 결정한 것 때문에 신자는 물론이고 지역민과 아이들까지 피해를 당하는 상황인데, 정작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교구는 돈을 가지고 언론 플레이나 하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지금까지 교구가 신자들에게 한 행태를 보면서 기대도 안 했지만, 이런 모습까지 보일 줄은 몰랐다. 신자들은 평생 교구가 결정한 잘못을 책임지며 성당에 나와야 한다. 성당에 다니는 한 대대손손 그 피해가 이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김 총무에 따르면 교구는 지난해 12월 28일 이미 (주)씨앤티 개발사로부터 매각계약에 대한 잔금을 모두 받았다. 해운대성당 신자들이 다음날인 29일 자선아파트 토지등기를 확인한 결과 모두 매각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와 관련해 해운대성당에 다녔던 한 신자는 “교구는 골치 아팠던 매각 작업이 끝났다며 홀가분한 심정으로 매각 보상금 관련한 자료를 언론에 뿌렸겠지만, 건설사를 위해 진행된 계약 정황이나 시세보다 저렴하게 땅을 판 리베이트 관련 의혹은 해결된 것이 없다”라며 “교구가 말한 ‘교회정신을 가진 공동체’의 의미를 스스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