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인천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정신철 주교의 착좌식이 27일 오후 2시 인천 주교좌 답동성당에서 열렸다. 2대 교구장인 최기산 주교가 지난 5월 30일 갑작스럽게 선종한 이후 공석이었던 교구장 자리가 채워진 것이다.
최 주교의 선종 이후 정신철 주교는 인천교구장 서리로 있으면서 교구장 권한대행을 해왔다. 2010년부터 교구 보좌주교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순서다. 그리고 이제 공식적으로 교구 행정 전반에 걸친 책임이 정 주교 자신에게 주어졌다. 물론 책임과 함께 교구장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이 있다.
정 주교가 선장으로 올라탄 인천교구는 그러나 교회 내에서도 우려가 많은 배다. 노동자의 교구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탄압 의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성장주의에 빠져 상업화의 길을 걷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지어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교구가 파산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위태로운 인천교구의 선장이 된 정 주교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착좌를 하면서 밝히는 그의 심정과 다짐, 그리고 약속이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착좌식 날 오전에 답동성당 들머리에서는 인천성모‧국제성모병원 정상화 인천시민대책위원회(이하 인천시민대책위)의 기자회견부터 만나게 됐다. 3년 차 투쟁에 접어드는 보건의료노조는 착좌식 날 어떤 발언을 할지도 궁금했다.
인천시민대책위, “절박하지만 존중의 뜻을 담아 이날 시위는 않고, 짧은 기자회견만”
교구 사제, “그러니까 길가로 나가서 해라”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1월 10일 정 주교가 교구장에 임명된다는 소식 이후 인천시민대책위는 많은 내부 토의를 해야만 했다. 바로 착좌식 당일 날 집회 여부였다.
시위의 본래 목적에 따르면 착좌식 당일이 매우 중요한 날이다. 교회에 대내외적으로 성모병원 사태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겨울에도 매주 촛불집회를 열고 사태해결에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절박한 심정의 대책위에는 꼭 집회가 필요한 날이었다.
그러나 착좌식이 지니는 중요성과 교구장 탄생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천주교의 중요하고 기쁜 행사인 만큼, 존중의 차원에서 착좌식 당일 집회시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결국, 대책위는 이날 오전 11시 답동성당 앞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절박함과 존중의 뜻이 담긴 결정이었다.
대책위의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10여 분 전쯤에 어디선가 답동성당 주임신부가 나와 대책위의 기자회견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성당 입구에서 하지 말고 길가로 나가라”는 것이다. 대책위가 서 있는 땅이 성당 소유는 아니지만, 성당 바로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상황이 주임신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연신 “그러니까 길가로 나가서 해라”는 말을 했다.
이어 교구 사무국장 신부도 나와 대책위에 항의했다. 흥분한 사무국장 신부가 “인마”라는 말을 내뱉자, 대책위의 항의도 거세졌다. 대책위는 좋은 날이라 간단히 기자회견으로 마치려는데, 왜 신부님들이 나와서 반말로 언성을 높이느냐고 항의했다. 신부들이 들어가자 관리국 직원이 나와서 상황을 감시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양승조 인천시민대책위 공동대표는 “이전에는 정식 인천교구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오늘부터 정신철 주교는 교구장으로서 인천교구를 대표하게 된다”라며 “천주교 교구장으로서 교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주교가 사태해결에 직접 나서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원종인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 본부장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그는 “인천성모병원과 국제성모병원사태가 2년 가까이 해결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원인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천교구가 그 역할을 방임하고 있기 때문”이란 점을 분명히 짚었다.
또한 “이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 된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고 잘못 들어선 길은 아무리 멀어도 되돌아와야 한다”라며 “천주교 인천교구는 더 이상 사태를 방관하지 말고 두 병원이 다시 본래의 선교사명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루 속히 사태해결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은 30여분 동안 이뤄졌다.
정 주교는 교구장 서리를 맡았던 6개월 남짓한 시간에 대책위 간부와 보건의료노조를 상대로 염수정 추기경에 이어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기에 대책위와 인천교구 간의 대화는 그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신자’ ‘사제’뿐 아니라 ‘지역사회’와도 소통하겠다는 정신철 주교
흥미로운 것은 정 주교가 교구장으로 임명된 후 여러 언론을 통해 ‘소통’이란 키워드를 들고 나온 점이다. 현재 인천교구가 족쇄처럼 달고 있는 성모병원 사태 해결의 핵심 실마리가 ‘소통’인 만큼, 이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정 주교는 사제들과의 소통, 더 나아가 신자들과의 소통을 말하면서, 심지어 ‘지역사회’와의 소통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하느님과의 수직적 기도와 지역사회와의 수평적 나눔, 교회와 세상을 잇는 ‘소통’을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인천교구가 답동성당 부지를 신자들 몰래 지자체에 매각한 것을 두고, 그가 말하는 지역사회 소통의 단적인 예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교구가 이에 대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착좌식은 교구장으로 임명된 주교가 정식으로 직무를 받는 취임식이다. 정 주교는 1993년 사제 서품 후 2010년 인천교구 보좌주교로 서품, 지난달 10일 인천교구 제3대 교구장에 임명됐다.
기자회견 후 착좌식 현장을 둘러봤다. 세워놓은 플라스틱 의자가 강풍에 쓰러질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날씨만 놓고 보면 혹한기 착좌식이었다. 다행히 교구는 좌석 주변으로 천막과 실외 난로를 설치해 바람과 추위를 대비했다.
취재 제한,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다”
착좌식 시작 2시간 전임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기도하는 신자가 눈에 띄었다. 착좌식 진행시간까지 고려하면 4시간가량 한파 속에서 기도와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인천교구 신자들이 공석이었던 교구장의 착좌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
취재를 위해 우선 홍보실을 찾았지만, 교구 홍보실 관계자는 성당이 협소해 취재진이 많을 경우 착좌식 행사에 방해될 수 있어 인원을 제한한다면서 지역 언론사의 취재도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날 사전에 취재가 허용된 곳은 교계 신문 2곳과 교구 홍보실 직원, 그리고 인천시청 관계자들이었다. 관계자는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와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거부’가 아니라 ‘대기’임에 감사하며 성당 주변을 돌아보는데, ‘입장 대기줄’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내용에는 ‘성당 내부는 입석 입장만 가능하며, 미사 15분 전 입장한다’라며 성당 내부로 입장할 신자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서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홍보실 관계자는 “착좌식에서는 교구 신부님들의 순명 서약식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당 안에 사제단을 먼저 배정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사제 순명서약이 반드시 직접적인 대면 상황에서만 이뤄져야 하는지 의문이었지만, 전례 상의 이유와 중요성이 있기에 말을 줄였다. 2시간 전부터 야외에서 기도를 하는 신자가 떠올랐다.
‘주교님께서 기자님들 점심 드시라고 준비한 것이다’
12시가 조금 지날 무렵, 홍보실 관계자가 봉투를 건넸다. 관계자는 ‘주교님께서 기자님들 점심 드시라고 준비한 것이다. 조금 밖에 준비를 못 했다. 점심을 먹고 오시라’고 말했다. 작은 금액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정 주교가 기자를 대하는 자상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지만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금액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오해가 될까 봐 확인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봉투를 받은 다른 기자들에게 미안했다.
유정복 인천시장, “지역 사랑에 헌신하고자 하는 정 주교의 뜻에 함께 하겠다”
계속 대기하던 중 행사 시작 1시간여 전에 보도증이 나와 겨우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당 좌석에는 인천교구 사제단이란 팻말이 놓여있었다. 성당 외부에는 신자들이 더욱 많아졌지만, 빈자리가 많았다. 대부분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교구가 마련한 난로 곁에 서서 손을 녹이며 한파를 버티고 있었다.
정 주교는 이날 착좌식에서도 “하느님께서 과분한 직무를 주셨지만, 주님과 함께라면 두려움이 없다. 50만 인천교구 신자들과 함께 지역사회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힘차게 펼쳐나갈 수 있도록 헌신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착좌식에 참석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정신철 주교님은 교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선종하신 최기산 주교님이 숙제로 남겨놓은 것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 믿는다”며 축사를 했다.
올해 1월 교구 사제서품식 때 묵주기도를 중단시켜 논란이 된 유정복 인천시장의 인사말도 어김없이 진행됐다. 유 시장은 자신이 정 주교와 같은 송림동 출신이며, 지역 사랑에 헌신하고자 하는 정 주교의 뜻에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착좌식에 참석한 지자체 고위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의 내빈소개도 이어졌다. 착좌식이라는 교회의 주요 일정을 위해 자신들의 업무와 휴식을 뒤로하고 한걸음에 달려왔을 고위공무원들과 정치인에게 교구는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교구의 남겨진 숙제, 훌륭히 소통하길
수평적 나눔을 통한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수차례 강조한 정 주교가 착좌식을 통해 정식으로 교구장에 임명됨에 따라, 인천교구의 숙제라고 불리는 성모병원 사태를 어떤 자세로 해결해 나갈지 기대가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노동주일을 지내는 교구가 ‘성직자는 노사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라는 신부의 주장을 묵인하는 상황에서, 그 교구의 선장은 ‘소통’과 관련해 누구보다도 큰 포부를 밝혔다.
‘노동자 탄압교구’, ‘상업화의 늪에 빠진 교구’, ‘신자 몰래 성당 땅을 파는 교구’ 등 현재 인천교구가 지닌 안타까운 꼬리표가 있다. 정 주교가 그의 약속대로 소통하려는 자세를 지닌다면 향후 이런 꼬리표는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입김을 뿜으며 밖에서 떨고 있을 신자들을 위해 교구는 천막과 실외 난로를 준비했다. 하지만 성전 문이 굳게 닫힌 상황에서는 신자들의 입김과 동동거리는 발을 전혀 볼 수 없다. 그 입김을 보지 못하면 정치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태평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정 주교의 자상한 소통이 추위에 떨며 교회를 바라보는 이에게까지 전해지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