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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개발촉진법
  • 장영식
  • 등록 2015-05-20 10:11:10
  • 수정 2015-07-17 15: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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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과 청도로 대변되는 송전탑 건설 갈등은 유신 말기에 제정되었던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전원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한다는 미명 아래 개악되어온 전원개발촉진법은 원주민들의 한과 눈물이 녹아 있는 악법으로 하루빨리 폐기되어야 한다. ⓒ장영식



전원개발촉진법(電源開發促進法)은 유신정권 말기인 1978년 12월 5일에 법률 제3131호로 제정되었고, 그 후 2014년 1월 14일까지 숱한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였다. 전원개발촉진법의 목적은 “전원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또한 이 법에 의하면 “전원개발사업은 「전기사업법」 제7조에 따라 허가를 받은 발전사업자ㆍ송전사업자 및 「방사성폐기물 관리법」 제10조에 따른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자가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수립하여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전원개발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도로법, 하천법, 수도법, 농지법 등 19개 법령에서 다투는 인, 허가 사항을 모두 거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사업자들은 산자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동시에 입지 선정 등의 사업계획 수립부터 추진 과정, 보상 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와 투명성 그리고 객관적 검증절차 없이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사업을 강행할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하면 사업자의 사업을 위해서는 개인의 사유 토지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고, 일시 사용도 가능하며, 나무나 돌 등 장애물도 제거할 수 있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사업구역 내에 포함되는 토지 소유주는 토지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사유재산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반하는 악법이다.


한전이 밀양과 청도에서 극심한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발독재시대의 유물인 전원개발촉진법이라는 악법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악법의 이면에는 수많은 원주민들의 눈물과 한이 녹아 있다.


평생을 일군 재산권과 생명권을 강탈당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당했다. 정부와 한전은 핵발전소로부터 생산된 대규모 전력을 도시로 송전하기 위해 수많은 송전탑을 산과 들에 건설했다.


송전탑으로 대변되는 또 하나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인간과 자연을 물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인간 중심의 경제가 아니라 재벌 중심의 경제로 왜곡시켰다. 끝없는 성장과 발전 중심의 경제 정책과 에너지 정책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은 자연과 인간을 성장과 발전의 도구로 변질시켰다.


그 결과 자연은 파괴됐고, 인간은 물화됐다. 우리는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당한 밀양과 청도 할매와 할배들의 가슴 저며 오는 슬픔과 절망 그리고 비통함에 함께 하며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임을 고백해야 한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2쪽 참조).


지금도 밀양과 청도는 전원개발촉진법에 의한 업무방해와 손해배상 등으로 법정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밀양과 청도 할매와 할배 그리고 활동가들은 악법에 의한 부당한 사법처리에 불복종한다는 뜻으로 벌금형에 저항하며 노역형을 선택하고 있다.


부산의 어느 활동가는 노역형을 선택하는 성명서에서 "누가 찾아와도 손주들에게 하듯 따뜻한 밥과 음식을 내어주신 밀양 할머니들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웠다”면서 "어르신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의지로서 노역형을 선언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밀양과 청도는 지금도 변함없이 자본과 효율이라는 물신을 거부하며, 자연과 생명을 존중하는 생태적 영성으로 충만하다. 남미의 가난한 나라인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오랜 제국주의와 군사독재로 파괴되고 짓눌려온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녹색국가로의 전환을 위해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자연의 권리’를 명시한 헌법을 세계 최초로 채택했다.


에콰도르는 지구온난화 방지와 토착민의 삶터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이 발견된 유전을 함부로 채굴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였다. 이 정책들을 관류하는 ‘공존공생의 사상’은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결핍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긴급히 필요한 사상이다.


남미의 작고 가난한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이 공존과 공생의 사상을 국가 운영의 원리로 채택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진정한 선진국은 남미 국가들임이 분명하다(김종철, ‘세월호 1년, 자본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녹색평론>142권, 2-11쪽 참조).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성장과 발전의 도구로 물화시키는 한국의 핵발전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성찰하며, 비민주적·반인간적 악법인 전원개발촉진법은 지금 당장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덧붙이는 글

장영식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전국 밀양사진전 외 다수의 사진전을 개최했고 사진집 «밀양아리랑»이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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