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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의 어머니들이 안산 세월호 어머니들에게
  • 전순란
  • 등록 2015-05-19 11:41:22
  • 수정 2015-05-19 11: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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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8일 월요일, 비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그 비보다 더 슬피 우는 사람들이 오늘 광주 (구)도청 앞에 모였다. 억울하고 또 억울해서 눈도 못 감는 이들의 눈을 누가 감겨줄 것인가? 떠나간 동지, 떠나간 님을 위한 노래라도 목 터지게 불러보겠다는데 합창은 돼도 민중의 노래는 안 된다는 기득권정권의 벽 앞에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하나도 바뀌지 않은 세상임을 체감한다.


광주민주항쟁 35주년을 맞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진도 팽목항과 광주, 청주, 안동, 수원에서 “좌초된 민주주의가 부르짖는다”는 성명서를 내고서 열흘간의 단식기도에 들어갔다. 그분들이 묻는다.





“독립군들은 어떤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으며, 시민군들은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에 맞서 피를 흘렸던가?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랑해야 할 그 나라,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켰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그 민주주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사제단은 “대한민국은 35년 전의 봄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와 자본의 동맹 아래에서 전답을 빼앗겨도, 해고와 차별을 당해도 그저 묵묵히 인내해야 하는 오늘의 형편이 더 위험하고 불행하다”면서, 광주민중항쟁과 세월호참사가 다르지 않다면서, 35년 전 광주가 보여 준 ‘공공성의 자각과 배려’, ‘공동체적 헌신’, ‘저항 정신’, ‘부활의 씨앗을 마련하는 밀알 정신’을 다시 되살려, 세월호참사의 진실 규명과 민주주의 회복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저 신부님들은 정말 끝까지 약자들 곁에 머무는 분들임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열흘 만에 서울에서 내려오니 밭두둑의 잡초를 손으로 뽑고 주변의 풀들은 예초기로 잘랐는데도 전보다 더 무성하게 자라 올랐고 신선초와 참나물은 한 길이 넘는다. 국수녀님이 효소를 담가 살림에 보태시도록 보스코가 우비를 입고 내려가 신선초, 참나물과 케일을 베어 단으로 묶거나 감상자에 담았다.



우리 차 트렁크와 뒷좌석 앞좌석이 가득 차 보스코가 앉을 틈이 없어 나 혼자서 장성 진원에 있는 수녀원으로 달렸다. 비는 쏟아지고 덤프트럭들이 앞뒤에서 40킬로로 가는 88고속도로! 중간에 네비가 고장나자 내 머리의 기억력도 고장나서 북광주 IC를 놓치고 장성 IC까지 가고 말았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수녀님들은 점심시간까지 늦추고 기다리셨고, 정성껏 마련하신 점심을 함께 하니 가족의 정이 솟는다. 가난한 살림에 원장수녀님의 강의료가 전부일 그곳 수녀님들의 청빈. 오늘 광주에서 5.18 연극을 주도하는 분도 불교신자인데 연극의 모든 수입을 이 수녀님들의 수녀원 건축기금으로 내놓으신다는 소식도 들었다.


나처럼 계산 못하는 여자가 10년 단위로 몫돈을 뜯기고서도 굶어죽지 않은 신비처럼, 생산수단이 전혀 없는 이 수녀님들에게도 엉뚱하고 관대한 손길들이 있음을 보면 살아가는 모든 게 섭리요 은총이다.


돌아오는 길에 발바닥 치료차 함양읍에 들렀다. 동문사거리에서는 엄마들이 걸어놓은 현수막(펼침막) “무상급식은 우리들의 권리다”라는 구호가 걸려 있다.


빼앗겨보고 그걸 되찾으려는 싸움이 이어질 때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한나라당의 철옹성 경상도 사람들도 조금씩 깨우쳐가는 듯하다. 오월 광주의 어머니들이 세월호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아프지 말고 분열되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눈물겹다.


5.18을 맞는 오월의 어머니들, 세월호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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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615tv.net/?p=625&


부활절이 끝나가고 성령강림이 다가오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분이 사람이 되어 오신 까닭도, 십자가의 저 처참한 죽음도,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엮어진 인생고에 하느님이 직접 ‘동병상린(同病常鱗)’을 체험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고동락(同苦同樂)을 모르면 진짜 구세주가 못되는 까닭이리라.


민주씨가 힘겹게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미루씨가 전해주었다. 장애인들을 위하여 헌신하면서 혼자 사는 몸으로 딸을 낳고, 두 아이를 입양하고, 넷째를 낳은 이 당찬 여인과 그 자녀들을 위해서 저녁기도를 올렸다. 아기의 생일이 5.18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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