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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예수가 교회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다”
  • 최진
  • 등록 2016-11-16 11:00:42
  • 수정 2016-11-21 17: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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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가톨릭네트워크준비위원회 포럼, “한국가톨릭교회 어디로 갈 것인가” 내용을 5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 편집자 주



“의로운 청년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전 세계에 폭로한 사건을 묵상하며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현장들을 순례했다. 그때 박근혜가 사과문을 발표했다는 내용이 문자로 왔다. 국내에 돌아와 이 내용으로 인터뷰하는데, ‘교회는 어떤가. 교회도 반성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몹시 부끄러웠다. 그 마지막 질문이 아직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원로들에게 한국 가톨릭교회의 방향성을 묻는 포럼이 11일 오후 4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렸다. 함세웅 신부는 ‘한국 가톨릭교회, 어디로 갈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 날 포럼 기조강연에서 교회의 자기 성찰과 권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조직과 권력이 우선할 때 그 공동체는 부패한다”


▲ ⓒ 최진


함세웅 신부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짓밟은 박근혜 정권과 관련해 교회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점이 있음을 짚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서는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교회 안으로 돌아서면 교회 권력자인 주교부터 찾는 한국 교회의 습성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함 신부는 “박근혜는 범죄 의식이 없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삐뚤어지고 거짓된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라며 “그 사람은 성신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서강대 예수회 신부들에게 교육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도 책임이 있고, 교회 안에도 박근혜, 최순실 사건 같은 것이 내재해있다. 우리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의 수준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 꾸짖은 사람은 종교인”이며 예수가 일차적으로 종교인들의 회개를 촉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인들은 나라가 빼앗긴 상황에서도 사회에서 상류층으로 머물면서 지배 계급에 속해있었다. 


특히 사두가이파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로서, 자본주의 성향이 짙은 종교인들이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을 꾸짖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함 신부는 “오랜 시간 사제로 살면서 정치인도 만나고 교구 책임자도 만났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교회든 정치든 권력이 그 자체로 악이라는 것이다. 공동체를 살다 보면 규칙과 조직이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조직과 권력이 우선할 때 그 공동체는 부패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력은 그 자체로 악과 같아서 권력이 약할수록 그 공동체는 정화된다”라며 “하지만 수녀님들은 사제들을 무섭게 비판하면서도 행사가 생기면 교회 권력인 주교님부터 찾는다. 다윗이 졸개가 아닌 골리앗을 쳤듯이, 사제보다는 교구장을 비판해야 교회가 변한다고 말해도 한국 교회의 모든 것이 주교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권력구조는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교회가 태어난 곳은 골고타 언덕”


함 신부는 권력 지향적인 한국 교회가 예수를 통해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수가 교회라는 조직과 권력 구조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뜻에 따라 살라고 가르쳤음을 상기시켰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하나의 이정표일 뿐, 그 스스로가 하느님 나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고 짚었다. 


그는 “예수님이 타살된 것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다. 하지만 매일 십자가를 보며 마비됐다. 예수님은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벌거벗은 아기로 탄생했고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벌거벗은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교회가 태어난 곳이 골고타 언덕이다. 바로 그 자리가 그리스도교의 영성과 기도, 전례의 근원이란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이 ‘타살당한 청년 예수’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교회가 이를 통해 끝없이 내적 쇄신과 권력으로부터의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제 가문 출신이 아닌 예수가 혈연에 의한 사제직 전통을 넘어섰다는 사실을 통해 교회가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 ⓒ 최진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체 중심의 교회관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체성사는 누구나 주님을 모시고 하느님 안에서 형제가 되는 평등의 잔치다”라며 “성체 중심의 교회관에서는 사제가 봉헌하는 미사와 주교가 봉헌하는 미사가 같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직거래, 그분과 내가 일치를 이루는 신비다”고 덧붙였다. 


“지혜로운 구도자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 되길”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인 함 신부는 사제단에 대해서도 교회 쇄신에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정의를 말하기 전에 스스로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처럼 사제들이 교회 내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의의 잣대를 드리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사제들이 정의구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지만, 본당에서는 오히려 다른 형태의 독재자로 지탄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반성하게 된다”라며 “교회 쇄신을 말하는 신자들이 사제들을 감동하게 해 사제들이 교회 쇄신에도 나설 수 있도록 구도자 역할을 해 달라”고 말했다.


또한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교회 투사인 분들이 많은데, 투사이기 이전에 지혜로운 구도자로 나 같은 사제들이나 주교, 교구 행정가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교회 안에 비리가 있을 때 정의롭게, 때론 목숨을 걸고 추적하고 싸워 달라. 하지만 싸우면서도 항상 하느님을 기억하며 사랑으로 싸워야 한다. 감동을 주면서 싸우는 동지들, 의사들, 투사들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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