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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영화로 보는 세상 : 누가 늙음을 동행할까?
  • 이정배
  • 등록 2016-08-25 07: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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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 보기가 쉽지 않다. 늘 영화를 만드는 이들은 젊거나 적어도 젊은 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객들 역시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노인을 주제로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대부분 젊은이의 시각으로 접근하곤 한다. 노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고리타분하거나 신파조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애니메이션은 주로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는 편견 역시 강하다. 동물들이 등장하고 과장된 표현과 색상을 사용하여 어린이의 눈길을 끄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인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왠지 생경하고 돈이 되지 않는 비상업적 예술영화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우리에게도 노인을 위한 영화들이 등장할 것이다.


영화 ≪노인들, Arrugas, Wrinkles≫(2011)은 스페인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은 만화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소재의 만화가 흥행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의 농담이 여기저기 배어있지만 오히려 슬픈 마음이 든다. 주인공의 시각으로 자녀들과 손주들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마음이 짠하다.


주인공 ‘에밀리오’는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요양소의 대부분의 노인들처럼 말이다. 같은 방을 쓰는 ‘미겔’은 아직 건강하다. 두 사람은 여러 가지 일들로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생을 동행한다는 면에서 끈끈함을 유지하며 지낸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위층의 중증 알츠하이머 병동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같이 음식을 나누던 이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사실 위층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곳은 자유가 없다. 병이 더욱 심해지면 감금되다시피 지내야 한다. 아직 아래층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은 감사하며 살아간다. 가끔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만 노인들은 늘 환상 속을 걷고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 젊은 날의 행복했던 시간 속을 날마다 거닌다.


‘에밀리오’는 병이 심각해져서 위층으로 가게 된다. ‘에밀리오’를 보내고 혼자 남은 ‘미겔’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따라 위층으로 간다. 정상적인 사람도 같이 심각해져간다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위해 자진하여 위층으로 거처를 옮긴다. 정상인으로 혼자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늙음의 두려움은 죽음이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두렵고, 혼자 남겨진다는 것이 두렵다. 병 들거나 아픈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버림받았다는 마음이 두렵고,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두렵다. 성큼성큼 그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젠 나를 뜨겁게 해줄 애인이 아니라, 늙음을 동행해줄 친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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