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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아내가 아프다면 혼이 나가버리는 남편들
  • 전순란
  • 등록 2016-08-12 11: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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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0일 수요일, 맑음


이 무더위에도 해가 지면 산들바람이라도 한 자락 흐르곤 했는데 어젯밤에는 나뭇잎 풀잎 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골골에 안개가 일어 습기마저 피부에 쩍쩍 붙어와 열대야(熱帶夜)도 정말 견디기 어려운 열대야(熱大夜)였다. 한밤 온도 28도!


오늘은 아침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에어컨을 ‘제습’으로 틀어놓고 선풍기를 돌리면서 보스코 서재에 나도 콕 들어앉았다. 그래도 청소는 했다. 집안이 더러워 보이면 더 더운 것 같은 기분이니까. 무슨 일로 허리를 다쳤는지 허리도 아프죠, 손가락의 류머티즘도 날 괴롭히죠, 점심을 먹고 읍내 명인당으로 나갔다.



허리라면 우리 막내동서가 베테랑! 나보다 등뼈가 두 매듭 쯤 더 있을 것처럼 키가 커서 병원에서 디스크 수술도 하고 온갖 운동과 치료를 다 받아왔는데 낫지를 않다가 작년에 만난 카이로프락틱 선생을 만나 치료를 받으면서 “드디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기분”이란다. 


그렇게 평생 허리를 앓으면서도 남편 앞에서는 아프단 소리를 못한단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서방님에게는 그니가 아프다면 벌써 혼이 나가버리는 증상이 보여 그런 남편을 보고 있을 수 없어 안 아픈 척을 하면서 잘도 견딘다. 서방님에게는 아내이자 누이이자 특히 엄마다. 이것은 우리집에서도 마찬가지고 오늘 결혼기념일을 맞는 미루네도 마찬가지일 게다. 


동서는 오늘 내게 통나무를 허리 밑에 굴리는 치료법을 세세히 일러주면서 “그 동안 형님이 너무 건강해 주눅이 들었는데 동지를 만난 듯 반갑다.”는듯 격려 아닌 격려.


그제 도미니카 축일이었는데 그냥 지나쳐서 오늘은 소담정 도미니카1를 불러 점심을 함께 먹었다. 몇 안 되는 이웃이니 알뜰히 챙기고 거들면 시골생활이 한결 윤택해진다. 누구에겐가 호의를 베풀면 내가 더 행복해지고, 남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진정한 겸손이고...


보스코 동창이자 대자인 종수씨가 구례까지 와서 열흘이나 지냈는데 내 일기를 읽는 참이어서 주부인 내가 너무 바쁜 것 같아 연락 없이 지내다 내일 그냥 서울 올라간다는 기별을 하였다. 상대방에 배려가 워낙 큰 벗이어서 동창들에게 무슨 길흉 행사가 있으면 반드시 찾아가 도리를 다하는 벗이다. 그 아내는 한여름 매운탕집 친구의 바쁜 장사에 일손을 돕는 일도 겸해서 휴가를 보냈나보다.


명인당 한의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많다. 나도 주사침, 마사지에 단돈 1500원! 그러니 할일없는 할매들 냉방 잘 된 병원에 누워 피서하긴 딱이다. 내 손가락에 류머티즘이 진행되고 있으니 힘든 일 삼가라고, 허리도 무리한 일 하지 말라는 주문인데 실행하긴 참 힘든 처방이다.



읍에 나온 김에 정옥씨와 살레시아씨를 만났다. 그니가 많이 힘들어해서 마음착한 살레시아가 이리저리 다독이는 처지다(우리 둘에게 눈꽃빙수도 사주고). 정옥씨도 자기 하나 마음 달리 먹으니까 거기 낙원이 있더라고, 또 그렇게 풀어나가니까 그렇게 밉던 식구들이 예뻐보이고 자기 자신이 기특해 보이더라나... 살레시아는 내 맘고생도 일기에 읽고서 "언닌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아 은근히 샘나던데 언니도 저런 고생하나보다 하니 은근히 다행이다."하면서 나더러 그런 일은 '개무시'를 하라고 조언해 준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도미니카1이 꽃모종을 얻어왔다고 두 판이나 선물해준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꽃들도 더위를 타는데... 그래도 그걸 심을 욕심에 늦저녁 길가의 해바라기를 뽑았다. 씨가 여문 머리는 가위로 땄고 대궁은 뽑아 뿌리를 털고... 머리는 더 말려서 모처럼 ‘해바라기유(油)’를 짜볼 생각이다. 저녁 8시 반이면 사람 얼굴도 안 보이는데 유노인이 밭에서 고추를 따 지게에 짊어지고 올라온다. 이장님도 그 어둑한 길에 윗논에서 내려온다. “낮엔 원체 더워 일을 몬해서...” “그러게요...”



미루가 이 한더위에 ‘쉼, 지리산 힐링캠프’ 제2차 캠프를 오늘 시작했다. 캠프 정원이 차서 기쁘긴 하지만 폭염이 하도 심한데 방방이 에어컨이 갖추어진 것도 아니어서 되레 참가자들에게 미안하단다. 한국 올림픽 선수들은 그 귀한 은메달 따고서도 ‘미안하다’, ‘죄송하다’,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이는 동방예의지국이긴 하지만, 몸과 맘의 힐링을 찾아 지리산으로, 성심원으로 찾아온 이들에게 우리 ‘귀요미’의 '귀여움'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가자들이 한참은 힐링 될 게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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