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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카투만두에서나 인도의 보팔에서나 한국의 안산에서나...
  • 전순란
  • 등록 2015-05-12 10: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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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1일 월요일, 흐리다 큰 비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보스코가 날 깨운다. “여보, 일어나. 빵기 데려다 줘야지.” 어제 밤 빵기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자정이 넘어 잠들었다. 부스스 일어나 거울을 보니 왼눈이 토끼눈이다. 백내장 수술을 하고 나서 간간이 왼눈의 실핏줄이 터지곤 한다. 


많이 피곤했던가보다. 그래도 머리를 빗고 옷을 갈아입고 빵기를 채근하여 집을 나선다. 가방은 어제 밤에 싸서 차 트렁크에 넣어 두었다. 자기 일을 철저히 관리하는 빵기다. 


수락산 공항터미널엔 새벽 5시에도 사람들로 붐빈다. 화려한 관광차림의 유쾌한 여행객들이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설이나 추석때 서울역대합실처럼 붐빈다는 전화가 빵기에게서 왔다. 참 잘사는 나라다.



빵기가 오늘 네팔에 가면 3주간 긴급구호활동을 한다. 그 다음 한국에서 1주일간 강의가 있고 연대기관과 회의를 하고 나면 집에 가는 것은 6주만이다. 며느리는 좀처럼 징징거리거나 동동 뛰는 여자가 아니어서 지금 종합시험을 치르는 중인데도 혼자서도 두 아이를 잘 건사하고 있다. 참 고맙다. 


지난 번 어느 모임에선가 빵기처럼 출장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나왔다. 어느 집에서는 두 살 짜리가 ‘엄마’ 다음에 배우는 단어가 ‘출장’이더란다. 우리 작은손주 시우도 큰 가방을 보면 현관으로 끌고나가면서 “출장갔다 올 게.”라면서 손을 흔든단다. 


그런 부모들 중 아빠를 가장 슬프게 한 마디는 “아빠, 그런데 왜 우리 집에 자꾸 와?”였다면서 일동이 씁쓸해 했단다. 본인은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죽어라 돌아다니는데 정작 집에는 ‘아빠’라는 사람의 자리가 존재도 하지 않더라는 얘기.



빵기가 쉬는 틈에 읽을 만한 책을 달라기에 요즘 내가 필이 꽂힌 줌파 라히리의 「행복한 집」을 주었더니 영어로 나온 책을 왜 번역한 것으로 읽느냐면서 우리나라 책을 달란다. “그럼 세월호 이야기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줄까?” 물으니 “엄마, 현장을 다니며 전 세계에서 목격하는 절망적인 얘기만으로도 가슴이 짓눌려 죽을 지경이에요.”란다. 


우리 큰아들이 전 세계를 돌면서 보고 만나는 대형 참사에 얼마나 힘겨운 심리적 갈등을 겪는지 느껴진다. 정신과의들이 일년에 한두 번 정신치료를 받듯이 긴급구호의 현장에 투입되는 활동가들도 정신적 외상을 치유받는 기회가 있어야겠구나 하며 마음이 아팠다.


보스코가 서울집 마당의 죽은 감나무를 베고나서 가지들을 전기톱으로 일일이 토막내 부대에 담아놓았다, 지리산집 벽난로에 쓴다고. 작은 가지들마저 손 톱으로 잘라서 모아두었다. 그 간에 나는 마당에서 잡초를 뽑으려니까 풀뿌리를 들어 올릴 적마다 먼지가 폭삭 오른다. 많이 가물었던가 보다. 


그러던 참에 빗방울이 지기 시작한다. “날 기다리셨수? 오늘 실컷 뿌려드릴까유?” 라면서... 손을 털고 집안에 들어와 비나리는 창밖을 본다. 정원의 생명들이 껑충껑충뛰며 즐거워하는 기분이다. 지리산엔 300밀리 비가 온다는데...


아침 8시 30분 이륙한 비행기가 카투만두에 도착했다는 빵기의 카톡을 받았다. 카투만두는 너무도 조용하단다. 적이 없는 전쟁을 치렀으니 당한 사람만 불쌍하지. 누구에게 항의의 목소리도, 보복의 총칼을 들이밀 수도 없으니 평온할 수밖에...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에도 아무런 보복도 못하고 보상도 못 받는 사람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국민들 아니던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네팔의 지진과 어린이        (퍼온 사진)



30년전 인도에서 저 ‘보팔 참사’가 일어났을 때. 미국 기업 유니온 카바이트 공장에서 독가스가 새어나와 주변의 주민 3500명이 즉사하고 33000명이 후유증으로 곧이어 죽고 50만명이 결핵과 실명과 피부암으로 서서히 죽어갔는데... 


미국인들은 책임 하나 안 지고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고 그 독가스 시설을 그대로 방치한 채 철수하는 것으로 끝냈다니... 인도 정부는 26년만에 공장주 두 사람에게 징역 2년의 과실치사를 선고하는데 그쳤고, 피해자들이 소송하면 300억불을 받을 사건을 정부가 가로막고서 5억달라를 대신 받아 사건을 마무리짓고 사망자 1인당 200만원씩 지급하고 끝냈다니... 


그럼 저게 남의 나라 얘긴가? 일제 36년의 패악을 박정희 군사정권이 수억달라 챙긴 '한일협정'이라는 것으로 끝내버렸고, 그 딸은 50년 뒤 세월호 사건을 일으키고서도 진상규명은커녕 돈 몇 푼으로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가 어쩌면 저리도 똑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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