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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외곬로
  • 전순란
  • 등록 2016-08-05 10:17:13
  • 수정 2016-08-05 10: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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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4일 목요일 맑음


보스코가 이리 와서 이것 좀 읽어 보란다. ‘따뜻한하루’ 어제치 꼭지글이다.


캐나다 어느 마을에 큰 홍수가 났다. 신고를 받은 소방관들이 서둘러 출동을 했고, 수많은 사람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도록 도왔다. 고령인 데다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는 할머니가 있어 소방관이 그 할머니를 직접 안고 피해 현장을 벗어났다. 지칠 대로 지쳐 힘들어하던 소방관의 품에서 할머니가 한 마디. "이렇게 멋진 남자의 품에 안긴 건 결혼식 이후 처음인 것 같아. 정말 너무도 기쁘네!" 할머니의 고백에 힘이 났던 소방관도 "여전히 아름다운 할머니를 품에 안을 수 있어 저도 영광입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로 행복할 수 있음은 커다란 축복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격려와 칭찬, 고마움과 아낌이 삶의 윤활유다. 만나면 남에 대한 험담으로 운을 떼는 사람들은 기를 빼앗아가며 나를 힘들게 한다. 


새벽에는 매미소리에 잠을 깨고 밤이면 풀벌레 소리에 잠이 든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이나 사람들의 소리가 아니어서 현실감은 떨어지지만 평화롭다. 어제는 2층 청소를 했는데 오늘은 아래층을 정리했다. 땀을 뻘뻘 흘리다보니 목이 말라, 엄마가 실버 식당에서 가져다둔, 날짜 지난("→2016.4.7.") 야쿠르트를 세 개나 마셨다.


엄마 냉장고에 많이 있어 가져왔는데 사연이 서글펐다. 호천이도 이모도 엄마더러 식당에서 한개씩만 가져오라고 그렇게 타일러도, 엄마는 꼭 두세 개씩 가져와 둘한테서 번갈아 야단을 맞으신다. 엇그제도 이모가 보니까 세 개를 들고왔기에 먼저 복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어 엄마를 심하게 야단을 쳤더니 엄마도 복도를 둘러보고선 ‘훔쳐온’ 야쿠르트들을 얼른 당신 냉장고에 넣으시더란다.



엄마한테 제일 귀한 사람은 둘째 아들 호천이다. 그런데 양로원에서 아들 줄 꺼라곤 그것밖에 없기에, 야쿠르트를 모아 놓았다가 아들에게 주곤 하셨다. 호천이가 절대 안 가져간다고, 절대 가져오지 말라고 심하게 나무랐단다. 서너 달 지난 걸 드실까봐 나더러 치우라 전화해서 내가 들고 나오니 엄마가 나에게 눈을 흘기셨다. 엄마에겐 오로지 작은 아들 뿐.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비슷하셨다. 외할머니에게는 큰아들네 큰 손주가 전부였다. 밥 때가 되면 이웃에서 놀러온 딸네집 손자들에게는 “빨리 너희 집 가라!” 하시곤 큰 손주만 밥상에 불러 앉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외곬로, 외곬로 모이나보다.


내일 미선네가 휴천재로 온다는데 “옻닭 해줄까? 피자 해줄까?” 물으니 “피자!” 밀가루가 떨어져 실상사 입구 ‘한생명매장’에 갔다. ‘우리밀 백밀’이 1Kg에 3000원! 두 개를 사 돌아오다가 마천농협 ‘하나로마트’에도 들렸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함양농협 하늘가에’라는 이름이 붙은 밀가루가 1Kg에 4600원! 수입밀이 1200원인데 네 배 가격! 농협에서 수매해서 유통시키는 우리밀 가루가 다른 매장보다 50퍼센트나 비싸다니!



그럼 수입밀에 대한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져 소비가 그만큼 줄 것이고 생산도 그만큼 위축될 것 같아, 봉지에 인쇄된 ‘함양농협 농산물가공공장’에 전화를 해 부당한 가격에 항의를 했다. “타 지역에서 1~2톤을 사다가 소량으로 제분하다 보니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대답. 그렇담 함양의 생산품도 아니고 가공품인데 차라리 타지역에서 가공한 ‘우리밀가루’를 싸게 사다 싸게 파는 게 합리적이겠다.


90년대 초에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시작하며 고생하던 동지들을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진다. 밀곡식의 질을 개량하려고 수원농업시험장에서 고생고생하시다 돌아가신 ‘밀애비’ 남중현 박사님, 정성헌 본부장, ‘한살림’의 박재일 선생님, 구례 박성호 회장님, 곡성 백남기 회장님, 성주 정한길 회장님, 우리 장상무.... 많은 얼굴이 밤하늘별처럼 또렷하다.


특히 ‘우리밀농산’ 정한길 회장 부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정회장네 고향 성주 땅에 성은으로 하사하신 사드를 마다하느라(“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인다!”는 예수님 말씀도 있어서) 밤낮으로 투쟁하고 있으며, 외지 ‘불순세력’을 초빙해야 할 때면 우리 부부도 와 달란다.


빵고신부는 작년처럼 밀라노교구의 관자테 본당에서 휴가 가신 본당신부님 대신 ‘알바 사목’을 시작했단다. 방학이어서 두 손주는 ‘축구학교’에 다닌다. 시우는 제법 폼도 잰다. 방학 중에도, 평소보다 더 심하게, 학원에서 학원으로 뺑뺑이 돌려야 마음 편한 한국의 엄마들이야 말로 아이들이 놀아야 더 잘 큰다는 걸 배우러 학원엘 가야 한다.학원에서 그런걸 가르친다면...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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