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기득권자들의 충견(忠犬)으로 자리매김한 「정의의 적들」
  • 전순란
  • 등록 2016-07-27 10:26:06

기사수정


2016년 7월 25일 월요일, 맑음


누가 시키면 저렇게 할까?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 제습을 하니 방안 온도는 28도. 문 딱 닫고 하루 세끼 밥 먹고 두 번 간식 먹으려 마누라 찾는 게 전부. 방안퉁수도 저런 방안퉁수가 없다. 옛날 빵기가 하도 밖에 안 나가기에 “책을 놓고 나가서 놀다 오라”고 현관문을 열고 등을 떠밀어 내보냈더니 2층 오르는 바깥 계단에 앉아 개미를 보며 혼자 놀고 있었다. 걔가 누구 아들인지 지금 보스코를 보면 알만 하다.


저녁 먹으며 하는 말. “나 일이 급해, 이달 말까지 보내야 할 논문 쓰고 있으니 산보 가자는 말 하지 마!” 빵기는 이제 생활의 절반은 길에서, 비행기에서 사니 완전히 인생이 바뀌었지만, 보스코는 어떻게 변함없이 저토록 여일할까! 보다 못해 저녁을 먹으며 “여보 잔디 깎고 마른 풀 갈퀴로 모아 놓았는데 그것 좀 갖다 버려요” “그 정도야 해주지 뭐” “해주는 게 아니고, ‘하지’ 라고 해야죠” “아니, 해 주는 거야!” “당신 맘대로 하시죠” 진이 아빠가 예초기 돌려 마당 잔디 깎아 놓았고 풀이 말라 내가 저녁나절에 갈퀴질로 모아 놓은 것 치운다고 한 5분 정도 움직이더니 다시 제자리, 책상 앞!



이장님의 이열치열 피서법


덥다고 미루면 9월까지 모든 게 정지한다. 아침나절 베개들을 속까지 모두 벗겨 삶아 빨아서 좋은 햇볕에 바짝 말리면서 솜도 바람과 태양을 만나 부풀어 오르게 했다. 더운데 다리미질은 혹서에 대한 도전! 일종의 ‘극한도전’! 그래도 말끔히 다려진 빨래를 보면 땀은 나도 속은 시원하다.



나는 덥다고 에어컨에 의존하는 건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것 같아 ‘긴방’에 대나무 돗자리를 깔고 누워 표창원씨의 「정의의 적들」을 읽었다. 내용이 사람을 너무 열 받게 하니 여름보다는 겨울에 읽힐 도서목록에 넣어야겠다. 


정말 정의를 지키고 실현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조계 인사들의 부정의가 극에 달해 있으니 이 나라가 어디로 갈까? 기득권자들의 충견(忠犬)으로 자리매김하고서 짖으라면 짖고, 물라면 물고, 기득권자들이 무대기로 싸놓은 똥은 깨끗이 핥아먹고 꼬리치는 놈들 땜에 집안이 온통 구린낸데 어디도 똥이 안 보이는 대한민국! 


내일 에어컨을 고치러 오겠다던 수리 기사가 지나는 길이라며 오늘 들르겠단다. 그는 와서 내 설명을 듣고서 우리가 벽돌로 두드려가며 돌리던 팬을 열었다. 말라죽은 딱정벌레들이 회로 판에 가득 매달려 있었다. 회로의 순환을 방해해서 잘 안돌아 갔고 우리가 벽돌로 두드렸을 때 몇 마리 떨어져 나가면서 돌기도 했을 거란다. 산 속에서는 에어컨도 딱정벌레의 겨우살이에 같이 써야 한다. 사람은 여름에 더운 공기 뽑아내는데 쓰고 딱정벌레들은 겨울에 추위를 피해 숨어드는데 쓰니 용도가 서로 상충해서 문제가 생긴다.


하늘이 갑자기 험한 얼굴을 해서 빨래를 걷었다. 소나기라도 좀 내리면 먼지가 펄펄 날리는 밭작물, 해갈은 못 돼도 목이라도 축이려니 하면서 오늘 물 주는 수고는 덜었다 싶었는데, 내 속을 알아챘는지 구름이 산 넘어로 싸악~ 물러가 버린다. “치사하게!”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꽃밭에 물을 주고 텃밭으로 내려가 토마토, 바질, 상추, 루콜라, 샐러리 등에 물을 주고 풀을 뽑았다. 깔따구한테 물릴까봐 완전무장을 하고 두어 시간 움직였더니 옷이 쥐어짤만큼 몽땅 젖었다. 이래서 우리 동네는 사우나가 없다. 더워도 해질녘 두어 시간 땀 흘려 일하고 나서 씻고 나면 온몸이 개운하다.


“저녁 기도나 하고 (요가)운동이라도 합시다” 더는 그에게 기대할 일이 없어 이젠 나도 적응하는 단계... 일기장을 들고 그의 옆으로 간다. 더 이상 딴지걸기는 포기다. “여보, 이 농사꾼 겸 마누라 겸 하녀가 없으면 어떡할려고 산으로 내려왔어요?” “농사꾼 없으면 농사 안 짓고, 마누라 없으면 산으로 안 오고, 하녀 없으면 아예 안 살지” “???” 틀림없이 그가 좋아해서 지리산에 내려온 건데 무슨 말이지?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