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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풍금소리 들리는 공소
  • 전순란
  • 등록 2016-07-18 10: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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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7일 일요일, 맑음


오랜만에 이신부님 가족이 도착하여 공소신자들에게 아침식사를 마련한단다. 콩 반쪽이라도 나눠 먹는 그 가족 특유의 정겨운 모습이다. 우리라고 빈손으로 가서 얻어먹기로는 염치가 없어 나도 새벽에 일어나 고구마를 오븐에 구웠다. 작년 늦가을에 고구마 두 상자를 선물 받았는데 옻칠된 장롱에 넣어두었더니 싹이 조금 났을 뿐 너무 싱싱하다. 매해 먹다가 마지막엔 고구마를 썩혀서 버려야 했는데 옻칠장롱이 옷을 보관하는 것뿐 아니라 구근식품 보관에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 잘 활용해야겠다.



공소를 들어서는데 노래방 음향기기 소리가 들린다. 어제 빌려온 키보드를 두고 언니가 손을 익히는 중이다. 이신부님과 수녀님까지 머리를 맞대고 이 단추 저 단추를 눌러보는데 “뽕짝~ 뽕짝~” “차차차~ 차차차~”를 반복한다. 겨우 기계를 달래서 미사를 시작했다. 독일인 헤드빅수녀님 때부터 쓰던 ‘아리아’표 풍금은 발판이 고장 났는데 고칠 길이 없다. 여름휴가도 보낼 겸 (숙식은 제공할 테니) 풍금 수리 재능 봉사할 분, 문정리에 하루 와 준다면, 옛날 초등학교 교실의 풍치가 생생한, ‘풍금이 울리는 공소’가 될 텐데...



미사에는 그간 안 보이던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신부님은 그동안 우리의 맘고생을 빗대어 역전의 용사들이 어려움 중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 모였다고 대견해하셨다. 드디어 가슴 뛰는, “쨍하고 해 뜰 날”을 보았다며, 당신을 환영하는 우리 모습에서 “여기에 하느님이 계시는 걸 알겠다”고도 하셨다. 신부님의 내공이 우리를 불러 모아 한 가족으로 만드는 셈이다.


미사에서 성찬(聖餐)을 하고 다들 식당에 모여 신부님 가족이 마련한 애찬(愛餐)을 했다. 그리고 보니 그 동안 공소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얘기해 본지 오래다. 역시 사람은 만나야 역사가 이루어진다.



점심 무렵에 형부에게 허리띠를 전해드리러 갔다가 밥상에 수저 하나 더 놓는 기분으로, 촌사람들답게, 점심도 그 집에서 얻어 먹었다. 식구란 밥을 함께 나눠먹는 입이니 어느 새 그집 가족이 되었다는 뜻이다. 책상에만 앉아 있는 보스코도 전화로 불러 함께 먹었다.


아침과 점심을 신부님 가족에게 얻어먹은 데다 오늘이 바로 초복이어서 나는 저녁에 피자를 해서 가져다 드렸다. 마르게리타, 그리고 루콜라와 파르미자노와 토마토를 토핑한 피자를 해다 드렸다.



늦은 시간에 도메니카1이 상주에서 돌아와 텃밭을 매고 있다. 혼자 사느라 식사라곤 새 모이만큼 조금만 먹는 사람이 뭔가 끊임없이 심고 가꾸지만 나오는 소출보다 지인들에게 보내는 택배비가 더 들 게다. 


윗동네 황여사도 남편이 산을 좋아해서 자주 내려와 자연 속에서 쉬어야 하는데 도착해서 자동차를 세우자마자 예초기를 메고 서울에 갈 때까지 일만 한단다. “이게 과연 쉬는 일인지? 힘들어 지칠 때는 이렇게 할 게 아니구나!” 했다가도 서울에 가면 홀린듯이 또 지리산을 향하게 된단다. 올여름 김교수님이 정년퇴임을 한다니 오가기가 더 수월하겠다. 


우리집 성나중씨, 열흘 전 깎은 풀들이 40cm는 자라 올랐는데 텃밭에 내려가 보지도 않는다. 자판기 두드리기에 바쁜 터라 말 꺼내기도 힘들어 그의 눈치만 본다. 우리집 텃밭 250평을 두고도 첫새벽과 저녁나절마다 이 고생을 하는데 김교수네는 7000평 산을 간수하려면 몇 십 배 더 힘들 게다. 역시 사람은 사물을 소유하는 게 아니고 내가 가졌노라는 사물에 소유당하여 쩔쩔매다 떠나는가 보다. 그러니 완전한 자유를 원한다면 무소유를 실천하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이 절실하다.



소위 ‘제헌절’이다. 헌법은 만들었는데 언제 지켜졌던가? 어느 단체가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인물들의 사전을 만드는 중이라니 기대가 된다. 


사드설치로 주민들 설득시키러 간다고 소문을 내고서 총리가 성주에 갔다. 애오라지 박근혜만 찍어주던 ‘경상도’ 주민들의 항의였는데도 무장공격이라도 당한 듯 공안정국이 만들어지고 있다. 80년대말 “정원식 총리가 경호원 없이 전철로 외대에 간다!”는 뉴스를 띄우고서 전철에서 섣부른 외대생들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자 기다린 듯 공안정국으로 전환한 수법이 생각난다. 그때의 교수회의 분위기는 스승들이 제자들을 교육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익이 좌익을 소탕하는 씁쓸한 자리였음을 외대교수였던 보스코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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