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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어느 별에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 전순란
  • 등록 2016-07-13 10: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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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1일 월요일, 흐림


오늘은 보스코 생일.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고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서도 축하를 받았지만 “하부이, 우리가 생일 축하 노래 불러드릴께요” 이어서 스카이프 화면으로 노래를 부르는 두 손주의 재롱을 보는 그의 표정이 한 폭 그림이다. 저리 좋을까? 유난히 정이 많은 사람이어서 외로움을 타면서도 어렸을 적 상처로 늘 자신의 마음을 접는 그가 안쓰럽다. 


아침기도에 보스코를 낳아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리고, 이렇게나 사랑할 기회를 준 그에게 감사하고, 그와 함께한 생과 함께할 시간을 두고 주님께 감사드렸다.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정옥씨가 점심에 생일축하로 식사를 내겠다며 읍내에서 만나 잔다. 우리 둘만 있는 게 마음에 걸렸나 보다. 종가집 음식을 한다는 집이어서 유기그릇에 담긴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정옥씨가 우리와, 특히 남자인 보스코에게도 잡다한 신변얘기를 스스럼없이 잘한다. 남녀가 유별하여 남자들에게 치이며 주눅든 모습으로 여자가 사는 세상이 여기다. 시집살이 30년에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아온 그니가 21세기로 걸어나오는 중이다.


전화기에 아들을 ‘소울메이트’로 올려놓은 것을 보고 서둘러 바꾸라고, 남편과 아들 두 남자 가슴 아프게 하지 말라 일렀는데, 아들이 여친이 생기고 전화도 뜸해지고 멀어진다면서 이젠 남편에게 관심을 더 쏟기로 했다나. ‘남의 남자’ 될 남자를 ‘내 남자’라 생각했던 착각에서 깨어나면서 남편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동한다니 좋은 징조다.


읍내 나간 길에 ‘운림원(雲林院)’에 잠깐 들렸다. 이선생 건강도 염려되어 가보았더니 별일없이 지내는 듯해서 다행이다. 아들 부부가 와 있어 다음 달이면 영숙씨한테 둘째 손주가 태어날 참이어서 경사로운 나날이다. 유난히 금슬이 좋은 영숙씨네 부부는 최근 힘든 시간의 강을 손잡고 건너왔으니 나머지 시간도 깊은 신뢰로 견디어 낼 꺼다. 올 봄에 딴 밤꿀을 한 병 우리한테 선물했다. 


작은아들을 장가보낸 마리오가 엊그제 카타니아의 화려한 노을을 사진찍어 보냈다  


... 어느 별에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내 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

나무가 팔을 벋어 다른 나무를 껴안 듯

사람은 마음을 벋어 타인을 껴안는다

어느 가슴이 그립다는 말을 발명했을까

공중에도 푸른 하루가 살 듯이

내 시에는 사람의 이름이 살고 있다

붉은 옷 한 벌 해지면 떠나갈 꽃들처럼

그렇게는 내게 온 생을 떠나보낼 수 없다

귀빈이여 내게 온 생이여

네가 있어 삶은 과일처럼 익는다 (이기철,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후반부)


어제 밤늦게 휴천재 ‘긴방’에 들어서니 방바닥이 홍수다. 위층에 있는 물탱크 자동조절장치가 고장나 물이 넘쳐나와 바닥에 고였다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방바닥에 깔아놓은 화문석까지 젖어 물을 훔치며 속이 많이 상했다. 


오늘 아침 좁은 탱크실에 몸을 구겨넣고서, 탱크에 넘치는 물 받아내는 파이프에 고무호스를 연결하고(토치로 뜨겁게 달구어) 철사로 조이고 청테이프로 감아 아래 땅바닥으로 뺐다. 이젠 물이 넘쳐도 안심! 


위아래 층으로 분주하게 오르내리며 해낸 일을 남편에게 대견스럽게 얘기했더니 딱 한마디. "전(全)-가이버로군!” 문교수님 이 소식 들으면 물탱크 고쳐달라 주문하시겠지만 머지않아 캐나다로 떠나실 처지 같아 고객 한 사람 놓쳤다.


해가 없어 텃밭으로 내려가 퇴비와 흙을 섞어 북을 만들어 김장배추 심을 차비를 했다. 우리 둘에게 ‘깔따구’(각다귀)가 수도 없이 달려든다. 눈두덩이를 물려 내 ‘눈퉁이가 밤퉁이’ 됐다. 그 눈에 프로폴리스를 발랐더니 보스코가 날 보고 너구리 같다며 웃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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