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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받는 사람을 외면하면 안 돼
  • 김영
  • 등록 2015-05-10 12:17:39
  • 수정 2015-05-10 12: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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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이 지난 2015년 4월 30일(목)에 있었던 유가족 초청 간담회 내용을 글로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발제 1. 김영 교수 - <공감할 줄 아는 인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는데, 이 비극적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이 대학내에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4월 16일에 교수회 주최로 추모행사를 진행했어요. 많은 교수와 학생들이 참가해서 숙연한 분위기로 진행됐습니다.


어린 아이가 우물가로 가면, 누구나 그 광경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그쪽으로 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인(어진 마음)’이 인간에게 내장되어 있습니다. 가족을 잃은 고통을 겪는 유가족 분들과 같이 슬퍼하고 연대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투쟁할 때 그 옆에서 ‘폭식투쟁’ 하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차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으로서 ‘인’이 있는가 하고 묻게 됩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것은 탐욕스러운 자본과 부패한 권력이 빚은 ‘사고’입니다. 그렇지만 사고 이후 제대로 구조하지 않은 것은 ‘참사’이고 ‘무책임’이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해군과 해경이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는 오보만 나왔습니다. 그 순간에 정부와 대통령은 무엇을 했습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외면하는 대통령은 물러나야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 때 도망갔습니다. 유가족들이 엉터리 시행령 폐기해달라고, 세월호 진실 밝혀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외면했습니다. 4월 18일 시청에서 집회에 참여했는데, 집회 중간에 사회자가 “유가족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유가족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달려가자”고 말했고 집회가 중단됐습니다.


경찰은 유민아빠의 목을 조르며 연행했습니다. 유민아빠는 목숨 걸고 단식을 했고, 작년에 교황이 방문했을 때 껴안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이 자꾸 외면하는 것은 국가가 침몰한 것이고, 국가가 부재한 것입니다.


이석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도 광화문에서 농성중입니다. 시행령(안)에 의하면 기획조정실장을 해수부 관리로 두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고 합니다. 시행령을 폐기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송경동 시인의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시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라>

어디선가 지금도 문을 긁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외치는 소리 허우적이는 소리

오, 거대한 악마의 입이 사람들을 삼키는 소리

지금도 어느 창가에서

우릴 바라보고 있는 차가운 얼굴들

살려줘요. 엄마, 아빠

이 죽음의 선실에서 나가게 해줘요

1년이 지나도 올라오지 못하는

고통의 소리들, 진실의 소리들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앉아 있는가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침몰해 있다는 말도 이젠 거짓말 같다

세월호는 이미 국정원 어느 분실 깊숙이 결박당해 있고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함께

청와대 지하 벙커에 은닉되어 있는 것 아닌가

감사원의 감사 기록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검찰과

법원의 공판 기록을 다 뒤져 볼수록

오히려 더 흐릿해져 가는

도대체 세월호는 어디에 가라 앉아 있는 것일까

국민들과 유가족들에게

국회의 고유 입법 권한엔 접근하지 말라는

의원 나리들의 엄포 아래

800조원 넘는 사내유보금을 두고도

사람들이 돈 주머니를 열지 않으니

세월호를 빨리 잊으라는 재벌들의 압력 속에

시시 때때로 일어나는 교통사고

근원을 파헤치지 않는

언론사들의 적당한 기사들 아래

진단만 하고 뛰어 들지는 않는

지식인들의 안전한 서재 아래

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경찰의 노란 질서유지선 아래

우리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죽비가 되고

튼튼한 동앗줄로 엮여

이 사회의 불의와 기만을 내려치고

세월호의 진실을 우리 스스로 인양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운동의 더딤과 무능함 아래

그렇게 가라 앉아 있는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저 아홉 명의 실종자가 아니라

오늘도 끝간 데 없이 가라앉는 유가족들의 슬픔의 심해가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 전체가 아닌가

변한 것 하나 없이 어떤 미래도 희망도 없이

오늘도 우리 모두의 끊이지 않는 참사와 재난을 향해

눈먼 항로를 향해가고 있는

이 탈선의 국가 아닌가

그런 나와 우리와 이 사회를 인양하지 않고

어떤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비겁과 나태와 패배감을 인양해

새로운 역사의 갑판 위로 뛰어 오르지 않고

어떻게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까

도대체 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박근혜 선장과 선원들을 그냥 두고

어떻게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까

세월호를 인양하라

우리 모두의 정당한 분노를 인양하라

우리 모두의 사랑을 인양하라

우리 모두의 존엄을 인양하라

기울어가는 묻혀져 가는

이 시대의 진실을 인양하라

새로운 국가를

새로운 시대를

새로운 정의를 인양하라



발제 2. 단원고 오준영 군 어머니 임영애 씨 발언


작년 4월 16일. 배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을 아이를 데리러 팽목항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팽목항은 지옥 같았습니다. 사건 8일 만에 준영이가 많이 부패한 모습으로 올라왔습니다. 눈, 코, 입에서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이 무모하고 한심한, 못난 엄마는 시체장사, 종북, 세금 도둑, 폭도가 됐습니다. 진실만 밝힐 수 있다면 그런 무지막지한 이야기 들어도 괜찮습니다.


4월 16일 아침 7시 40분에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 밥은 먹고 갔냐”고 물었습니다. 빈속에 힘들게 가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습니다. 그것이 마음 아프고 걱정되는 부모의 마음이었습니다.


1년 동안 진실만을 밝혀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고, 꿈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어린 생명이, 그 귀한 생명이 왜 죽었는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요구할 때마다 언론은 ‘돈’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돈 더 받으려고 한다”고 거짓말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었다면, 내가 잘났다면 내 아이 죽지 않았을 거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죽어야 할, 구조 받지 못할 생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준영이 한명을 위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304명의 진실을 함께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는 이렇게 죽게 했지만, 다른 생명은 살려야 합니다. 남은 생명들은 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1년 동안 이렇게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간담회를 다니면서 참가해주시는 분들에게 많은 힘을 받습니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반쪽짜리 특별법도 국민과 가족이 간신히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은 진실을 안 밝히려는 사람들의 의지 표현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삭발을 했는데, “돈 더 받으려고 저런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직도 밤 10시가 되면 아이가 야자 끝나고 “엄마 배고파” 하면서 올 것 같아요. 나도 이런데, 아직 가족을 품에 안지 못한 9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이 죄책감 덜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발제 3. 단원고 오준영 군 아버지 오홍진 씨 발언


세월호 참사 전에 나를 포함한 희생자 가족들은 삶은 소시민과 같았습니다. 자기 가족 잘되기를 바라며 소박한 행복을 바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들은 단 한 가지, ‘자식의 억울함’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지난해 국민들의 서명과 여야 합의로 만들었던 특별법이 누더기이고 반쪽짜리이기는 했지만, 사건 당사자들과는 독립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은 해수부, 국민안전처(전 해경) 사람들이 특조위 고위 공직에 앉게 합니다. 이는 진상규명을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평생 자식만 보며 살았습니다. 자식은 항상 머리가 아니라 가슴 안에 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시행령이 통과되더라도 줄기차게 반대하면서 민간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해서라도 진실을 밝혀내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4월 16일과 18일 집회를 보면서 “국민이 국민이 아니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실을 밝혀 달라,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요구를 하려고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정부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가족들을 고립시키고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뿌렸습니다. “과연 이 정부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그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야한다고 모여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가족들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시민들의 한마디, 잡아주는 손 덕분에 힘을 냅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지와 동참 부탁드립니다.



발제 4. 영문학전공 15학번 임나리 학우 - <스무살의 세월호>


제가 처음 세월호 사건을 접한 것은 작년 2014년도 4월 16일 아침수업시간이었습니다. 수학선생님께서 지금 배가 침몰했다고 하는데 금방 구조 될 거니까 걱정 말고 중간고사 준비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그 날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사람들이 구출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앞에 있는 해경은 사람들을 구조하지 못하고 있고 또 자꾸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고 선장은 혼자 살겠다고 배에서 뛰쳐나오고,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를 늦게 알고 잘못 알고 있고..


“왜 사람들을 구하지 못 하는 걸까? 왜 자꾸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걸까? 만약 저 배에 높은 사람의 자식이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을까? 어른들은 왜 이렇게 비겁할까?” 라는 물음들로 머리가 가득 차있었습니다.


해경을 조사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온갖 비리들, 보상, 대학특례를 거론하면서 사람들이 세월호에 등을 돌리게 했던 정치인들과 언론은 언젠가는, 꼭 언젠가는 정의로운 사회가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진 저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급식실을 가면서도, 또 다시 교실로 올라가면서도, 쉬는 시간에도, 야자시간에도 계속 세월호 이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사고에 대한 수습과 책임은 진전이 없었고, 죽어라 찾아다니던 유병언 전 회장은 시신으로 발견되고..


이 모든 게 지치고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동안 세월호를 잊기로 했습니다. ‘입시기간 동안 세월호 생각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가서 다시 세월호에 관심을 갖자’ 라고 다짐했습니다. 제 살길 가기 위해서 세월호를 잊으려고 했고 잊고 싶었고 또 잊었습니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마지막 기회라는 여름방학이 지나고, 9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수능을 보고, 논술시험을 보고 그렇게 입시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입시가 끝났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문, 뉴스도 일절 보지 않고 친구 만나서 노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싫고 정말 숨만 쉬고 티비만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다시 세월호를 잊고 지냈습니다. 3월이 되고 대학에 입학하고, 흥청망청 놀면서 저는 다시 한 번 세월호를 잊었습니다.


그러다 4월이 되고 현관에 던져져있던 신문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유가족분들이 광화문에서 삭발을 하셨다는 기사였습니다. 그 기사를 읽고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내던 세월호가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1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된 게 없지? 왜 이분들이 삭발까지 하시지? 무엇이 이 분들을 삭발까지 하게 만들지? 라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금주령을 내렸습니다. 세월호를 잊고 나만 생각하고 나만 재밌게 살아온 게 희생자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시위를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위에 같이 참여할 친구들을 모아 봤지만 간다는 친구는 2명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위를 가는 동안 친구는 “세월호의 책임을 왜 정부에 돌리는지 모르겠다”는 물음을 던져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라는 걸 알지만 왜 아닌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1년 동안 세월호를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5년 4월 16일 이 날은 세월호 1주기가 되는 날이며 대학생 추모집회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인하대학교 과잠을 입고 청계광장에 도착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청계광장에 도착했을 때, 다른 대학교 학생들은 깃발을 들고 학교별로 모여 앉아있는데, 저희 인하대학교만 없었습니다.


원서 쓸 때 수준 떨어진다고 쓰지 않았던 대학들도 와있었습니다. ‘아 학교 수준은 입학 성적이 아니라 학생들이 얼마나 사회에 대해 깨어있는가’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하대학생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날 추모행사에 참여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살벌하고 잔인한지 깨달았습니다. 가진 게 없으면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지 물어볼 수 없는 세상이구나..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험한 세상 속에서 나를 위해 돈을 벌고 나를 지켜주시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날 시위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시행령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자연대분께 받은 종이에는 ‘시행령을 폐기하라’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그때서야 박근혜 대통령께서 시행령을 발표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알고 늦게 행동한 저는 제자신이 부끄러웠고 세월호 희생자분들께 정말 죄송했습니다.


추모행사가 끝나고 행진을 하는데 광화문을 3분 거리에 둔 곳에서 경찰 벽으로 막혔습니다. 벽 위에서 경찰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람들을 찍어대고 있었습니다. 종로경찰서장께서는 신나셨는지 3차 경고를 외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청계천을 돌고 돌아 종로4가에 도착했습니다. 막 뛰어가는데 진입금지 라고 쓰여 있던 펜스가 조각나서 차이는데 뭔가 영토를 점령한 장군처럼 신나서 저도 발로 까고 뛰어 다녔습니다. 그렇게 종로4가부터 행진하던 저희는 다시 종로1가, 광화문을 눈앞에 둔 지점에서 다시 경찰버스에 막혔습니다.


뒤를 돌아보는데 정말 많은 시민분들이 참여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렇게 세월호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고 계신지 참여하기 전까지 몰랐습니다. 그 때 저는 분향소를 가고자 오셨던 학교 선배님들을 만나 분향소를 가기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눈앞에 분향소를 두고 있음에도 저희는 인사동을 돌고 돌아 2시간 만에 분향소에 도착했습니다. 인사동 골목골목 모두 경찰차와 전경들로 막혀있었습니다. 시민들의 행진이 그렇게 두려운가? 경찰들은 왜 이렇게 많을까? 뭐가 두려운 걸까?


분향소를 떠나려고 하는데 “지금 유가족분들이 고립되고 연행되고 있다, 제발 가지 말고 같이 있어 달라”라는 목소리가 너무 절박해서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광화문을 눈앞에 두고 다시 경찰차와 전경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서 경기대학교 학생회장 언니가 사회를 보면서 시위를 이끌어나갔습니다.


시민들의 발언을 듣고 앉아있는데 정말 너무 많이 추웠습니다. 아무리 옷을 여며도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세월호 배 속에 있는 것처럼 몸이 시리고 추웠습니다. 내가 새벽에 이 정도로 추운데 세월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잠기는 배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4월 18일 이 날은 범국민 추모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가는 길마다 경찰들이 도로를 막고 차를 세웠습니다. 눈앞에 있는 광화문을, 경향신문을 지나 서대문역까지 가서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많은 분들이 깃발을 들고 참석하고 계셨습니다.


시위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사람들은 폭력시위였다고, 의경들이 맞고 경찰차가 훼손됐다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폭력은 이미 정부와 언론이 유가족분들에게 행사한 것이며 유가족분들은 폭력보다도 더한 대우를 받았고 그 분들의 가족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의 목숨에 관한, 아주 기본적인 권리를 이야기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요. 사실 저는 지금도 모든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배 안에 있었는데,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못하고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세상. 영화에서만 보던 살벌한 세상이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전부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진짜라고 믿으면 세상이 너무 무섭고 비참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여기서 믿지 않고 외면해버리면 언젠가 또 다른 세월호가 일어날 것이고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이 일어날 것이고 그럼 또 다시 어른들의 비겁함을 보게 되겠죠. 그러면 안 되니까,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니까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토론>


- 한국어문학전공 오선희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을 최근에 만들어서 급하게 간담회를 기획했는데,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콜롬비아로 도망가고, 돌아와서 아프다고 드러누웠던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 결과를 보고서는 벌떡 일어나서 시행령을 통과시키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5월 1일과 2일 집회에도 함께 참가합시다.


진실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서 앞서 행동하고 계신 유가족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분들을 보면서 희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4일 민주노총 총파업과 25일 세월호 집회에서 민주노총 노동자분들과 유가족분들이 함께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안전과 생명이 도외시되고, 이윤과 자본이 우선되는 이 사회를 바꾸고자 함께 하시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바라는 학생들도 함께 행동했으면 좋겠습니다.


- 연세대 추미진

연세대에서도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했는데, 아쉽게도 전화 통화로만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저도 작년 한해 고3 수험생으로 지내면서 세월호를 잊고 지냈습니다.


대학에 와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에 참가했는데, 유가족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유가족분들이 진실규명을 위해서 행동하시는 것이 ‘돈 때문이다’라고 매도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저희 대학생들이 유가족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실을 말하지 않는 언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오준영 군 어머니 임영애

416 가족 협의회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저희 소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주는 것에서 출발해 주세요. 또, 제가 지방으로 간담회를 갈 때 차에 노란리본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서 힘을 얻습니다. 노란리본을 달고 잊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해 주세요. 함께 행동해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부모님 생각하면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 주세요.


- 물리학전공 임승현

많은 인원이 연대하고 참여하면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나 정당들이 연대했을 때, 일각에서는 ‘정치화 되는 것 아니냐. 저 사람들이 왜 끼는 거냐’고 얘기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오주영 군 어머니 임영애

민주노총, 정당 분들이 오셔서 “정당에 가입해라, 뭐 해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서 함께 힘써주십니다. 유가족들 입장에서 그 분들은 함께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 김영 교수

4월 16일 교수회 주최 추모 행사를 진행할 때도,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니냐”는 물음을 받았습니다. 배우 오드리햅번의 가족들이 세월호 기억의 숲을 만들면서, “이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과 존엄에 대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내천, 사람이 하늘인데, 하늘같은 생명들이 떼죽음을 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정치적입니다. 보수 반동적인 썩어빠진 체제를 지속하기 바란다는 점에서 정치적입니다.


원래 정치라는 것은 ‘세상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너무 정치적이라는 공격에 맞서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정치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잡는 정치는 숨을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과감하게 해야 합니다.


침묵하는 것은 정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이 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기득권으로서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것으로 고도의 은폐된 정치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치를 하느냐’입니다. 세상을 바로잡는 정치를 하느냐, 정치적이지 않은 척 하면서 자신만을 위한 정치를 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 사회교육전공 박동심

사실 오준영 군 부모님을 작년 <다이빙 벨> 시사회 때 뵀어요. 그때도 숨 쉬고, 먹고 하는 것이 죄송스러워 눈을 못 마주쳤는데, 아직까지도 그런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 추모제에 갔습니다.


그런데 평소 연락을 잘하시지 않던 어머니께서 그날 전화가 오셔서 “공부하라고 보내놨더니 그런 데 돌아다니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동생이 죽었어도 그런 말씀 하실 거냐”고 어머니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머니께 "화내서 죄송하다, 예비교사로서 마음이 불편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씀드리니 "나도 화내려고 전화한건 아니고 내일 미세먼지 심하다니 마스크 쓰고 나가라 하려고 전화했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 마음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한 학교, 한 학년 절반이상이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되었고 부모님들은 이유도 모릅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 덕분에.. 그래서 저는 젊은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잃을 것이 없습니다. 나이 든 분들에 비해, 7-80년대처럼 갑자기 길에서 없어지는 시대도 아닌데,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잃을 것이 많은데도 행동하시는 교수님들을 보면 정말 멋지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내 자식이, 내 가족이 다시 "세월호"를 타지 않게 함께 행동합시다. 우리가 미래입니다.


- 의예전공 문호진

이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재보선에서 야당이 압도적인 패배를 했고, 대통령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꽤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바꾸기 위해서 행동하고 싶어도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유가족분들은 훨씬 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어오셨을 것 같은데,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행동하실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오준영 군 어머니

처음에는 자식이었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는 준영이의 동생, 선배, 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행동하게 됐습니다. 아이가 시간이 갈수록 더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떠났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살고 있습니다.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 김영 교수

행동하지 않는 자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비극적인 현실을 젊은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진리, 자유, 정의를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송경동 시인의 시에서 ‘진단만 하고 뛰어 들지는 않는 지식인들의 안전한 서재 아래’라는 구절을 보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최소한의 행동이라도 해야 합니다.


- 사범대 졸업생 고명원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중입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노란 뱃지를 달고, 리본을 달고 다닙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어느 공간에나 많이 슬퍼하는 사람과 별로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함께 있는데, 그것은 사람마다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한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덜 슬퍼하는 아이들에게는 많이 슬퍼하는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서로를 더 많이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발언>


- 영문학전공 15학번 임나리 학우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고,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기억하고 행동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오준영 군 아버지 오홍진 씨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손잡고 안전한 사회 만듭시다. 유가족들이 앞장서겠습니다.


- 오준영 군 어머니 임영애 씨

좋은 말씀 해주셔서 많이 힘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영 교수

낙담하고 좌절하는 마음들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인생을 살아보니, 어둠 속에 빛이 있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고 말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해방을 위해 힘썼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모두 친일파로 변절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정당성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는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현실이기 때문에 인간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관건은 ‘연대’입니다. 연대를 얼마나 강고히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홍준표가 무상급식을 공격하자 학부모들이 나섰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박근혜이기 때문에 우리는 견뎌내면서 깨어나가야 합니다.


유가족들이 지치지 않고 낙담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개인적으로 존재할 때는 다들 외롭고 약합니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을 가지고 함께 갑시다. 바위같이 흔들리지 않고 단결하고 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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