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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하느님의 ‘생산자 책임’
  • 전순란
  • 등록 2016-07-06 10: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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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4일 월요일, 비온 후 개임


아침에 빗발이 좀 뜸해서 꽃들을 살펴보러 나갔다. 보스코가 끈을 묶어준 해바라기는 줄에다 목을 얹고서 묵직한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데 일찍 피는 코스모스는 길로 눕거나 옆으로 쓰러졌고 꽃송이는 죄다 망가져 흘러갔다. 저러다간 몸이 닿는 곳마다 뿌리를 내릴 궁리를 하지 싶은데 과연 시멘트 바닥에 누워서도 옴 몸에 허연 잔뿌리를 원 없이들 내뻗고 있다. 지주를 세우고 끈을 묶어서 코스모스를 받쳐주었다. 


호우가 와도 ‘꽃이 망가질까?’ 걱정하는 사람은 손수 그 꽃을 심은 사람뿐인가 보다. 나머지는 무슨 꽃이 심겼는지, 심은 꽃이 살아남는지, 제대로 자라는지, 꽃을 어떻게 피우는지 도통 관심이 없고 지나가다 예쁜 꽃봉우리가 손을 흔들어보이면 “어? 피었네?”가 감탄의 전부일 듯.




그러니 세상이 다 망가져도 창조주 홀로 정말 애달파하시는 까닭은 당신이 만드셨기 때문이리라. 오죽하면 외아들까지 보내셔서 “가서 어떻게 좀 해보려무나!” 하셨을까? 우주도 지구도 인간사도 ‘생산자 책임’이어서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망가질까 조마조마해서 앞장서는 사람, 예컨대 우리 가까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나 ‘환경연합’이나 더 가까이는 ‘지리산종교연대’는 자발적으로 하느님의 ‘생산자 책임’을 나눠지는, ‘하느님의 사람들’이라 불릴 만하다.


길을 만들거나 포장을 하면 ‘받은 돈만큼’(때로는 발주한 공무원들에게 뜯기고 남은만큼?) 일을 하기 때문인지 가파른 휴천재 길을 흘러내리는 물이 제 길을 못 찾고 꽃밭을 훑어 내려간다. 50여 미터 길을 포장하면서 배수구를 단 한 개도 만들지 않은 도로포장공사라니!


오늘 면사무소에 다시 가서 그 얘길 또 했더니 “세 번이나 현장에 나왔는데 사모님을 못 만나서요”라는 대답. 우리가 많이 나다니기도 하지만 우리 없는 날만 찾아왔는지, 눈으로 보면 민원사항을 파악하고 남았을 텐데 “민원인을 못 만나서 문제 파악을 못 했다”는 변명이라니! 우리 명함을 주고 현장 오려면 꼭 전화하고서 오라고 당부했는데 어딜 가나 공무원이라면 ‘월급만큼만 (월급 만큼도 일 안한다)일한다!’는 신조를 품은 사람들 같아 영 시원치 않다. 박봉이어서?




하기야 대우조선 사태를 본다면 운영자들과 본사노동자는 돈은 엄청 받고서 일은 엄청 안하고 모든 수고는 하청회사와 근로자들이 다 감당했다는 식으로 보도가 나오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해고와 폐업은 하청회사와 비정규 노동자들 몫이고 기업은 국가의 구조조정금으로 살아남는다니...


12시 정각에 정옥씨가 나와 희정, 윤희씨를 점심에 초대하여 함양읍으로 갔다. 보스코가 쓰는 핸드폰을 빵기 명의에서 자기 명의로 바꾸고 싶어 했으므로 함께 나갔다. 지난 토요일 들렀는데 ‘3개월 이내의 가족관계증명서’를 갖고 본인들이 직접 출두해야 한다는 아가씨의 설명이 있어 오늘 다시 간 길. 가족관계 증명서까지 오늘 떼갔는데 아들의 이체구좌 번호를 메모해둔 게 없고 아들 부부는 한밤중이어서 전화를 받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루어 보스코만 버스편으로 집에 들어갔다.


우리 네 명 중 정옥씨가 유일하게 ‘시집살이’를 하고 있어 동정과 격려를 표하다 보니 점심마저 희정씨가 사고 커피와 빙수도 샀다. 식사 중에도 정옥씨는 “어머님이 식사는 하셨을까?” “혼자 잘 계실까?” 연달아 걱정이다. 둘이 들어가고 나만 정옥씨와 상림과 꽃이 한창인 연지(蓮池)을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한 집에 두 여자, 두 주부, 말하자면 두 여주인이 사는 비극을 고대부터 우리 세대까지는 견뎌왔지만, 지금부터라도 “한 집에 여왕개미는 한 마리여야!”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처럼 시어머니는 당초부터 사진틀 속에만 계시고 며느리와는 수만 킬로 떨어져 사는 사람은 말할 자격이 아예 없지만...




또 외동아들을 둔 어미의 숙명이라는 난제도 나왔다. 여자들이 아들, 특히 외아들에게 왜 그렇게나 매달리는지도 나누었다. 아마도 여자는 ‘말 잘 듣는 남자’, 하나부터 열까지 내 말대로 하는 착한 남자를 하나쯤은 두고 싶은, 타고난 욕심이 있나본데, ‘징하니 말 안 듣는’ 남자를 남편(원래 시어머니의 ‘말 잘 듣는 남자’였으려니)으로 두다 보면 그래도 (어려서라도) ‘비교적 말 잘 듣는’ 남자인 아들을 치마폭에 싸두고 싶어하다 그마저 ‘남의 남자’(며느리의 ‘말 잘 듣는 남자’)로 빼앗기다니! 그래서 나처럼 첨부터 ‘내 말 잘 듣는 남자’를 남편으로 둔 여잔 아들들에게 비교적 덜 매달리나? 


‘말 잘 듣는’ 내 남자가 서재에서 코를 박고 있는 다저녁에 나는 소담정에서 얻어온 꽃모종을 마당 화단에 심느라 낫질에 삽질에 호미질까지 실컷 땀을 흘려야했다, 지리산의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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