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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화해를 청하여 엎드려 청하면 화해가 올 것이니...”
  • 전순란
  • 등록 2016-06-27 10: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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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5일 토요일,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 ...

어떤 날은 잠이 안 와

입김으로 봉창 유리를 닦고 내다보면

별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봄을 기다리던 마을의 어른들이

별똥이 되어 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이상국,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겨울 새벽이 아니고 한여름 새벽이지만 이장님이 아침 방송으로 부면장님의 부고를 알린다. 4월에 옥규 노인이 세상을 뜨고 올해만도 두 번째 초상이다. 오늘과 내일 서울 구로 고대병원에서 문상을 받고 월요일에 출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문하마을 회관 앞에서 노제를 지내고 휴천강 건너 당신 산에 묻힐 거란다. 



지난 4월 모처럼 지팡이에 의존하고 집밖을 나와 당산나무 아래로 산보 나온 그의 여윈 손을 붙잡고 (빨리 건강해지셔서) “우리 강 건너로 산보를 해요”라고 인사말을 건넸었는데... 힘겹게 힘겹게 그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낼 모레 함께 강 건너로 가는 건 맞는데 하나는 걸어가고 하나는 누워가고, 돌아오는 길도 하나는 강을 건너오지만 하나는 그 언덕 양지바른 언덕에서 마냥 그 땅을 지킬 것이다.


웅석봉 아래 '심적사'



산청 심적사(深寂寺)라는 절에서 “6·25 63주년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가 열렸다. ‘빨치산’ 토벌전이 유난히 혹독하게 벌어진 ‘웅석봉’ 아래 까까지른 비탈에 자리 잡은 절이다. 지리산 종교연대가 주관하여 해마다 열리는 기도회 모임이다.


여는 시로 김유철 시인이 ‘산이 바다에 떠 있듯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하여 “화해를 청하여 엎드려 청하면 화해가 올 것이니... 멈추지 마라. 나와 너와 그의 선한 마음을 멈추지 마라”고 절마당에 모인 일동에게, 아니 온 겨레에게 외쳤다.


2000년에는 피아골에서 ‘빨치산’ 출신들과 ‘토벌군’ 출신들이 함께 화해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특히 이명박근혜 정권은 그 증오와 대립이 하늘을 뚫게 충동질해놓고 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를 목청껏 노래부르게 하며 남북분단과 반공만을 먹고 사는 기득권의 작태...


개신교 목사님들의 기도


실상사 스님들의 기도


원불교 교무님들의 기도


가톨릭성직-수도자들의 기도


우리 둘에게는 "2016년 지리산생명평화 선언"을 낭독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행사의 중심으로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순으로 성직자들이 앞으로 나아가 그 종단의 예배형식으로 기도를 올렸다. 종교는 다르지만 ‘화해를 청하는’ 기도문은 같으니 저 깊이에서 아니면 저 높이에서 우주의 근본과 맞닿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우리의 정성이 바쳐지고, 종교연대가 펼쳐가는 우리의 우정은 이렇게 해마다 더 돈독해진다. 최근 종교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계시는 성심원 원장 오상선 신부님의 노력이 돋보인다.


이어서 추모기원 문화행사가 절마당에서 흥겹게(사실은 비장하게) 이루어졌다. ‘우창수와 개똥이 어린이 예술단’의 귀엽고 깜찍한 노래와 율동은 각별했다. 어린이들이 차려입은 의상은 한지로 만든 한복이고 발에는 고무신을 신기고 노래는 ”골짜기에 댐이 만들어지면 달도 사라지고 말지요”를 동요로 불렀다.





하동 정다솔양의 해금연주, 구례로 이사간 ‘수수’의 노래, 남원 문성근씨의 ‘살풀이 춤’이 차례로 이어지며 어머니 지리산이 얼마나 빼어난 예술인들을 품어 살리는지 한눈에 보인다. 행사장 벽에 걸린 걸개그림 “지리산 어머니 저희를 안아주세요!” 그대로다.


우리가 ‘비주얼(visual) 합창단’이라고 놀리는 ‘길동무중창단’은 그 동안 숫자도 합창단으로 많아졌고 ‘지리산’ 노래는 제법 화성을 울리는 수준으로 올라서서(최명원 교무님의 정성이리라) 이젠 ‘소노릭(sonoric) 합창단’이 돼가고 있었다.


심적사 주지 스님이 제공하는 점심공양을 받고 일행은 ‘지리산둘레길 걷기’를 나섰지만 우린 서상 부전계곡에 ‘안유헌’을 이루고 사는 김인식 선생댁에 갔다. 그니가 개최한 “부전계곡이 사람을 품다”라는 제목의 ‘환경콘서트’가 있었다.



인간의 ‘삶’이라는 한 글자를 ‘사람’으로 ‘사랑’으로 늘여가는 한 여인의 당찬 환경지킴이 활동이 한 눈에 보였다.


그니의 폭넓은 인맥이 함양 서상의 문화인들을 모두 초대했고 수많은 공연자들을 출연시켜 3시에 시작한 공연히 6시 가까이 이어졌다. 보스코도 첫머리에 불려나가 ‘환경을 사랑하자'는 요지의 축사를 5분간 했다.


집에 돌아오자 이번에 텃밭에서 거둬들인 감자와 어제 사들고 들어온 돼지뼈로 ‘감자탕’을 한 솥 끓여 블루베리 따느라 눈코뜰새없는 진이네와 태평씨네 그리고 외로운 유영감님댁에 한 냄비씩 돌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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