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지] “자연공화국 한 편에 잠시 땅을 빌어 살아가는”
  • 전순란
  • 등록 2016-06-24 09:01:00

기사수정


2016년 6월 21일 화요일, 맑음 (하지)


“언니, 자두가 익었죠? 그 집 자두가 맛있던데 좀 따러 갈까요?” 올케 언니는 힘없지만 반가운 목소리로 자두 익을 때와 내가 서울에 와 있는 날이 별로 안 맞아 한 번도 못줬다며 어여 내려오란다.


오빠네집은 우리집에서 불과 3분거리다. ‘집 투기’에 문외한인 두 여자, 곧 엄마와 내가 터가 넓다고, 리어카나 겨우 들어가는 좁은 골목길 막다른 집을 오빠네 집으로 샀다. 대우조선 ‘탑재부의 독사’라고 불리는 오빠가 동태 한 마리를 사면 “머리는 ‘아가미젓’, 알은 ‘명란젓’, 창자는 ‘창란젓’을 담그라”고 새색시던 올케를 닦달하여 알뜰하게 모은 돈을 엄마에게 맡겨 집을 사두게 했는데 겨우 그런 집을 사놓았으니 지난 35년간 그 원망이 얼마나 사무쳤으랴! 굳이 위안꺼리를 찾는다면 골목 끝이라 조용하다는 것, 다디단 자두가 엄청 열리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는 것!


오빠네 집 골목은 '예술인마을'!  



지리산 휴천재에서 거둔 양파와 감자를 들고 가서 나눠 주고 아예 나무 밑에 망을 쳐 단 한 개도 땅으로 떨어져 버려지는 일 없게 조처해둔(얼마나 오빠다운가!) 자두를 한통이나 얻어 왔다. 그 골목길을 나오며 보니 그 길에 사는 서민들의 어설프고 애달프고 가난한 예술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부동산 투기를 할 터가 못되어, 오빠는 뒷집을 헐 때 겨우 공사 자재를 들여올 길을 얻어 집을 새로지었고, 새언니 말처럼, “‘응답하라 쌍문동 1988’의 주인공들이 모조리 강남으로 외국으로 터갈이를 할 때도 이 징그란 쌍문동을 못 떠나고” 30년 넘게 아직도 살고 있다. 가난해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자족하는 행복을 눈여겨보며 우리(엄마와 나)가 ‘오빠네 집’을 잘 사줬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11시에 집을 나서며 보스코는 마당 절구에 장구벌레가 가득한 걸 보고서 그 물을 퍼내 갈아 주고 어린 물옥잠들을 갈라 절구 세 개에 하나씩 띄워준다. 물옥잠이 크면 물이 상하는 것을 막아 우리 마당에 오는 새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 더구나 한여름에 물위에 피어나는 보라색 물옥잠은 하얀 연꽃이나 노란 수련에 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휴천재 가는 길 


강변역에서 1시 20분 버스를 타고 5시가 다 되어 휴천재에 도착했다. 지리산 자락에 발을 디디면 다디단 공기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하는데 갑자기 집밖이 소란해진다.


물까치 떼 크고 작은 새가 무려 30마리는 되게 휴천재 입구에 모여들어 사납게 울부짖으며 소란을 피운다. 능소화 덤불에 알을 까고 먹이를 물어나르던 물까치둥지 주변이다. “오늘 저 집 새끼까치 백일잔친가?” “까치새끼가 첫발이라도 떼었나?” 내가 카메라를 들고 테라스로 나서자 일부는 날아가고 스무 마리 쯤은 여전히 수선스럽다.


아차! 능소화 줄기를 타고 새끼 고양이가 내려온다! ‘휴천재 까치집’에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이 동네 물까치들이 총동원령을 발한 것이다! 이웃까치들이 고양이를 쫓아보내는데 성공했는지, 가엾은 새끼들이 고양이 밥이 되고 말았는지 내일쯤 되어야 알겠지만 남의 일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물까치가 징집을 당한 저 협동심과 단결은 우리 인간이 배워야겠다.


물까치 총동원령


애간장 녹는 아빠새


하늘이 무너진 엄마새


용인서 갓 돌아오신 오신부님이 보스코에게 모니터를 구하여 설치해주러 오셨다. 하루에 열 시간 이상 모니터 앞에 앉아 아우구스티누스와 씨름하는 보스코의 집필 및 번역 활동에 모니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도 모르고 본인도 몰랐는데 늘 타인의 필요를 살피는 섬세한 마음의 눈, ‘프란치스칸의 눈’에 보였으리라.


데스크탑도 없다고 나무라신다. 있는 거라곤 달랑 노트북 하나... 새로 설치한 모니터 스크린은 노트북 모니터의 세 배 면적은 되어 보스코가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날씨가 더워 모니터 앞쪽 창문을 여니까 10센티쯤 되는 쥐 한 마리가 뚝 떨어진다. 창틈에 무슨 쥐? 깜짝 놀라 죽은 쥐려니 여기고 망문을 열어 밀어내니 ‘휘익!’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쥐는 쥔데 박쥐였다! 창틈에 살면서 밤이면 보스코 책상의 조명등을 보고 달려드는 날파리나 모기를 잡아먹으며 무전취식하던 불청객이었나 보다.


벼논에는 “고라니나 오소리, 멧돼지는 물러가라!”는 뜻의 현수막이 군데군데 쳐지고 해지면 요즘도 무논 가득 개구리가 밤새껏 합창대회를 하는 “자연공화국 한 편에 잠시 땅을 빌어 살아간다”(임보 시인이 지어주신 시 ‘休川齋’ 중에서), 우리 부부가!


휴천재 창틈에서 무전취식하던 박쥐가 잠이 덜 깼는지 죽은 시늉을 하는지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