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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벗들이 찾아와 지리산 정기를 받아갈 적마다
  • 전순란
  • 등록 2016-06-20 10:42:51
  • 수정 2016-06-20 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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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8일 토요일, 맑음


“늦잠 자겠다더니 왜 벌써 일어났어?” 간밤에 한강씨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두 시가 넘어서 잠든 국염씨가 여섯시도 안 되어 깨었기에 물었더니 “햇볕이 창을 두드려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더라”고 한다. 그니가 열어놓은 창밖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길게 누워 휴일 아침의 늦잠을 즐기고 있다. 신선한 공기와 새소리로 사람을 깨워놓고 산은 다시 잠이 들었다.


최목사는 아침부터 오죽나무 댓가지를 들고 휴천재를 빙 돌면서 남은 매실을 찾고 있다. 손에는 벌써 묵직한 매실봉지가 들려 있다. 해마다 효소를 담가도 주로 남에게 준다.



조국의 빈곤을 견디다 못해 한국 땅에 일하러 오거나 시집을 온 ‘이주여성’들을 위해서 늘 바쁜 한국염 목사, ‘민중교회’를 하면서 한국을 찾아온 이주민들의 건강을 챙기다 지금은 네팔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그 나라를 드나들며 동분서주하는 최의팔 목사는 늘 내 마음의 모델이다, 오로지 타인들을 위해서만 사는 삶.


두 분 목사님을 모시고 ‘성무일도’를 드렸다. 둘 다 목사님 티를 안 내는 분들인데다 구교로 개종한 이 ‘무식한 프로테스탄트’나 유식한 가톨릭 보스코나 타종파에 이물감을 안 느끼는 사람들이어서 무리하지 않게 아침기도를 함께 바쳤다. 함께 기도 하면 마음도 가까워 진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최목사님은 만사에 예리한 판단과 날카로운 표현으로 나를 놀라게 하지만 내 친구 한국염 목사도 그에 지지 않는 똑똑한 여자여서 둘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 부부가 나누는 화법과 사뭇 다르다. 요즘 부쩍 몸이 약해져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지리산까지 데려와 아내의 친구가 해 주는 음식을 챙겨 먹이는 그의 맘씨에 아내를 아끼고 위하는 남편의 사랑이 녹아 있다.


내가 어려서 온갖 몬도가네 음식을 먹어서 건강하다는 말에 국염씨는 전쟁미망인인 엄마도 유약한 딸에게 개구리라도 잡아 먹이려고 작대기를 들고 들로 나가셨지만 앞서 지나간 남정들 손에 모조리 소탕되고 그 들녁에는 개구리 한 마리도 없었더라던 엄마의 탄식을 들려준다. 미국과 소련의 음모에 한반도가 통째로 화염에 싸였던 전쟁 시절의 얘기다.



아침식사 후 휴천재 뒷산 법화산 중턱에 있는 ‘법화사’를 보러 갔다. 주지 스님은 작년 동지엔 팥죽을 끓여서 마을을 집집이 돌면서 중생을 섬기던 분이다. 스님 혼자서 아침 경 읽는 맑은 음성이 대웅전을 울리고 메아리를 건너 산으로 보낸다 우리는 ‘적멸보궁’으로 올라가 천왕봉과 주변 봉우리들을 멀리 건너다보았다.




휴천재를 에워싼 풍경이 모두 짙은 솔숲이요 집에서 한 걸음만 나서면 저 웅장한 산에 안길 수 있으니 세파에 지친 친지들이 방문할 적마다 지리산의 정기를 나눈다.


산에서 내려오다 스.선생네 ‘솔바우’에 들렀다. 큰딸 부부와 두 손주가 와서 수선스럽고도 행복한 부부는 우리마저 환영하여 수박을 내주고, 민트차를 만들라면서 박하 잎을 베다가 챙겨준다. 풍성한 자연만큼 넉넉한 인심이다.


점심에는 친구 몸보신할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3시 30분에 휴천재를 떠났다, 우리 부부도 편승해서!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친구와 지내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먼데서 친구가 왔으니 왜 기쁘지 않은가?”


저녁 8시경 창동 ‘하누소’에 들러 국염씨가 자기 고향음식이라는 함흥냉면을 우리한테 대접하고, 빵기네집 골목에 잔뜩 싸들고 온 짐을 부려주고, 두 사람은 자기네 보금자리 정릉 골짜기로 떠났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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