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고-현이동훈] “장애인들도 전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 현이동훈
  • 등록 2016-06-15 10:47:17
  • 수정 2016-06-15 10:54:22

기사수정


지난 11일과 12일은 ‘장애인들과 아픈 사람들의 자비의 희년’이었다. 11일, 교황은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적극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 날에는 장애인들과 함께 자비의 희년 미사를 봉헌했다.


유투브에서 장애인들과 아픈 사람들의 자비의 희년 미사를 보고 놀란 게 있다. 그동안 바티칸 성 베드로 성전 미사에서 독서나 신자들의 기도 등 장애인들의 전례 참여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날은 장애인들이 전례에 참여한 것이다. 또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비록 이탈리아어 수화였지만-참고로 수화도 각 나라와 지역, 세대마다 다르다) 수화통역 영상도 함께 방송되었다.


▲ 12일 장애인들과 아픈 사람들의 자비의 희년 미사에서 장애인들도 전례에 참여했다. 영상 하단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도 함께 나왔다. (사진출처=CTV영상 갈무리)


미사 입당행렬에서는 장애인 복사들을 앞세웠다. 1독서와 2독서 모두 장애인들이 참여했고 신자들의 기도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참여했다. 이날 자비의 희년 미사는 뒷자리에 앉아야 할 지역권력자와 종교권력자 그리고 수도자를 앞에 앉게 했던 어느 교구장 주교가 주례한 미사와 많이 달랐다.


이번 장애인들과 아픈 사람들의 자비의 희년 미사를 보고 한국교회 본당에서의 장애인 전례참여를 생각해 본다. 최근 청각장애인들이 미사 복사를 서고 있고, 교회 안 장애인협의체들이 장애인 당사자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있어 성급하게 일반화할 순 없다. 그러나 사목현장에서는 뇌병변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 틱장애인들의 참여가 상당히 제한돼 있고, 당사자가 포기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사목현장에선 사제와 수도자, 교리교사들이 장애인들에게 독서를 못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서 내용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이유로 전례참여 기회를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기도 참여도 제한적이다. 의사소통 장애인들은 그렇게 교회 내에서 상처를 입는다.


장애인들의 전례참여에 대해 소극적인 사목자들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본당 어르신들은 미사에서 독서를 들을 때 눈으로 보고 귀로 함께 듣는다. 다른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말은 매일미사를 보면서 독서자의 목소리에 글자를 맞추면서 읽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매일미사 어플리케이션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이유로 장애인들에게 전례참여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목자들은 오히려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다.


교구 청년사목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청년성서모임 역시 장애인 봉사자 파견에 소극적이다. 뇌병변장애인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이 잘되는 사람들만 파견하고 있다. 필자가 청년성서모임 가운데 봉사자 파견이 없는 과정에 참여해 보았는데 의사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자료만 나눠주면 언어장애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장애인들이 전례참여에서 언어장애로만 차별받는 것이 아니다. 본당 제대는 거의 계단으로 되어있고 경사로로 된 것은 없다. 주교좌성당과 교구 교육기관마저도 모두 계단으로 되어있다. 이 문제는 독서대 대신 독서대 옆이나 밑에서 하면 해결이 될 듯하지만, 장애인들도 성당 안과 제대에 평등하게 올라갈 수 있게 해야 완전한 전례참여가 될 수 있다. 본당에 경사로 몇 개를 만든다면 비장애인 신자들과 어린이들, 어르신들도 편하게 전례참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구의 중심인 주교좌성당과 가톨릭재단 대학교 교목처에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성경과 점자미사경본이 없다. 밀알회나 농아선교회 같은 교구 장애인협의체에서 나눠주겠지만 매달  한 번씩만 미사를 드려 한계가 많아서, 어느 때나 와서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점자성경과 점자미사 경본을 비치해 두어야 할 것이다.


‘배리어프리 (barrior-fre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장벽을 없앤다는 말로 장애인이나 임산부, 어르신,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사람 등 이동약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개념어다. 대표적으로 엘리베이터, 경사로와 점자블록, 수화통역이 있다. 이처럼 장애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앞을 가로막은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톨릭교회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


장애인들의 전례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교회 특히 본당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차별이다. 교회가 장애인들을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장애인사업시설 비리와 폭력문제를 가져왔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인성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진보적인 성직자와 수도자라도 장애인 차별문제에서는 반인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인권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지지 않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최근 서울의 어느 남자수도회가 운영하는 장애인사업시설에서 성폭력사건이 일어나 시끄럽다. 하지만 마포구청과 서울대교구, 해당 수도회는 침묵하고 있다.


▲ 12일 장애인들과 아픈 사람들의 자비의 희년 미사에서 참석한 장애인들. 영상 하단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도 함께 나왔다. (사진출처=CTV영상 갈무리)


특히 장애인들에게 반말하는 수도자와 성직자들이 많다는 것은 큰 문제다. 대구대교구 한 장애인사업시설은 가까운 본당의 보좌사제가 미사를 봉헌하러 온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장애인들에게 반말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본당에서 처음 본 장애인들에게 바로 말을 낮추는 주임사제도 있는데 사실 이런 일은 한국교회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당에서 평신도들도 장애인들에게 대뜸 말을 놓고 먼저 장애인들의 의사를 구하지 않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도 많이 하곤 한다.


장애인들에게 말을 놓지 말라고, 사제들과 수도자들, 평신도들에게 부탁하고싶다. 특히 발달장애인들과 지적장애인들에게 말이다. 가족 중 자신보다 어른인 장애인이 있다면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있겠는가. 선배 가운데 장애인인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있겠는가.


이번 장애인들과 아픈 사람들의 자비의 희년 미사를 계기로 바티칸에서도 많은 장애인들이 전례에 참여할 수 있길 바라본다. 한국교회는 더 많은 장애인들이 교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앞을 가로막고 그들을 수동적인 대상으로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면 안 될 것이다.



[필진정보]
현이동훈 (안토니오) : 가톨릭 아나키스트로 아나키즘과 해방신학의 조화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과 생태주의에도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