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할머니, 생쥐가 이빨을 물어가고 베개 밑에 2프랑 놓고 갔어요”
  • 전순란
  • 등록 2016-06-15 10:30:41

기사수정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맑음


“엄마, 시우가 이빨이 빠지고 안경을 썼어도 베베(아가)였을 때하고 똑같이 예쁘죠?” “그럼~! 그렇구말구!” “시우야, 일루 와 할머니 전화 받아봐. 엄마, 시우가요, 엄마 아빠 말은 못 믿겠고 할머니 얘길 들어봐야겠대요” “할머니, 저 시우에요” “시우야, 지금 빠진 이는 ‘아가 이’라고 해. 그런데 쪼금만 기다리면 ‘엉아 이’가 나와서 너도 엉아가 되고 그 담엔 아빠가 되고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너랑 함께 있을 거야” 


“할아버지 될 때까지? 쿡쿡..” “그리고 안경을 끼니까 아빠랑 할아버지처럼 박사님이 된 것 같아서 할머니에겐 우리 시우가 참 멋져! 안경도 썼으니 이젠 박사만 되면 되겠네” “할머니, 그런데요, 생쥐가 이빨을 물어가고 베개 밑에 2프랑 놓고 갔어요” “와~ 그것도 좋은 일이네. 거져 가져가지 않고 돈까지 줬으니. 그걸 모았다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해 봐야겠어요. 할머니 그럼 안녕히 계세요”





떼쟁이 꼬마가 초등학교(실은 유치원. 스위스에선 유치원 2년이 의무교육으로 편입되어 초등학교가 8년 과정이 되었다. 시아도 사실 초딩 2년인데 자긴 ‘4학년’이라고 으스댄다) 들어가면서 ‘자아’가 발달하고 자기 용모와 신체 변화에 마음을 쓰기 시작하나보다. 빵기와 빵고 어렸을 적을 다시 보는 기분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새벽에 사라진 보스코가 소독 통을 메고 배나무 밑을 오간다. 무슨 약을 섞었는지 다른 때 맡을 수 없던 고약한 냄새가 난다. 저러다 농약에 중독되어 실려 가는 건 아닐까? 적성병, 흑성병은 바이러스 치료제여서 냄새가 거의 안 났는데? 불그레한 깎지벌레들이 배나무들을 온통 덮고서 열매를 파먹어 들어가고 꼭지마다 기다란 주둥일 박고 수액을 빨아먹는 터라 독한 살충제를 섞었나보다.



하지만 저렇게 고생해서 봉지를 싸놓으면 다음엔 물까치가 떼로 덤벼서 봉지들을 모조리 쪼아놓고 익는 순서로 입질을 한다. 그래도 어쩌랴, 봄날 달빛에 하얀 소복으로 눈부신 청초함을 보이는 배꽃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배농사는 지을 만한데?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하(銀河)는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만은....” 하던 이조년(李兆年)의 형 이억년(李億年)의 묘가 지척 50미터 거리에 있는 터에?



아침 나절에는 읍에 가서 배봉지 한 상자(3년분)를 사고, 오이넝굴 받쳐줄 2미터짜리 지주대(15개)를 사고, 안과의원에 잠시 들러 내 눈 밑에 돋아나는 기름주머니를 짜고, 간이식 점심으로 김밥 두 줄을 사들고 들어왔다. 오가는 한길마다 쌓아놓은 양파망태가 온통 붉은 색으로 함양군을 장식하고 있다. 바야흐로 양파의 계절이다.



4시경 드물댁이 올라와 집 앞에서 날 기다린다. 그니는 무슨 일도 “심심해서 절대 혼자서는 안 하겠다. 사모님이 같이하면 거들겠다”는 입장이다. 휴천재 올라오는 길가에 시든 들양귀비를 걷어내고 웃자란 해바라기 틈새에 자라 오른 잡초를 뽑아내는 일이 보통 아니다. 축대에 환삼덩쿨이 지독한 가시를 돋우고서 사정없이 찔러대는 통에 아예 낫을 들고 덤벼야 한다. 도깨비방망이, 넝쿨딸기, 바랭이도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내가 일하는 투를 지켜보던 드물댁 혀를 찬다. “도회지서도 이런 일 해먹고 살았소? 시골사람보다 더 무섭네” 미루가 어제 한 타박대로 ‘전투적으로’ 호미질, 낫질을 한다는 말 같아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뽑고 베어낸 풀을 치우고 빗자루로 한길을 쓸어내고서 배나무밭으로 올라가 한 바퀴 돌면서 무릎까지 자라 오른 풀을 둘이서 뽑고 베어 그 자리에 눕혔다.



해거름에는 보스코도 내려와 아침에 사온 지주로 오이 덩굴 올라갈 데를 마련하였다. 드물댁을 보내고 집앞에 꽃을 마저 심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진이엄마, 나 쓰러질 것 같아. 블루베리즙 좀 줘, 먹고 살아나게!” 그니는 상자째 즙을 주면서 “성님, 제발 한 몫에 다하지 말아요” 신신당부다. 내가 스무날 놀고와서 이틀에 다 해치우려는 욕심이 가히 ‘서비이블게임’으로 보이나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